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면아래 May 08. 2024

이젠 목살로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여든두 번째

다른 사람들과 출장을 가거나 외근 후 저녁을 먹는 자리가 되면 삼겹살집에 자주가게 된다. 요즘은 외근이나 출장 자체가 줄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갈 일은 생기고 현지에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의 맛집을 우리가 어떻게 알까. 그래서 대부분 삼겹살집에 가는 것 같다.


저녁으로 파스타라던지, 일식 덮밥이나, 순두부찌개 같이 1인분씩 시켜서 간단히 시켜서 먹는 건 선택지에 없다. 술이 필요한 그들에게 파스타는 안주하기 힘든 요리일 뿐이다. 시대가 지나면 당연히 외근 후 저녁식사는 없어지고 혹은 하게 되더라도 좀 더 새로운 것을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보다 20살은 어린 동료들은 오히려 더 삼겹살 같은 것을 좋아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이걸 20년 넘게 보고 있을 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어라 술을 먹이는 문화는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요즘은 굳이 사양하지 않고 삼겹살 집에 따라간다. 애매한 시간이면 집에 갈 때 차도 막힐뿐더러 늦게 집에 도착해서 다시 밥을 차려 먹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출장이나 외근이 끝난 자리에서 저녁을 먹게 된다. 사람 사는 건 변하지가 않는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훌쩍 추월한 수십 년 후에도 여전히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먹고 있을 것이다.


이번 출장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 메뉴판을 보며 신이 나서 이것저것 시키고 있다. 삼겹살, 계란찜, 맥주, 소주, 물냉면. 물냉면을 벌써 시키나? 시키는 김에 난 공깃밥 하나를 달라고 했다. 술도 많이 먹지 않으니 고기를 반찬삼아 간단하게 먹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숯불이 올라오고 곧이어 삼겹살이 나왔다. 고기와 비계가 적절히 있는 삼겹살은 항상 보아오던 그 모습 있었다. 그런데 첫 고기와 두 번째 고기를 올리고 나니 정말 비계덩어리만 있는 고기 한 덩이가 나왔다. 총 네 덩이의 고기가 나왔는데 두 덩이는 비계가 거의 90% 살은 10%도 되지 않았다. 어린 직원은 곧바로 그 비계 덩어리도 불판에 올려놓았다. 보통 이런 일에 나서지 않는 나는 가만히 있을까 생했지만 모두 조용해져서 그들이 어떤 느낌일지 생생히 다가왔다. 틀렸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마음이 다가왔다고 느꼈었다.


할 수 없이 난 직원을 불렀다. 이거 뭐냐고. 이게 고기냐고.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준 것이냐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 젊은 직원은 정말로 뻔뻔하게도 이게 제일 맛있는 고기라고 단골손님들도 이 부분을 좋아해서 따로 드리기도 한다는 말을 웃으면서 했다. 거의 40년 넘게 삼겹살을 먹어왔지만 그런 이상한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누가 그래요? 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얘기네요. 당장 고기 바꿔와요"


회사에서 단 한 번 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나의 높은 목소리에 우리 테이블은 조용해졌다. 그 직원은 담담히 웃으며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미 구운 걸 어떻게 바꿔줘요? 하면서 싱글거렸다. 더 이상 말이 안 될 것 같아 주인을 찾았다. 다시 온 주인도 같은 이야기였다. 비계가 많으면 미리 말씀하셔야지 굽고 나서 얘기하시면 어떻게 하냐고. 이런 경우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당신이 드세요 그럼"


분위기는 더 조용해졌다. 직원은 없어지고 사장은 계속 안된다는 말만 했다. 나는 굽던 고기를 접시에 담고 사장을 주었다.


"계속 먹을 테니 그럼 고기 붙여 오세요"


사장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잠시 주방으로 가더니 적당히 비계가 붙은 삼겹살을 가지고 왔다. 원래는 안되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르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걸 나는 다시 받아서 사장을 주었다


"이제 삼겹살 안 먹어요. 목살로 주세요"


그래서 목살 한 덩이가 테이블로 왔다. 같이 온 직원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통쾌해하지도 웃지도 곤란해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마치 옆테이블에 재미있는 일이 생긴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나는 집게로 목살을 불판 위에 올려놓았다. 직원들은 메뉴판을 보더니 아까 그 직원에게 웃으며 고기와 다른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런 세상이 아니다. 나는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항상 알고 있다. 왜 그랬을까. 갑자기 그 세상을 잊고 과거로 돌아가 버린 나의 버릇없는 행동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삼겹살 비계조차 못 먹던 어릴 때 기억 때문에? 이 가게의 상도덕이 나의 양심에 위배되어서? 젊은 직원이 날 무시해서? 나이 든 사장이 만만해서?  아니다. 나는 내가 아직 어린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 걸 보여주고 싶은 자만심 때문이었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세상은 아니고 시대에서 백만광년쯤은 뒤떨어진 연극을 유리창 너머로 보는 듯한 시선만을 얻었다. 후회스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받은 목살을 타지 않게 잘 뒤집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 직원이 새로 가져온 삼겹살을 불판 위에 올려놔주었다.


"이번 고기 정말 좋아요"


동료 중 하나가 정말 그렇네요 하면서 살짝 웃음 짓고 자기들끼리 술을 따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리벽 뒤의 나는 그저 목살을 타지 않게 구울 뿐이었다. 박수 없는 오늘의 1인극은 그렇게 끝났다.


작가의 이전글 믹스커피 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