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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작가 May 20. 2024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이대 미대생과 만남

#19 인생 스케치


오늘은 '살아온 32년, 살아갈 32년' 연재를 한 주 쉬고, 오랜만에 인생 스케치 매거진에 글을 올린다. 계절의 여왕 5월. 가족의 달 5월. 늘푸르게는 일 년 중 3월 말 ~ 6월 초 정도를 제일 좋아한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앙상했던 가지에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온 세상이 수백만 종류 초록이 피어나는 이 시기를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좋은 계절에, 이 좋은 5월에, 나에게는 아픈 추억(?)이 있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 최근 늘작가 브런치스토리 독자가 되신 ‘유미와 님’이 오래전에 적었는 글을 읽고 댓글을 주셨다. 그 글 링크하니 일단 이 글 읽은 후 오늘 글 읽어주시길…



https://brunch.co.kr/@jedpark/50



 이 글에 이어서



그렇게 늘작가의 생애 첫 클래식 음악 입문과 이대 음대생과의 인연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 다시 5월이 되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5월 초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대 미대생과 소개팅을 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누가 주선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서양화 전공이었는지 동양화 전공이었는지, 아니면 디자인이나 조형이었는지도 까먹었다.  그런데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시골 깡촌 출신 늘작가가 꿈에도 그리던(?^^) 이대 미대생과 소개팅을 하게 된 것이 중요한 것이지. ㅋ


이대 미대생과 소개팅을 시켜 주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살짝 망설였다. 작년에 이대 음대생에게 차였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작가가 누구인가? 뭐든 해보는 놈 아닌가? “음대생이야 내가 음악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그렇게 되었지만, 미술은 자신이 있다. 내가 한 그림 하잖아?”


나는 초딩 1학년부터 고딩 3학년까지 미술은 올 수를 받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손가락 댓생 그린 것을 보고 미술 쌤이 나보고 미술을 전공해 보라는 권유하고 부모님까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 진지하게 화가가 되는 꿈도 꾼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브런치 스토리에 올렸었는데 링크하니 한번 읽어 보시길


https://brunch.co.kr/@jedpark/39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이대 앞으로 가서 미대생을 만났다. 지금 얼굴까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외모와 성격 모두 내 마음에 들었었다. 당시 대화 내용 중 이 내용 하나만 지금 기억이 난다. “피카소 좋아하세요?” 늘 (피카소가 누구더라? 입시 공부할 때 들어본 화가이긴 한데) “네 좋아해요.” 이대생 “어떤 작품 좋아하세요.” … 아 이대 음대생에 이어서 이대 미대생에게 또 무너지는가?  


그 이후 내가 어떻게 그 질문에 답하고 사태를 수습(?^^) 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여학생이 자기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서울역까지 종종 걸어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고 했었다. 그때 “나도 걷는 것 좋아해요.” 그랬더니 그 여학생이 진짜 서울역까지 걸어가서 서로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대 앞에서 아현동 고개 넘어서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니 금방 가더라능. ㅋ 당시 그 여학생 집은 상도동이었다. 캬 기억력 하나 끝내주네.


그 여학생과 헤어지면서 학보 보내겠다고 했다. 라떼는 1... 당시에는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도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얼굴 보면서 다음에 만나자고 애프터 신청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핸폰 당근 없었꼬, 집 전화번호 묻는 것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학보(대학 신문)를 보내겠다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국룰이었다. 더구나 늘작가 같은 하숙생은 개인 전화번호도 없어서(하숙집 전화번호뿐. 단 부자 친구들은 개인 전화 개통해서 가지고 있었다) 통신 수단으로는 학보가 최고였다.


출처 : 한국학중안연구원


와, 추억 돋는다. 1980년대 대학신문 표지 이미지를 찾았다. (늘~퀴즈 : 우상단 大學新聞은 어느 대학 학보일까요?)



미팅을 한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보 보내지 않는 것이고, 마음에 들면 학보를 세로로 길게 접은 후 (대학교 이름이 보이게) AA 용지 사이즈를 가로로 절반 접어서 학보 띠를 만든 후 우표를 붙이고(용지와 신문이 함께 붙어서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게) 편지를 써서 만날 일시 장소 적어 보낸다. 그러면 상대방이 다시 학보를 보내서 오케이 하면 2차 만남이 성사되는 것이다.



남자 대학생 중에서 최고 인기 있는 학보는 독보적으로 이대 학보였다. 서울대나 고대/연대가 아닌 이화여대가 최고였다. 학과 편지함에 이대학보가 도착하면 모두들 "와, 너 이대학보 받았네?" 하면서 엄청 부러워했었다능. 이대학보 다음으로 인기 있었던 학보는 숙명여대 학보였다. 라떼는 2... ㅎㅎㅎ  이대학보 찾아보았다.


