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May 23. 2019

퇴사를 목표로 회사를 다닌다.

나보고 일을 잘한단다. 난 퇴사가 목표인데... 이걸 어쩌지...


ㅣ난 퇴사하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


약 1년간의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그리고 약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0개월이란 시간 동안 내 목표는 더 확고해졌다.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는 목적은 퇴사하기 위해서다.


육아 휴직 기간 동안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그 시간을 누구를 위해 쓰고 있는지 생각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드러났다. 충격적이었다. 난 5일 동안 회사를 위해 시간을 쓰고, 고작 2일의 내 시간을 확보했다.


"너 회사 안 다니면 돈 어떻게 벌 건데?"

"다른 방법 있어? 회사 다니는 것도 감사해하며 다녀!"

"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다.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사회에 의해 학습되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믿고 있다. 짜여져있는 각본 안에서,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규칙 안에서 살고 있다.


'내 인생의 70% 이상을 회사를 위해 사용하는 삶'에 회의가 생겼다. '누군가가 짜 놓은 각본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퇴사라는 목표는 바로 이 두 가지 의심에서 시작했다.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고 현재와 똑같은 현금흐름을 얻는다. 그리고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하여 나와 가족, 사회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두 가지 의심에서 시작한 생각은 내 삶의 '비전 Vision'을 위와 같이 싹 틔웠고 복직 후 10개월이 흐르는 동안 더욱 확고해졌다.


10개월간 난 퇴사하기 위해서 회사를 다녔다.




ㅣ어?! 뭐! 나보고 일을 잘한다고?


10개월 동안 퇴사를 목표로 회사를 다녔다.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내 상사가, 내 동료가, 나보고 일을 잘한단다. 난 회사에 100% 집중하지 않고 회사를 다녔단 말이다. 퇴사를 하려고 회사에 다녔단 말이다.


<휴직 전 팀장과의 면담>

팀장: 사실 다 고만 고만해. 누구 하나 능력이 확 드러나는 사람은 없어.

나: 저희 동기들 말씀 이신가요?

팀장: 그렇지. 너희 1년 선배들도 그렇고. 그래서 평가를 누군가 높게 주는 게 참 어려워.

나: 네 그렇죠...

팀장: 능력은 다 거기서 거기거든. 너네 들이. 그래서 참 애매하단 말이야.



<지난달 팀장과의 면담>

팀장: 아주 일을 잘해!

나: 예?

팀장: 너 말이야. 일을 잘한다고. 동기들이나 1년 선배들하고 비교해도 그렇고, 참 일을 잘해.

나: 아닙니다.

팀장: 아니야. 아이디어도 많고. 창의적이고. 프로세스 개선에도 탁월하고, 영업 부서 응대할 때의 밸런스도 아주 좋아. 추진력도 있으면서 리스크 관리도 아주 잘해.

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 좋게 봐준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야. 영업도 잘했지만 이 과장은 여기가 맞아. 여기서 오래 있다가 승진하고 영업 갔다가 가능하면 팀장, 아니면 파트장으로라도 돌아와. 그게 너한테도 좋고 회사에도 이익이야.

나: 아... 그렇군요. 그렇지만 전 영업도 잘 맞았습니다.

팀장: 그렇지. 그래. 그건 나도 알지. 그런데 내가 여기에 팀장으로 계속 있다면 넌 계속 데리고 있을 거야. 혹시 내년이든 언제든 내가 나가더라도 전무님한테 말해서 너는 여기 계속 있는 게 좋겠다고 말을 해 놓을 거야.


아... 이런... 나 퇴사하려고 회사 다니는 건데...




ㅣ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냐?


휴직 전과 후.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길래 이런 변화가 나에게 찾아온 걸까?


그냥 고만 고만한 '조직 인간'에서 '일 잘하는 데리고 있고 싶은 직원'으로 평가가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상사의 마음을 얻어서?

난 퇴사가 목표다. 상사의 마음 따위 얻을 필요 없다.


드디어 내 열정이 통했나?

말했지만 난 퇴사가 목표다. 회사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든 지 7년이 넘었다.


휴직 기간 동안 쉬어서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머리에 채워졌나?

고작 휴식으로 38년간 없었던 창의력이 내 머리에 채워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 머리에 창의력 따위는 채워지지 않았다.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한다더니 일을 단순하게 해서? 원래 단순하게 했다. 이를 바꾸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난 유명한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비상식적으로 많은 급여를 받는 직장인의 탈을 쓴 전문직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금융권 회사원이다. 영업 조직에서 6년, 마케팅 팀에서 4년(휴직이 1년 끼어 있다), 총 10년 간 회사를 다녔다. 겨우 겨우 과장 직함을 달고 있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전형적인 '조직 인간'이다.



복직한 이후, 도대체 무엇이 바뀌어서 난 '그저 그런 애매한' 사람에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는지,

단지 회사를 다니는 목표를 퇴사로 바꾸었을 뿐인데 왜 내 평가는 이렇게 바뀌었는지,

10개월 동안 도대체 나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기에 날 바라보는 시선이나 내가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이 달라졌는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조언을 하려 함도 아니다.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지 10개월 동안의 변화가 재미있고 신선했다. 퇴사를 목표로 회사를 다녔더니 일 잘한다고 하는 상황이 웃겼다. 단지 그 기록을 남겨 보려 할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