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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Sep 10. 2019

회사를 '손절'할 수 없는 3가지 이유

그래서 나는 아직 회사를 다닌다.

<무서움>

새장의 새는 무섭다. '새장' 밖의 '세상'이 무섭다. 새장에서는 내가 모르는 것이 없는데,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새장이 열려있어도 나가지 않는다. 생각한다. 고민한다. 정말 나가도 되는지. 그리고 옆자리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 새에게 물어본다. 세상 밖은 어떠냐고. 내가 나가도 되는 거냐고. 옆에 있던 새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몰라 이 새끼야. 알면 벌나갔지."


면박을 당하고 다른 새에게 물어봤다.


"내가 아는 어떤 비둘기는 말이야 차에 치어서 죽었다고 하더라고."


역시. 세상은 무서운 게 맞구나. 새장에 머물 근거가 하나 생겼다. 끝낼까 하다, 그 옆에서 세상에 잠깐 나갔다 다시 들어온 새가 있어 물어봤다.


"새장이 전쟁터지? 밖은 지옥이야."


회사를 그만두고 그만큼의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는 일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회사원에게는 특히 그렇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회사 밖 세상을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박 아니면 쪽박', '자영업자들은 망하고 있다', '소규모로 무언가를 하다가 망하기 십상이다'


TV, 스마트 폰의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세상으로 나가지 말라고 겁만 주고 있다.


사실 이들이 나를 겁주는 게 아닐 수 있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게 아닐지 생각해 본다. 본능적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싶기에, 회사에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훨씬 크기에 원하는 이야기만 골라 듣는 걸 수도 있다.


커다란 조직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까? 커다란 조직은 나에게 매달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모이를 준다. 난 그 모이를 쪼며 '역시 새장이 안정적이고 안정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세상은 지옥이라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이를 버리고 나가는 것은 아쉽다. 밖에 나가서 모이를 찾아다니는 것이 고단할까 걱정이다. 이런 걱정, 저런 생각만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또 모이를 쪼고 있다. 회사를 위해 일한다. 나를 지워버린다. 회사가 되어 나의 이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 안정적이라 날 속이며.



<익숙함>

아침에 일어난다. 짹짹 울다 보면 배가 고프다. 모이가 있는 통으로 날아간다. 양껏 쪼아 먹는다. 배를 채우고 주인이 날 위해 걸어 놓은 놀이터로 간다. 거기에 매달려 한참을 짹짹 다시 운다. 문이 열린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제 놀라지 않는다. 주인이 나를 위해 물통에 물을 채워 준다. 모두 다 내가 아는 일이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새장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내가 모르는 일은 없다.


회사를 다닌 지 11년이 되었다. 이제 모르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하는지, 상사의 입맛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편하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에 협의를 해야 하는지, 영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욕먹지 않고 일하는 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어떤 식당이 맛집인지, 한식, 중식, 일식, 경양식, 유럽식, 미국식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 어디인지, 누구와 어느 정도 레벨의 식당에 가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척하면 척이다. 거리낄 것이 없다. 난 '회사 생활'의 전문가가 되었다.


정말 다 아냐고, 모르는 일도 많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새로운 일을 맡으면 익숙함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생활을 하며 느낀 건, 대충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회사는 절대 내가 못할 일을 주지 않는다는 거다. 장담한다. 한 달만 그 일을 하면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익숙해지니 몸이 편해진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여유로워 진다. 가끔 스트레스는 받지만 견딜만하다. 다시 익숙해질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 착각일지라도 말이다.



<뒤섞임>

돈만 있다면 난 언제라도 회사를 나갈 수 있다. 돈이 없어서 난 회사를 다니고 있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 90% 이상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뭐... 맞는 말이다. 지금 나에게 100억이 있다면 혹은 1년에 10억 씩 현금이 들어온다면 당장에 회사를 때려치울 테니 말이다. 그러나 '돈이 없어 회사를 다는다'는 말은 틀렸다. 지질한 자기 합리화다.


원인과 결과가 뒤섞여 있다. 원인을 결과로,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돈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명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회사를 나가면 난 돈을 벌 수 있다. 회사만 다니기 때문에 난 돈이 없다.



회사만 다녀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이는 수 백 년 간 증명된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회사만 열심히 다녀서 부자가 된 사람을 단 한 사람만 말해보자. 생각했나? 아직인가?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겠다.

...


그것 봐라. 없다. 전혀 없다. 업을 해서 부자가 된 사람, 회사를 다니며 부동산 투자를 해서 부자가 된 사람,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자기 계발을 해서 부자가 된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사실이 이럴진대 나는 돈이 없어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자기 합리화를 매일 하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일했으니 퇴근하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를 푼다는 미명 하에 맛집을 다니고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며 수동적인 여가를 즐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 회사를 다닌다.>

그래서 회사를 손절하기 힘들다. '회사 다녀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익숙한 이 상황을 버리기 힘들다. 게다가 익숙함을 버리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무서운 '새장 밖 세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은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결정적 한방을 날린다. 이 들은 돈이 없으니 회사를 다니고, 회사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에게 하루에 수백 번 말한다. 그리고 세상 밖은 지옥이니 회사에 있으라 한다. 회사가 천국은 아니지만 지옥보다는 낫지 않냐고 말한다. 이 한 방으로 결국 난 회사에 주저앉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 회사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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