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재미있게 써보라"는 부장의 말을 곽기자가 너무 믿은 게 화근이었다. 곽기자가 인기 크리에이터 인터뷰 기사를 발제하고, 부장이 써보라고 했을 때 너무 기뻐서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달려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20개씩 남의 기사나 베껴 쓰고 억지스러운 제목을 붙여가며 조회수를 올리는 일은 온라인 뉴스 제작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곽기자에게도 어느 정도는 고역이었다. 그래서 곽기자는 어렵사리 인터뷰를 섭외해 직접 현장까지 가서 방송하는 모습도 지켜보고, 해당 방송 업로드에 맞춰 기사를 썼다.
곽기자는 기사를 쓰면서도 '자유롭게, 재미있게'라는 부장의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쓰고 싶었다. 스스로의 일에 의미부여를 했고, 그에 부합하고자 했다. 그래서 곽기자는 기사를 방송 링크로 시작했다.
<http://www.utube.com/watch?ejoMMe02>
그리고 독자가 꼭 보면 좋을 세 장면의 시간대를 적고 간단한 설명을 붙였다. 장면 설명도 정제된 문장이라기보다는 크리에이터의 얘기를 그대로 살리는 쪽을 택했다. 독자가 인터뷰한 크리에이터의 캐릭터와 방송 컨셉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판단이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13:04 날계란 20개 목청 실화? "날계란이 켁켁 내 목소리 어때?"
곽기자는 이어지는 방송 장면 묘사에도 주관적인 감정과 신조어를 담았다. 그게 사실만 전달하는 기사와는 다른 결을 가진, 크리에이터와 트렌드를 말하는 온라인 기사만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곽기자의 표현이었다. 누가 뭐래도 조금은 4차원적인 크리에이터를 만나고 방송을 곁에서 지켜본 건 곽기자 자신이었다.
일문일답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언론 인터뷰의 딱딱한 어법을 피했다. 주어와 술어의 일치나 문법보다는 스마트폰에 녹음한 내용을 돌려 듣고 조사 하나까지도 받아치며 자신의 질문과 크리에이터의 말투,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 애썼다.
- 막 춤췄잖아요, 아까. 막. 그때, 별풍 터졌을 때. 진짜 얼굴이 막... 정말 좋아서 추던데요?
"정말, 별풍 쏴봤어요? 진짜 기자님은 몰라요, 몰라. 얼마나 고마워. 100원, 1000원이 문제가 아니라고. 진짜 받으면 막. 근데 춤 이상했어요? (웃겼어요) 웃겼으면 됐네. 이게 윈윈 아니에요? 시너지인가? 몰라, 여튼 좋아, 재밌어"
이런 식이었다. 분량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 역시 지면이나 정해진 방송이 아닌 온라인 뉴스만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고 곽기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껏 빠르게 베껴서 기사를 '생산'하느라 못했을 뿐이었다. 곽기자는 그렇게 다 쓴 기사를 쭉 보고, 오탈자를 꼼꼼히 잡고 당당하게 외쳤다.
"부장, 기사 올렸습니다"
"오케이"
곽기자는 기사를 열어보는 부장을 살폈다. "자유롭고 재미있게" 썼으니, 내심 문체를 그대로 살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곽기자의 기대와 달리, 부장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윽고 모니터를 쏘아보던 부장이 입을 열었다. 일단 대화 상대는 곽기자가 아니었다.
"어이, 박 차장. 곽XX 올린 기사 한 번 안 봤어?"
"네? 부장이 보시는 줄 알고. 죄송합니다. 보겠습니다"
부장의 인상은 더 구겨졌다.
"어이, 꽉(부장은 곽기자를 늘 이렇게 불렀다). 인마, 넌 블로그를 쓴 거야, 기사를 쓴 거야"
곽기자는 서둘러 부장 앞에 섰다.
"부장이 자유롭게 써보라고 하셔서요. 이 크리에이터가 좀 4차원이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해서, 최대한 캐릭터에 맞춰서 써 보려고"
"새끼야, 이게 무슨 기사야, 이게. 얘가 대체 뭔데. 얘 구독자 몇 명인데"
"13만쯤 됩니다"
"13만? 100만 넘는다고 안 했어?"
"100만은 안되는데, 요즘 어린애들이 가장 많이 보는"
"넌 인마, 기사 가치도 없는 이런 애를. 뭐 이리 길긴 길어. 넌 인마, 이건 독자를 우롱하는 거야. 우리 회사 엿 먹이는 거라고"
"... 죄송합니다"
"인마, 이거 기사 좀 쓰는 줄 알았더니만, 이게 뭐야. 인터뷰도 이게 무슨 말이야. 주술도 하나도 안 맞고. 너 대학 나온 애 맞아?"
"..."
"다시 써. 왜 얘를 만났는지 의미 부여도 하고 말이야. 얘 대학은 어디 나왔어? 뭐하던 애야?"
"대학이요? 그게 왜..."
"인물 소개도 있고 그래야 할 거 아냐. 서울대 나온 애가 이런다 하면 얼마나 재미있어"
"죄송합니다. 고치겠습니다."
"후, 그러지 말고. 의자 갖고 와서 앉아. 애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이 잡아줘야지"
곽기자는 의자를 부장 옆에 앉았다. 그리고 부장의 질문에 대답을 했고, 부장은 그 대답에 맞춰 기사를 고쳤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이런 식의 기사가 나갔다. 분량은 애초의 반으로 줄었다.
<지난 2일 서울 마포 상암동의 한 스튜디오. 최근 구독자 10만을 넘긴 크리에이터 '제오드(JEOD)'가 삶은 계산 20여 개를 쌓아놓고 1인 방송에 한창이었다. 제오드는 최근 구독자를 15만 명 가까이 모집한 온라인 크리에이터(1인 방송 창작자)이다. 특히 제오드는 방황 끝에 2018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도 크리에이터로 큰 인기를 모으며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 시청자 후원받고 춤을 출 땐 어떤 감정이 드나?
"저는 후원금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00원이나, 1000원이나 액수에 상관없이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아까 춤을 출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곤 합니다. 그런데 혹시 아까 춤이 이상했나요(웃음)">
부장은 직접 고친 기사를 출고하고선 곽기자를 지긋이 바라봤다.
"어때, 훨씬 낫지? 그리고 아까 방송 링크는 마지막에 달아줘. 그건 좋은 아이디어더라"
"감사합니다, 부장"
곽기자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어떤 게 좋은 글이고 좋은 기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곽기자는 좌절하고 있었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언론사나 상황과 무관합니다.
#무모한시도 #가르침? #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