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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모 기자 May 24. 2021

산업부 양 기자의 부동산 '붐업'

신부 화장처럼 정성스럽게 매만진 메이크업과 헤어, 등 뒤를 집게로 잡아 어깨에 딱 맞게 떨어지는 의상, 얼굴을 향해 쏟아지는 눈 부신 조명, 그 아래 늘어선 ENG 카메라들, '인이어'로 쉴 새 없이 들리는 PD의 콜.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늘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스튜디오 생방송이지만, 출연을 3시간 앞둔 양기자의 얼굴엔 짜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방송 시작이 자정이라는 늦은 시간인 것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양기자가 전혀 모르는 부동산, 그중에서도 강남 한 복판에 새로 지어지는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프로그램 주제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양기자는 작가가 보내주기로 한 원고 초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왔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아직이었다. 빨리 원고를 보고 조금 쉬려던 양기자의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양기자는 고개를 돌려 당번표를 바라봤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이 프로그램 녹화에 들어갈 기자들 리스트가 '짬밥' 순으로 적혀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이번 출연은 양기자 순서였다.


사실 매주 수요일 자정부터 한 시간은 부동산 업체 한 곳에서 통째로 산 시간이었다. 애매하게 광고를 하느니, 거액을 주고라도 한 타임을 통째로 사서 마음대로 내용을 채우는 게 이익이라는 계산이었다. 여기에 업체는 는 웃돈을 조금 더 얹어주고, 산업부 취재 기자를 출연시키기로 이미 경영진과 얘기가 끝나 있었다. 취재기자 개인이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작가 원고를 기다리며 투덜거리는 양기자 옆에 누군가 털썩 앉았다. 방송을 진행할 프리랜서 아나운서였다.


"양기자님, 안녕하세요"


양기자의 코에 삼겹살 냄새가 확 풍겼다.


"술 마셨어요?"

"딱~! 한 잔 마셨어요. 국장님이 주시는데 안 마실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방송 있어서 겨우 일찍 나온 거예요"

"한 잔이 아닌데. 국장은요?"

"국장님은 한 잔 더 하신다고 가셨어요. 저는 메이크업하러 올라가 볼게요~."


아나운서는 살짝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그때 노트북 메시지 창이 깜빡거렸다. 작가의 원고가 도착했다. 양기자는 원고를 열어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축 오피스텔과 분양 얘기였다. 얼마나 잘 지었는지, 역에서는 얼마나 가까운지, 실내 인테리어는 얼마나 고급자재를 썼는지 등이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었다. 양기자는 속으로 원고를 읽어보면서 낯이 화끈거렸다. 아무리 돈 받고 판 프로그램이고, 보는 사람도 얼마 없겠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양기자가 마치 며칠 살아본 것처럼 쓰여 있는 부분이 압권이었다. 양기자는 신축 오피스텔 건물을 본 적도 없었다. 양기자가 작가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뒤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양기자가 오늘 출연인가?"


양기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국장이 웬 양복을 빼입은 중년 남성 한 명과 서 있었다. 양기자는 얼른 일어나 인사를 했다. 국장은 남성과 양기자를 서로에게 소개했다.


"여기 오늘 방송 보시겠다고 오신 OO개발 이 사장님이시고, 여기가 우리 회사 에이스 양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OO개발 이길동입니다."

"양기자입니다"

"오늘 내가 특별히 양기자 출연하라고 얘기했습니다. 워낙 취재 잘하고 방송도 잘하는 친구라서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국장님께서 이렇게 늘 챙겨주셔서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양기자는 경쟁하듯 서로를 추켜올리는 국장과 남성을 보며 자리에 앉으려 했다. 그때 남성이 양기자에게 다가왔다.


"양기자님,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저희가 정말 정성을 다해서 회사 명운을 걸고 지었거든요.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방송에서 취재한 거하고 확실하게 얘기해. 정말 좋은 오피스텔이라고. 알겠지?"


국장의 얘기에 양기자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순번대로 돌아가는 데다가 원고만 읽는 수준인데 뭘 어떻게 잘하라는 건지. 그때 양기자의 표정을 읽은 남성이 말을 붙였다.


"양기자님도 한 번 분양 생각해 보세요. 그 정도로 좋습니다. 제가 자신 있게 권한다니까요"

"분양이요?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양기자님, 부동산은 돈 있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돈을 만들고 기회를 얹어서 분양을 받아야 하는 가죠. 아시죠?"


남성은 눈을 찡긋거렸다. 국장은 남성을 국장실로 데려갔다. 양기자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다시 대본을 봤다.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D 콜이 들리고 방송이 시작됐다. 아나운서는 그새 술이 다 깨서 맑은 목소리로 오피스텔 건물을 소개했다. 아나운서의 얘기를 부동산 전문가로 포장한 OO개발 실무진이 받아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양기자에게 아나운서의 질문이 들어왔다.


"부동산 담당하는 양기자님, 실제 가보시니 어떻든가요. 정말 좋던가요?"

"제가 요 며칠 일부러 오피스텔에서 지내봤습니다. 아, 정말 지하철 역에서 가깝고요, 무엇보다도 고급 자재를 쓴 실내 인테리어가 저 같은 여성의 마음을 딱 사로잡더라고요. 제가 조금 자세히 말씀드리면....(중략)"


양기자는 방송 실력을 뽐내며 오피스텔의 내외부에 대해 작가가 써주고 직접 인터넷으로 취재한 내용까지 청산유수처럼 읊었다. 양기자는 너무 진하지도, 옅지도 않은 화장에 조명을 받아 날카로운 부동산 전문가처럼 보였다. 국장과 이사장은 뿌듯한 얼굴로 그런 양기자의 모습을 브라운관을 통해 바라봤다. 양기자가 종종 카메라를 바라볼 땐, 국장과 이 사장과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언론사나 기업과 무관합니다.


#부동산 #펌핑 #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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