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잘 몰랐던 시절
빠진 항아리를 다시 채워 넣어야만 그 외로움이라는 항아리가 만족 하는 줄 알았다.
실제 항아리가 꽉 차오른 모습을 보고 외로움이라는 것은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그러다보니 옆에 보이기만 하면 채우기 바쁘던 시절도 있었다.
물을 채워야 할 항아리에 다른 것을 채워넣고 만족했다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언제나 탈이 났던 건 아닐까 싶다.
외로움은 그렇듯 나에겐 꽤나 무서운 존재였다.
이제는 내 항아리가 무엇으로 만들었는 지
어떤 것을 채워넣었을 때 외로움이라는 것이 덜한 지 정도는 알아갈 나이가 됐다고 믿어도
외로움은 나에게 언제나 뻔히 알지만 무서운 공포영화와 같았다.
지금은 외로움이 엄습하는 시간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끝없는 외로움의 수평선에 오트 한 척을 띄우고 물을 가르면 마음이 달라질까
기대되어 평소하지 않던 것들을 하나 둘씩 이어 나간다.
항아리에 기억해야 할 것들을 새겼다.
항아리에 버려야 할 것들을 바가지로 떠 버렸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을 가까이 해가는 지금,
매끄럽지 않은 항아리의 새긴 글 귀에는 인생과 희망만이 새겨져있다.
버려야 할 것들은 이제 버려서 생각나지 않는다.
오늘도 외로움이 달처럼 차올라
그대를 향해 부치지 못한 편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달빛을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