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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모 기자 Jun 17. 2021

온라인뉴스부 곽 기자의 영화 제작발표회 현장 취재


영화 제작 발표회 진행을 맡은 희극인 출신 사회자는 무대 앞에 몰려 앉은 기자들에게 연신 허리를 숙였다. 


"기자님들, 질문 많이 해주시고요. 아시죠?"


연단 앞에 빼곡히 몰려 앉은 기자들은 어떻게든 텐션을 끌어올리려는 사회자 대신 노트북과 핸드폰만 바라봤다. 무표정하게. 대포 같은 카메라 렌즈도 텅 빈 연단만 향해 있었다. 무안해진 사회자가 혼자 박수를 치고 "등장"을 외쳤다. 배우와 감독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줄이 들어와 양팔과 손가락으로 연신 하트를 날렸다. 사진 기자들은 카메라 플래시를 마구 터뜨렸다. 배우들이 자리에 앉아 영화에 관해 얘기를 시작하자 취재기자들은 '다다다다' 노트북을 두드렸다.


그 틈바구니 속에 곽기자가 껴 있었다. 곽기자는 사실 자기가 왜 영화 제작 발표회를 보러 와야 하는지부터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시를 내린 부장은 배우들 얘기도 좀 듣고 사진이나 동영상도 찍어오라고 했다. 카메라는 없었다. "요즘 핸드폰은 화질도 카메라 못지않다"는 이유였다. 곽기자도 이 점은 인정했지만, 이렇게 되받았다.


"사진 인터넷에 엄청 뜰 건데, 그거 대강 모아서 편집하면 되잖아요. 제가 왜 가요"

"너 그거 한 장에 얼만지 알아? 지난번에도 막 퍼다 썼다가 우리 박살난 거 기억 안 나?"


체념한 곽기자는 어깨로 자리싸움을 하며 손가락으로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진기자들을 보고도 궁금했다. 


'뭐하러 다들 이렇게 나와서 고생을 한다냐. 한두 사람이 주르륵 찍고 공유하면 편하지 않나?'


곽기자는 배우들의 대답을 열심히 받아치는 기자들을 보고도 의아했다. 심지어 일부는 바닥에 앉아서 무릎에 노트북을 놓고 배우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고 있었다. 곽기자는 포털 뉴스를 열었다. 이미 배우들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봐. 이거 그냥 긁어 붙이면 편한데, 뭐하러...'


이런 생각을 하며 제작 발표회보다 주변 기자들을 관찰하던 곽기자는 포털과 SNS에 올라온 사진을 다운 받아 세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배우들의 특정 신체부위가 교묘하게 중심에 오도록 사진을 편집했다. 곽기자가 할 일은 사진과 함께 관심을 끌만한 제목을 다는 일뿐이었다.


<여배우 A의 도톰하고 섹시한 입술, 정체는?>

<여배우 A의 두근거리는 가슴>

<할리우드 안 무섭다… 배우 B가 주먹을 불끈 쥔 이유>

<[단독] 제작발표회에 나선 A와 B의 은밀한 손동작>


곽기자는 영화의 주제, 연기의 본질, 촬영 현장 에피소드 같은 감독과 배우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않았지만, 전혀 기사 내용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용은 긁어 붙이면 되는 거고, 무엇보다도 클릭한 사람도 내용엔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게 곽기자의 판단이었다. 곽기자는 문뜩 '뒤로 가기' 버튼이 엄청난 발명이라고도 생각했다. 곽기자는 이렇게 10여 개의 기사를 얼른 사진과 함께 기사 입력창에 집어넣고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얼른 들어가 유튜브에 올릴 사진을 편집하고 자막 작업을 해야 했다. 곽기자는 발표회장을 조용히 나서며 아직 현장에 남은 기자들과 배우, 감독을 바라봤다. 영화 형식과 배급 방식을 두고 감독과 배우, 일부 기자들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곽기자는 아랑곳 않고 뒤돌아 나가며 미소를 지었다. 곽기자는 빠르게 올라가는 조회수를 상상하고 있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언론사, 현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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