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기자는 'SNS 마와리'를 돌고 있었다.
'마와리'는 언론사에서 쓰는 은어로, 기자가 발생한 일을 알아내기 위해 출입처 이곳저곳를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경찰 기자가 경찰서를, 정당팀 기자가 국회의원실 마와리를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종 유명인의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를 샅샅이 훓어보는 게 응당 곽기자의 일이었다.
곽기자는 방금 외교부에서 나온 속보 기사를 하나 처리했지만, 숨 돌릴 틈은 없었다. 잠깐만 한 눈 팔아도 조회수 팍팍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니, 일단은 프레스 기계로 제품 찍어내듯 무조건 써서 올려야 했다. 사실 곽기자가 조금 전에 올린 외교부 브리핑 속보 기사를 쓰는 데에도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통의 연합뉴스 기사를 '전체 복붙(북사+붙여넣기)'한 다음, 뉴시스나 뉴스1 등 다른 통신사 기사에서 따온 문장을 적절히 섞어가며 자사 문법에 맞게 살짝 바꿔주는 이른바 '우라까이의 기술'이었다. '우라까이' 역시 언론계에 남은 일본말 속어로, 다른 기사들를 조합해서 마치 새로 쓴 기사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뜻이다.
'우라까이는 아무나 하나? 그거도 기술이라니까?'
이런 자부심을 언론사 경력 도합 12년 중 4년을 온라인 뉴스부에서 보낸 곽기자는 늘 갖고 있었다. 물론 오보나 오탈자로 댓글창에서 쪽팔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기란 쉽지 않은 법. 오탈자는 물론이고 팩트 체크 따위는 올리고 고쳐도 된다고 곽기자는 물론이고 부서 사람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속도전을 주도하는 건 온라인뉴스부를 이끄는 백부장이었다. 그런 백부장의 호통이 곽가지의 뒤통수를 때렸다.
"어이!(백부장은 후배 기자를 늘 이렇게 불렀다) 이거 뭐야!"
"네?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김XX가 페북에 뭐라 썼잖아. 이런 거 체크 안 하고 뭐해!"
"엇, 조금 전까지 아무 것도 없었는데요. 바로 확인하겠..."
"임마, 뭘 확인을 해! 빨리 써서 올려!"
김XX는 최근 뜨고 있는 여당 의원이었다. 청와대나 정부와 걸핏하면 각을 세우고 있어 여야 지지자들 모두에게 먹히는 인물이다. 곽기자도 조금 전에 체크를 했는데, 그 직후에 뭔가를 올린 것이었다. 온라인 기자는 이런 점이 힘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사 거리가 생겨 긴장을 놓을 틈이 없었다. 고함을 지르는 백부장을 뒤로 하고, 곽기자는 침착하면서도 빠르게 기사를 만들었다. 게시물을 '복붙'하고, 주어와 날짜, 서술어를 끼워 넣고, 마지막에는 '한편'이라는 마법의 단어로 최근 행보까지 한 줄 더해주고, 그리고 화면 캡처한 SNS 페이지를 관련 사진으로 올려주면 끝이다.
"김XX 기사 올렸습니다"
곽기자는 '이런 기사는 몇 분 걸리면 안 되지'라고 스스로 뿌듯해하면서도 괜히 다급한 척 헐레벌떡 백부장에게 기사를 보냈다고 큰 소리로 보고했다. 하지만 이미 다른 데에서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백부장의 심기를 좋게 하기엔 부족했다. 곽기자는 뭔가 만회할 거리가 필요했다.
"부장, 저번에 말씀드린 단독 기사 보냈습니다"
"단독? 아, 그거. 알았어. 내가 데스크 보고 올릴게"
'단독'이라는 말에 곽기자는 뒤를 돌아봤다. 법조팀에 있다가 며칠 전 온라인뉴스부로 온 후배 A였다. A는 서초동에서도 취재 잘 하는 기자로 유명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기사화를 막던 거대 광고주 기업 대표의 횡령 의혹을 본인 SNS에서 터뜨려 버렸고, 회사에서는 '그렇게 SNS 좋아하면 온라인부로 가라'고 A를 발령내 버렸다.
곽기자는 얼른 기사 입력 시스템을 열어 A가 올린 기사를 읽었다. 횡령 의혹을 받던 기업이 노동자를 부당 해고하고 장애인 고용을 편법으로 피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곽기자는 기사를 읽으며, 현장 취재와 피해자 실명 인터뷰, 법적 미비점, 기업의 반론까지 충분히 들어간 '좋은 기사'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좋은 기사'와 '팔리는 기사'는 엄연히 달랐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곽기자는 '팔리는 기사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A의 단독 기사에 묘한 경쟁심마저 느꼈다.
