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없이 좋을 것만 같던 날씨가 어둑해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인연일 것 같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며 새로운 인연이 생겨나는 것에
생각보다 무딘 것은 날 선 바람 때문일까 생각이 듭니다.
이곳은 필리핀의 어느 휴양지입니다.
해야 할 일들을 끝내기 위해 노트북을 앞에 두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와이파이의 비밀번호를 키카드에서 찾습니다.
얼마쯤 일했을까요
한 없이 맑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나타난지도 모르는 검은 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비를 맞을 준비도 안 했고 비를 피할 준비도 아직 못했는데 말이죠.
인생은 원래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데 그게 맞나 봅니다.
은행을 나왔을 때도 계획은 세워뒀지만 아무런 예보 없이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너의 계획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라고 마치 하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죠.
원래 그게 인생이겠거니~하며 살기도 하고
어떻게든 바꿔보겠다며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진 않습니다.
지금 이곳의 비바람도 똑같은 거겠지요.
순간의 예고도 없이 또 아무런 준비 없이 비를 맞고 바람을 맞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조금 흘렀네요.
이제 비바람은 그쳤습니다. 아직은 해가 뜨기 전이고요.
저 멀리 해가 뜰 것 같은 모습이 보이긴 합니다.
억수 같이 내리던 비바람이 이렇게 금방 그칠지는 몰랐습니다.
역시나 인연일 것 같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하나둘씩 새로운 인연으로 싹트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바람이 불면 많은 것들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새로운 꽃씨가 다시 이 자리에 사뿐히 내려 새로운 일들을
맞이하겠죠.
오늘은 바람이 부는 날입니다. 새로운 꽃씨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