출처 : 이대학보



나는 당근 학보를 보냈는데, 다행히 답장이 왔고 두 번째 만남을 했다. 이때도 이대 앞으로 갔었다. 참고로 여대생 특히 이화여대생이 남자 대학교 앞으로 만나러 오게 되면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ㅋㅋㅋ


두 번째 만나기 이전 이번에는 미술계 입문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피카소 화가 이야기 듣고 버벅 거렸던 아픈 추억이 있어서, 본격적으로(^^) 현대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서적 미술 코너에 가서 유명한 화가 그림도 보고 미술사도 공부했었다. 늘작가가 미술 성적은 항상 수였지만 학교 때 미술은 거의 다 실기로 점수를 주었기 때문에 미술사나 화가 등에 대한 지식은 중학교 때가 끝이었다. 대입에는 미술이 시험 과목이 아니니깐.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양 유명한 화가 그림을 책자이지만 많이 보았다. 그리고 인사동 화랑에도 태어나서 처음 가보았는데, 아쉽게도 지금처럼 무료 미술 관람 기회는 거의 없고 유료라서 한 두 번 가고 못 간 아픈 기억이 난다. 나는 미술관 가서 그림 보는 것 지금도 좋아한다. 단 추상화, 이상한 조각 등의 이해가 난해한 그런 작품까지 관람하는 수준은 되지 못한다.


그렇게 벼락치기 미술사, 작품을 열공하고 이대 미대생을 만났었다. 두 번째 만난 이후 그 미대생이 이대 축제에 와달라고 초대를 했다. 앗싸라비야, 빙고! 와 드디어 내가 이대 미대생과 본격 연인 관계로 발전을 하게 되는구나. 가문의 영광이다.



라떼는 3...남자 대학생 로망 중 하나가 이대 축제에 파트너로 참석하는 것이다. 당시는 축제라는 말 대신 '대동제'라는 명칭을 사용했었고, 축제 기간 중에도 데모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연인으로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1학년 때는 학원 반창회가 있어서 무리를 이루어 갔었는데, 드디어 이번에는 당당하게 남자 친구 자격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이화여대 전경(출처 : 이화여대)


이대 축제. 이 글 적으면서 검색해 보니 올해 이대 축제 기간은 5/10 ~ 5/12까지였다. 아까비, 가 볼 껄. 그런데 라떼는 4... 이대 축제가 5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꿈에도 그렸던(?^^) 이대 축제에 가서,  만나기로 한 미대 00 화과 장소에 갔었다. 그런데…아 이럴 수가!  그 미대생이 다른 남자 대학생 여러 명과 함께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가니, 함께 앉으라고 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어떻게 그 자리에 있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늘~퀴즈 : 그때 이대 미대생이 왜 늘작가를 축제에 오라고 했을까요?


그날 이후 이대 미대생과 만남은 그날 그렇게 막을 또 내렸다. 이 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이화여대 미대생과 만난 기억이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미대 출신들이 꽤 많으니까, 분명 이대 미대 출신도 꽤 있을 텐데, 이상하게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서울대 미대, 홍대 미대, 국민대 미대, 중앙대 미대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나는데도... 힛!



그날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면서 맹세를 했다. “앞으로 다시는 이대 음대생과 미대생과는 미팅을 하지 않으리라.”


정말 그 이후 미팅이나 소개팅 들어와도 이대 음대와 미대생이라고 하면 절대, 네버 만나지 않았다 송충이는 솔잎 먹고 자란다고. 이대 일반대학(?) 출신까지는 커버가 되는데, 예능계 출신은 나에게 넘사벽이다. (아, 이대 음대생과 추억이 또 하나 생각났다. 군대 다녀와서 복학해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3탄으로 ㅎㅎㅎ) To be Continued...


늘작가



에필로그



늘작가는  그 이후로 이대 미대, 음대생과 미팅을 하지 않았지만, 그 외 다른 학과 이화여대생을 많이 만났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직장 다니면서 그리고 SNS 활동하면서 이화여대 출신 분들과 교류를 많이 했다. 팀장 시절 직장 보스 분(부사장)도 이화여대 출신이었다. 그리고 지금 블로그 대주주 중 이화여대 출신 많고, 특히 늘작가 여동생도 이화여대 출신이다. :)


ㅇ늘 아침에 앨범 뒤져 찾은 사진이다 (가운 잆는 남자 늘작가^^ 같은 해 졸업) 흙수저 출신들이 어떻게 서울 그것도 둘 다 사랍대를? 이와 관련 글로 만들어 이번 주에 올리겠다.



이화여대 (출처 : 이화여대 홈페이지)

와, 

올해 이대 138주년이네.

늘작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38번인데, 더 축하합니다 !


이화여대

특히 음대와 미대 출신 분들

존경합니데이.

저의 우상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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