그때 곽기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캡처해 올린 남자 아이돌의 SNS 게시글을 포착했다. 평소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걸로 유명한 아이돌의 게시글에는 소위 '남혐' 용어로 불리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곽기자는 얼른 아이돌의 SNS 페이지에 들어갔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은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그래서 아직 인터넷에는 기사도 없었다.
곽기자는 얼른 기사를 쓰려다가 멈췄다. 이대로는 뭔가 약했다. 곽기자는 아이돌의 팔로워를 뒤졌다. 여성임에도 페미니즘을 강하게 비판했던 보수 성향의 인터넷 논객이 눈에 띄었다. 곽기자는 논객의 SNS에서 페미니즘을 까내리는 듯한 과거 게시글 몇 개를 캡처했다. 그러자 곽기자의 머릿속에선 구도가 그려졌다.
<1)남자 아이돌이 '남혐'이라는 단어를 쓴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 2)이를 본 유저들의 비난 댓글이 쏟아지자 얼른 게시물을 삭제했다. 3)아이돌 팔로워 중에선 안티-페미니즘으로 유명한 인터넷 논객이 있다. 4)논객은 아이돌의 SNS를 종종 찾을 것으로 추정된다. 5)아이돌을 비난하고 게시글을 내리게 한 중심에는 논객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곽기자는 아이돌이 올렸다는 게시물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 캡처가 합성일 수도 있었다. 인터넷 논객이 아이돌을 순수한 팬으로서 팔로우했을 수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곽기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에게 모두 팔릴만한 기사였다.
'아니면 말지 뭐. 내리면 되잖아'
곽기자는 머릿속에 그린 구도대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단독] 아이돌 A, '남혐' 표현 썼다 화들짝...논객 B가 비판의 중심?
'인기 그룹 OO의 멤버인 아이돌 A씨가 14일 △△라는 표현을 쓴 게시물을 올렸다가 돌연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는 여초 커뮤니티에서 주로 사용돼, 최근 남초 커뮤니티에서 '남혐' 표현으로 지목돼 많은 비판을 받은 용어다. (중략) 본지 취재 결과, A씨가 게시물을 내리게 한 비판의 중심에는 보수 성향의 논객 B씨가 있다는 의혹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한편, A씨는 최근 드라마 '☆◇▽'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 온라인뉴스부
곽기자는 기사를 올리고 얼른 백부장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부장, 단독 하나 올렸습니다"
전송 기사 목록 최상단에 곽기자의 기사와 후배의 단독 기사가 나란히 올라와 있었다. 이윽고 기사가 하나씩 출고되기 시작했다. 곽기자는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역시, 자신의 기사는 가장 메인에, 후배의 기사는 중간보다 아래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곽기자는 태연한 척 후배를 바라봤다. 후배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백부장에게 다가가 언성을 높였다.
"부장, 제 기사 너무 눈에 안 띄는 거 아닙니까"
백부장은 난감한 척 하면서도 짜증이 가득 섞인 표정으로 후배를 바라봤다. 하지만 괜히 시끄럽게 만들긴 싫었다. 백부장은 '알겠다'는 뜻으로 손을 몇 차례 내저었다. 그리고선 홈페이지 메인에 곽기자의 기사와 후배의 기사를 나란히 배치했다.
1시간 뒤, 사내 메신저에 <오전 11시 27분 현재 기사 조회수 순위>라는 백부장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곽기자의 기사가 제일 위에 올라와 있었고, 후배의 기사는 아래쪽 어딘가, 바닥 가까운 순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다시 홈페이지 기사 배열이 변경됐다. 여전히 가장 메인에 있는 곽기자의 기사는 썸네일에 그래픽이 곁들여지고 제목은 더 굵어졌으며, 후배의 기사는 페이지 중간 아래로 내려갔다.
곽기자는 백부장이 후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귀를 기울였다. 백부장은 고함치지 않고 싸늘하게 후배에게 말했다.
"다시 법조 가고 싶어? 그럼 성과를 내, 성과를. 알겠어? 가봐"
백부장의 얘기를 엿들은 곽기자는 뿌듯했다. 서초동에서 날아다녔다는 경쟁자를 물리쳤다는 느낌도 들었다.
'새끼, 온라인 기자는 아무나 하냐. 이거도 기술이야, 기술.'
곽기자는 '성과'를 내기 위해 또다시 손가락이 닳도록 마우스를 클릭하며 취재 일선에 뛰어들었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언론사나 이슈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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