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1. <옛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에 대해서 설파하다
노곤노곤해 잠이 스스륵 들뻔 했는데 시끌벅쩍한 소음 소리에 잠이 훅 날아가버렸다.
'뭐야?'
밖에는 다솔이와 몇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봤지?"
나는 책방 문을 열었다.
"왔어? 밖에서 뭐해?"
"우와! 뭐야. 너네 엄마 책방 하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 그래. 나 다솔이 엄마 아니고, 책방 언니."
아이들은 내 혼을 쏙 빼놓은 채로 우르르 책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밥 먹어도 된다고 해서요! 그래서 왔어요. 아줌마"
한 남자 아이가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맞지. 마음껏 먹어. 근데 아줌마 아니고 책방 언니."
"와!!!!"
책방 안을 다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네 명의 꼬마 손님이 책방 안을 소리로 가득 채웠다.
나는 아이들이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걔는 이탈리아 갔다며?"
"응. 다음 준가 다다음주에 온대. 나도 학교 빠지고 여행 가고 싶다."
"너는 저번에 가지 않았어?"
"응. 일본 갔다 왔어. 엄마 아빠가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가까운 곳 가자고 해서."
"너는?"
"나는..."
"나는 중국 갔다왔는데. 중국 베이징 가봤어? 거기 엄청 커."
"..."
아이들은 '해외여행' 얘기에 한 참인 듯 했다. 그 와중에 유독 다솔이만 말이 없었다.
"아줌마! 아줌마는 어디어디 가봤어요?"
"나? 나는 해외 안 좋아하는데. 나는 국내파야."
"에이. 돈 없어서 해외 안 간거 아니고요?"
어린녀석이 보통이 아니다. 어떻게 알았지?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나는 성숙한 자아를 지닌 어른이니까.
"너네는 국내 여행 얼마나 해봤어?"
"...."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된 것마냥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주도요!"
그때 한 아이가 당당하게 말했다.
"오! 또?"
"어딘지 모르겠는데... 시골이요."
"에이- 거긴 여행으로 가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면 서울 여행은 해봤니?"
나의 말에 똘망똘망하게 대답했던 아이가 헛웃음 치며 말했다.
"지금 사는 곳이 서울인데, 서울 여행을 어떻게 해요?"
"오~~ 맞는 말! 너 천재다!"
아이들은 마치 나와의 말싸움에서 이겼다는 듯이 의기양양해보였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럼 너희들이 살고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서울에 대해서 한 번 여행을 떠나볼까? 이 책으로 말이야."
나는 아이들이 얼추 밥을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 이번 주 <독점>의 서적으로 선정한 책을 꺼내들었다.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책을 꺼내들자마자 당연한 반응. 아이들은 이내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순 없다.
"경복궁 가본 사람?"
저요저요! 모두가 경쟁하듯 가봤다고 했다.
"그럼 경복궁은 어디에 있지?"
"경복궁 역이요!!"
"맞지! 역시 똑똑하군. 이 책은, 지금 현재의 서울에서 조선시대의 한양을 되짚어가는 서울 여행기라고 할 수 있어."
"옛날 책인데요? 2009년이면... 저희 태어나지도 않을때인데."
"큼큼- 그건 그래. 물론 서울 여행 관련 신간 서적들이 있겠지만, 그 책들 사이에서 발견한 보물이랄까? 게다가 '옛 지도'가 핵심 포인트거든. 이 옛 지도는 변화하지 않기에, 시대를 타지 않는 단다. 그렇다는 것은 이 책은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거야."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얘기가 길어질까봐 대충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된 김에 책을 팔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옛 서울을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설명했다.
"자, 책을 읽을 때에는 가장 먼저 책 쓴이를 봐야 해. 그 분이 얼마나 신뢰할만한 분인가를 검증하는 거지. 이 책의 저자는 역사지리학자란다. 다들 역사지리학자가 뭔지 알지?"
"네! 역사 전문가요."
"맞아 맞아! 이 책의 글쓴이는 옛 지도를 펼쳐보면서 서울 여행을 해보라고 추천해주고 있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조선의 심장부, 궁궐과 종로 답사
2장 서울을 가르는 물길, 청계천 답사
3장 한양 읽기의 하이라이트, 도성 답사
4장 성문 밖 이야기
역사지리학자 이현군 작가는 서울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그동안 중고교 사회과 교사, 대학생,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서울 답사 강의를 진행해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이 쉽고, 편안하게 읽힌다. 게다가 친절하다.
