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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작가 Sep 04. 2024

부장 팀원의 첫 출근길

1화

21년 1월 4일 월요일 아침. 올해 1월 1일은 금요일이라서 3일 연휴를 보내고 새해 첫 출근을 하였다. 매년 새해 첫 출근길은 평소와 다르지만 올해는 내 직장 생활에서 아주 특별한 출근길이다. 그 이유는 오늘부터 나는 팀장이 아니라 팀원으로서 회사를 다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부장 팀원이다.



보름 전, 작년/지난달 퇴근 무렵 일이 다시 생각이 난다. 그날 내가 모시고 있던 직속 상사인 회사 고위임원실이 하루 종일 불이 났었다. 특히 년 차가 높은 직원들이 많이 들락거렸다. 지금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직감을 하고 담담하게 자리에 아 있으면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퇴근 시간인 6시가 넘어서 나를 그날 면담자 중 마지막으로 불렀다. 문을 열고 임원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분이 말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전무님, 저에게 명퇴 제안 하려고 부르신 것이지요? 올해 초 연봉 계약 때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 명예퇴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명퇴하지 않으면 아마 팀장에서 내려가야 할 텐데, 그것은 회사 판단일 테니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이때 이야기를 브런치스토리와 블로그에 자세히 올렸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명퇴 제안을 거부하고 보직 팀장에서 물러나 부장 팀원이 되었다.


명예퇴직 (출처 : 연합뉴스)

왜 내가 명예퇴직을 거부했는가? 돈 때문인가? 돈이 없어서인가?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 이 회사 그만두어도 죽을 때까지 우리 가족 먹고살 돈은 있다. 물론 돈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돈이 아쉬워서 회사 계속 다니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퇴직 후 직장을 잡기 어렵기 때문인가? 이것도 아니다. 나는 이 회사 퇴직하면 더 이상 월급쟁이로 살 생각이 없으므로 재취업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면 무엇 때문이냐고?


첫째는 이 회사에서 정년퇴직하는 것이 늘작가 인생 버킷 리스트 1호이기 때문이다. 회사, 특히 사기업에서 성공은 임원이 되는 것인데, 그 길이 아니더라도 이런 케이스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나는 이 꿈을 20여 년 전 이 회사에서 제일 잘 나갈 때인 해외주재원 사무소장 시절부터 꾸었다.


둘째는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다닐 때, 아빠가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었을 때, 대기업 0000 회사에 다닌다는 말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당시 첫째가 대학생 3학년이었고, 둘째는 고등학생 3학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부모 직업으로 기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등록금 혜택도 무시할 수 없다.


 셋째로, 물론 돈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이 회사 퇴직하면 지금 받는 급여 50% 수준의 직장을 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급여는 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특히 지금 다니는 이 회사는 국내 최고 대기업 계열사 중 하나이고 급여와 각종 복리후생은 글로벌 탑 수준이다. 가장 좋은 노후 대책 중 하나는 정년퇴직이다.


이런 세 가지 이유를 그날 전무님께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다. 나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그분은 오히려 팀장 자리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날 전무님께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네 번째로는 나는 아직 회사 밖 지옥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일하는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만약 이 회사를 나가게 되면 재취업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당시 부동산과 재테크로 이름을 얻어가고 있었지만 회사 밖에서 살아남기는 역부족으로 판단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기반과 노후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이 한 명은 대학생이고 둘째는 대입 준비하고 있는데,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많이 남았다. 명퇴를 하지 않고 회사를 계속 다니는 대부분의 가장이 이런 가족 생계유지가 주요 이유인데,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끝까지 버텨서 우리 가족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그날 퇴근하여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하고 부장 팀원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날 아내에게 보낸 카톡(3년 전부터 난 술 완전히 끊었다.)

불과 보름 전에 나에게 생겼던 일인데, 몇 년 전 일처럼 아득하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 2021년 조직 발표가 나고 회사조직도에서 내 이름이 사라졌다.


미리 각오는 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보직 팀장을 나는 이 회사에서 두 번 달았었다. 첫 번째는 2003년 차장 초년 차 시절이었던 해외 주재원 사무소장 발령을 받고 6년 동안 팀장급 보직을 지냈다. 그리고 2009년 한국 본사 귀임 후에는 팀원으로 발령이 났었고, 절치부심하여 다시 재기에 성공하여 2012년에 팀장을 다시 달았다. 그리고 8년 동안 두 번째 회사 리즈 시절(첫 번째는 해외주재원 시절)을 보낸 후 무대 위 주연의 자리에서 물러 났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1년 1월 4일 나는 부장 팀원으로서 첫 출근을 했다.


출근, 출근길(@copywright by 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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