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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y 27. 2019

퇴사를 목표로 했더니 '주인의식'이 생겼다.

회사가 나에게 '돈'을 주는 곳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곳으로 변했다

'돈'을 주는 곳에서 '도움'을 주는 곳으로

회사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어

100개가 넘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는 많은 구직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 회사 저 회사 지원을 하며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항상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만 뽑아 준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나만 뽑아준다면 회사를 위해서 잘할 자신이 있다고. 일단 뽑아만 달라고.




ㅣ난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지?


회사에 막 들어왔을 무렵, 회사는 내 인생의 '구원자'였다. 후배들에게 '나 취업했다'며 술을 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엄마가 날 주변에 자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8년간 사귄 여자 친구에게 청혼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그로 인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입사 후 3년이 지날 즈음, 회사라는 게 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내 성과가 하나, 둘 나타났다. 동료들과 점점 친해졌고, 업무가 끝나고 상사 욕, 고객사 욕을 하며 동료들과 마시는 소주 한잔이 즐거웠다. '드디어 나도 진정한 직장인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입사 후 5년이 지났다. 승진이 주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급여가 올랐다. 꽤 많이 올랐다. 일을 더 잘하고 싶었다. 튀고 싶었다. 상사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고 싶었다.


육아 휴직 직전, 회사는 나에게 '돈'을 주는 곳이 되었다. 난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하고 회사는 나에게 '돈'을 주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상사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 건 어려웠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운대가 맞아야 한다고 다들 말했다. 나도 그 말을 믿었다. 모두 비슷한 방법으로 일을 하는 '피고용주'인 우리는 모두 고만 고만했다.


그래서 난 '회사 별거 있나? 일하고 돈 받으면 그뿐이지.'라고 회사의 의미를 그렇게 결정해 버렸다.


육아휴직이 끝났다.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꿀'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사는 '꿈'과 같은 시간도 보냈다. 그 시간 후 복직을 하였고, 난 퇴사를 목표로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이제 최대한 회사를 이용해야 한다. 퇴사를 하기 위해서.




ㅣ나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무엇일까?


'퇴사'라는 내 목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봤다. 어떻게 회사를 이용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목표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었다. 직장인이라면 알겠지만, 회사는 일이 대부분 파편화되어 있다. 큰 회사일 수록 더 그렇다. 잡무와 일상 업무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은 일도 내가 스스로 완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잡무나 일상 업무에서 내가 얻을 건 없어 보였다. 그 외의 일도 의사결정권자의 의견이나 지시에 따라 자료를 구성하고, 상사가 원하는 통계치를 뽑아내는 일이었다. 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비슷비슷한 함수로 이루어진 엑셀비슷한 템플릿을 가진 파워포인트빠르게 만드는 능력의 향상뿐이었다.


젠장. 법인카드라도 많이 써야 하나?
A4용지 좀 집에 가져가고, 아이가 쓸 연필과 형광펜이라도 좀 사갈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직을 한 나에게 더더욱 큰 일을 주지 않았다. 사원급이 하는 일을 주었고, 잡일을 많이 떠맡게 되었다. 퇴사라는 내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모두 시간낭비로 느껴졌다. 때마침 좋은 제안이 들어와 이직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실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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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경영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라고?


매년 새해가 밝아오면 어김없이 사내 방송을 통해 회장은 신년사를 발표한다. 우리는 모두 모여 떡을 먹으며 그 신년사를 듣는다. 차, 부장 급들은 신년사에 올해 회사의 방향이 들어 있다며 무조건 잘 듣고 숙지해야 한다고 피를 토하며 말한다.


그 신년사에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회사의 경영자라고 생각하며, 한 방향 정렬...



예전에 이 말에 내 반응은 굉장히 냉소적이었다.

미쳤어?
네가 주인이면서 왜 나보고 주인처럼 일하래?
돈 더 줄 거야? 아니잖아.
누굴 빙다리 핫바지로 아나?
내가 속을 줄 알아?




그러나 올해 신년사에서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다!




퇴사는 곧 내가 경영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직이 아니라면 난 경영자가 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 자기 자신을 고용한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


퇴사를 위해 회사가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도움은 바로 경영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험이다.




ㅣ경영자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퇴사를 준비한다면 시키는 일만 해서는 안된다. 자기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해본 경험이 필요하다.


그 신년사 이후, 경영자의 관점에서 모든 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기에 퇴사라는 목표 가세하니 시너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어진 일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예전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어진 일처리에만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요한 일을 분류하여 먼저 처리한다.


기존의 규칙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했다. 그러나 내가 규칙을 만들고, 불합리한 규칙을 바꾸기 시작했다.


잡일, 일상 업무라 여겨졌던 일들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특별한 방식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직업은 없다. 다만 평범한 방식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평범해질 뿐이다.

구본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단지, 회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회사의 이익이 아닌 퇴사라는 내 목표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난 예전에 빙다리 핫바지라고 놀렸던, 주인의식을 가지고 경영자의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고용당한 상태의 나'를 드디어 죽였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절대 주지 못한다. 고용당한 상태는 우리에게 상대적이고 단기적인 편안함만을 준다. 또한 모든 교육과정이 고용당한 상태로 열심히 피 땀 흘려 일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고용당한'상태에 있었고, 조금씩 뜨거워지는 냄비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었었다. 핵심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 핵심으로의 움직임이 변화이고 그 시작은 과거의 나를 '고용당한 상태의 나'를 죽이는 것이다.

구본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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