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인정'이 필요할 때 내가 일했던 방식
'퇴사를 목표로 했더니 주인의식이 생겼다.' 내 인생의 중심이 '회사'였던 순간에는 그렇게 생기지 않던 주인의식이었다. 그러나 퇴사를 목표로 정하고 삶의 중심에 '나'를 놓는 순간 '주인의식'과 '경영자의 관점'이 생겨버렸다. 참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그러자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명확해졌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 없는 것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그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건 바로 이것이다.
상사의 인정
당신의 직장생활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볼 땐, 이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 업무 만족
2. 급여
3. 승진
일을 통해 느끼는 만족감이 없다면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떠한 일을 완결한 후 기여했다는 느낌. 내가 산출한 결과물이 무언가에 영향을 끼친다는 느낌. 누군가와 협업하며 일을 처리한다는 느낌. 이러한 느낌이 바로 만족감일 것이다. 직장생활의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을 하면 돈을 준다. 이 돈으로 나와 가족들이 생활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돈이 내 일의 가치를 결정해 준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가치가 눈에 보이는 수치로 나타나는 것. 바로 급여다.
승진은 이러한 가치가 업그레이드하는 순간이다. 업무의 범위와 책임이 넓어진다. 자신이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 급여가 올라간다.
세 가지 목표 중 나머지 두 개의 목표를 아우를 수 있는 목표는 승진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완결할 수 있는 업무가 더 많아지니 업무 만족도가 올라간다. 급여가 상승하며 자신의 가치가 상승한다. 이렇듯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이 바로 승진이다.
이러한 목표에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상사'다. 특히 '직속 상사'는 내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생生'은 못 쥐고 있을지라도 '사死'는 무조건 쥐고 있을 것이다.
(양 과장과 타 부서 최 이사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양 과장: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최 이사: 어~ 그래. 양 과장.
양 과장: 요새 잘 지내시죠?
최 이사: 그럼 그럼. 근데 너 저번에 일처리 조금 급하게 하더라?
양 과장: 제가요? 그랬나요?
최 이사: 내가 너 살릴 순 없어도 죽일 수는 있어. 오늘 너네 부장한테 전화해서 '양 과장 요새 조금 그러네...' 한마디 하고, 상무님이랑 내일 식사인데 '양 과장이 요새 일처리가 조금 꼼꼼하지 못한 거 같네요.'이렇게 한 마디 하면 너 쉽지 않다.
양 과장: ... 죄송합니다.
최 이사: 농담이야 인마! 잘하자! 파이팅하고!
내가 입사 2년 차에 내 위에 과장과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조금 부드럽게 각색했지만 이 단적인 대화만 봐도 직장 상사는 내 회사 생활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회사생활의 목표를 이러한 3단 논법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회사생활의 목표는 '승진'이다.
'승진'은 '상사의 인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회사생활의 목표는 '상사의 인정'이다.
회사 생활의 가장 커다란 목표 중 하나가 승진이고 이는 '상사의 인정'에 달려 있음을 이야기했다. 즉,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해서 '상사의 인정'이 진심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승진이라는 게 참 어렵다. 쉽게 승진하는 듯하다가도 언젠가는 한번 제동이 걸린다.
이 차장: 아... 내가 서 부장님 보다 과장을 먼저 달았는데 말이야?
나: 네?
이 차장: 너네 서 부장님 있잖아. 내가 과장 승진을 2년 먼저 했다고.
나: 아! 그래요? 우와...
이 차장: 근데 난 지금 차장이고 너네 부장은 부장이고, 곧 임원 달 것 같던데...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이 차장은 서 부장의 후배다. 후배임에도 2년이나 먼저 과장 승진을 했다. 그러나 부장 승진에서 제동이 걸렸다. 그는 다음 해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나갔다. 서 부장은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탁월한 업무 역량으로 그 누구보다도 빨리 승진을 하고 임원을 달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탁월한 업무 역량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가졌다고 하더라도 '상사의 인정'이라는 것이 가진 속성 때문에 그 역량이 꽃피기 쉽지 않다.
'상사의 인정'은 다음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이나 객관적인 척한다.
정말 누가 봐도 업무역량도 뛰어나고 차별화된 전문성도 갖추고 있어 단숨에 임원까지 승진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왜 여기에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으로, 난 회사생활 10년 동안 이런 케이스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업무 역량에 대한 평가는 상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빠른 업무처리를 좋아하는 상사도 있고, 느리지만 꼼꼼한 업무처리를 좋아하는 상사도 있다.
또한 자기에게 잘 맞는 업무 영역이라는 게 존재한다. 영업 본부에 있었을 때는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본사 지원부서에 왔을 때 그저 그런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다.
업무라는 것이 수치화하고 계량화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 저 친구 일 잘하네!'라는 느낌을 받고 그 느낌을 공유할 뿐이다. 수능시험처럼 1등부터 꼴등까지 나래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 역량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승진은 '상사의 인정'이 기본으로 깔려 있고 연공서열, 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은 승진을 빨리 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누락만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상사의 인정'이 가지는 이러한 속성 때문에 업무처리는 방어적이 되기 쉽다. 상사의 눈에 확 들기보다는 상사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은근히 내가 부각되는 것을 선호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크게 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5가지 업무 처리 경향이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탑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1. 작은 결정도 하지 않으려 한다.
2.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3. 실수 없이 보고하려 한다.
4. 책임을 최대한 전가하려 한다.
5. 문제 해결보다는 상사의 생각을 파악하는데 집중한다.
이러한 5가지 경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상사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사의 인정'에서 탈출하고 생각해 보건대 이러한 업무 처리 방식은 회사 생활에도 내 삶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장인의 능력은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느냐로 측정된다. 지시를 잘 들어야 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지시를 듣지 않고도 얼마나 성과를 내는지가 중요하다.
고다마 아유무, 『가면 사축』
다음 화에서는 '상사의 인정'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한 후, 달라진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 써보려 한다.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던 방어적인 업무 처리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정리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