이 책은 쉽게 빠르게 읽으면 안될 것 같은데 눈과 손은 빠르게 다음장을 탐한다.
(소장의 가치가 충분하다. 서울 곳곳이 궁금할 때 문득문득 꺼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서울에서는 옛 성곽의 루트를 따라 걷는 것이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성곽의 경로를 따라가면 조선시대 옛 중심부의 경관을 조망하면서 동시에 서울의 공간적 확대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이현군, 17페이지
짜란~!
"이게 지도예요?"
"이게 지금 우리가 발을 디딛고 있는 서울 땅 지도야. 조선시대에 그려진."
"와. 완전 암호같아."
"노노! 글쓴이가 말했지. 지도는 암호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를 그린 그림이다. 이 지도 역시, 서울에 사는 이들이 보기 편하도록 그린 것이야."
아이들은 낯선 지도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명탐정 코난처럼 과거의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맞춰가면서 어디가 어디인지 추리해나가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지 않아?"
이 책은 지금의 공간에서 옛 지도상 위치를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도 배우게 된다. 가령, 조선 초기 궁궐은 백악 아래 경복궁, 응봉 아래 창덕궁과 창경궁, 무악 아래 연희궁(도성 밖 연희궁은 별궁)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 세워진 궁은 덕수궁과 경희궁이라는 사실이다.
왜 이리 궁이 많나 했더니만, 왕이 사는 공간 뿐만 아니라, 세자가 태어난 곳, 나고 자란 곳, 은퇴하고 생을 마감하는 곳도 다 '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오호라!)
게다가 사극에서 많이 부르짓는 '종묘사직'의 원뜻을 이제야 알았다. (무지한 나를 탓해야지, 누굴 탓해)
종묘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곳이며, 사직은 토지신과 곡식 신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종묘는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 사직은 농업국가의 경제적 안정을 국왕이 책임진다는 걸 보여주는 곳으로써 종묘와 사직이 나라의 근간을 상징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오오! 역사 책이네요?"
"뭐. 역사가 가득한 책이지. 근데 역사책은 너무 어렵고 무겁잖아. 이 책은 글쓴이가 만들어준 여행 코드대로 따라다니면서 읽기에 더없이 좋아. (주변에 아는 척 하기도 좋고!)"
"오! 울 아빠가 여행 가면 늘 설명해주느라 바쁜데... 우리 몰래 이렇게 책 보고 공부했나보다."
"그렇지! 근데 네가 이 책을 읽는다? 아빠에게 되레 설명을 해줄 수 있는 거지."
나는 계속 아이들과 함께 책을 훑어 봤다. 아이들도 어느새 책에 빠져든 듯 했다.
이 책에서 또 다른 재미는 그 지역의 과거 에피소드를 엿 볼 수 있다는 것,
지명의 뜻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미 있는 미신도 훔쳐 볼 수 있었다.
숙정문은 북문이기 때문에 음의 방향입니다. 속설에는 이 문을 열어두면 한양 여인네들이 바람이 난다고 해서 이 문을 받아두었다고 합니다.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이현군, 177페이지
"게다가 사람이 죽으면 관에 넣잖아. 그런 관은 도성 밖 귀후서에서 제작했대. 지금의 남대분과 가까운 후암동, 청암동 부근이지."
"와! 대박 신기."
"그치?"
"아줌마는 그럼 여기 다 가봤어요?"
"그럼.근데 아줌마 아니고, 언니. 나는 심심할 때마다 가곤했는데 이 책을 읽기 전에 가봐서, 다음 번에는 이 지도를 참고 삼아 가보려고. 너희들도 함께 가볼래?"
"네!"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제, 학원 시간 늦겠다. 얼른 준비하고 가야지?"
"네! 저희 내일 또 올래요."
"저도요! 내일 이 책 읽을래요."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가방을 메고 떠났다.
"진짜 조만간 아이들하고 답사를 떠나야겠네. 그렇다면 그날을 위해 미리 사전 준비를 해볼까?"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