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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Aug 12. 2021

피자 먹고 나를 돌아 보는 이유

피자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국민학교 때 처음으로 피자를 먹어 보았다.


초등학교 라는 이름조차 없었던 그 시절

피자라는 음식은 적어도 나에게는

누구나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내가 피자라는 것을 궁금해 하면

엄마는 식빵 위에 소세지, 양파, 피망, 치즈를 넣고

새빨간 오뚜기 케찹을 찹찹 뿌린 뒤

이것이 피자라며 만들어 주셨다.


그러나 생전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이것이 진짜 피자의 맛인지는 도대체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가 만든 피자의 맛은 소세지빵 같기도 했고

계란 빠진 토스트와 비슷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서 꽤나 잘사는

친구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근처의 미군부대에서

일을 하고, 그 어려운 영어도 잘한다고 했었다.


친구네 집 식탁 위에는 양키시장에서 종종 봤었던

내 몸통보다 큰 흰 종이 박스가 놓여 있었고,

그 박스 위에는 'Pizza' 라는 영어가 쓰여 있었다.


박스를 열자 거대한 조각의 피자들이

마치 운동회 시작전에 다같이 가운데 손을 모으고

화이팅을 하듯이 동그랗게 모여있었고

난 두 손으로 공손하게 처음 뵌

진짜 피자 한 조각을 하사 받았다.


그 친구는 피자를 건네주며

이것은 촌스럽게 피자라고 읽으면 안되고

핏자라고 읽어야 한다며 제법 거드름을 피웠다.


그리고 생에 처음 그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그 어색한 맛을 감출 수 없었다.


피자 치즈라고 불리는 하얗고 질긴 것들은 입속에서 미끄덩거렸고

빨갛고 동그란 고기와 햄은 소금에 절인 것 처럼 짰다.


그 중 가장 특이한 맛과 향은 맛있게만 생긴

손톱 크기만한 까맣고 동그란 도넛같은 것이었다.

그것들은 올리브라고 불리었는데

생전 처음 맡아본 이 향신료는 날 혼란스럽게 했다.


난 피자라는 음식을 그토록 동경하며 궁금해 했지만

막상 너무 강한 이국적인 첫 만남으로

내 머리 속의 싫어하는 음식 순위에 꽤 오랫동안

피자가 들어있었다.


청소년기가 되자 시내에 처음으로

피자헛이라는 가게가 들어왔다.


이제는 더이상 피자를 먹기 위해서

미군부대에 출입 가능한 친구를 둔 아버지의 아들과 친해질 필요는 없었다.


시내에 오픈한 피자헛에는

매일 이국적인 맛을 찾는 손님들로 줄을 서 있었고

흰 천으로 된 냅킨을 목에 두르고 우아하게 앉아서

피자를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먹었다.


피자헛의 피자는 미군 부대의 그것처럼

너무 짜지도 이국적이지도 않았으며

고구마와 불고기의 조합은 환상적인 맛이었다.


그 시절의 피자는 졸업 혹은 당일 퇴원 수술 정도로

한 사람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날에만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


요즘은 회사에서 야근을 할 때 피자를 시킨다.


야근을 한다는 것은 집에 갈 시간도 없는데

밥먹으러 갈 시간이 있을리 만무한 상황이다.


그럴때 피자는 배달도 빠를 뿐더러

대충 회의실에 박스를 열어 놓으면

한명씩 와서 손으로 대충 들고 먹기도 좋고

들고 나가서 이면지 위에 올려놓고 일하며 먹기도 좋다.

특히 마지막에 국물이 남지 않아서 뒷처리하기도 편하다.


오늘도 늦은 시간 회의실에서 퀭한 상태로 피자를 먹다가

미군부대와 함께 해온 피자의 첫 만남 이야기를 하니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연세가 많으신 윗사람들 입맛에 피자는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국적인 맛이고

유학파가 많은 아래 사람들 입맛에 피자는

너무도 한국화되어 본래의 색을 잃은 맛이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들

피자를 접어서 입에 욱여넣고는

힘겹게 종이컵에 담긴 콜라를 삼킨다.


모두 자리로 돌아간 후 회의실 피자박스 위에

한 두조각 널브러진 피자를 보고 있노라니

별미도 아닌 채 고향도 맛도 잃어가는

정체성 없는 이도저도 아닌 이놈의

피자가 처한 상황이

피차 나와 흡사하다.


중간에 끼여서

찾아가서 먹긴 아깝고

배달 시키기엔 비싼

잘해주긴 뭐하고

없자니 아쉬운

딱 피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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