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가시적인 창의노동자

by 레일라



비가시적 창의노동자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창의적인 결과를 위해 끊임없이 사고하고, 연습하고, 기획하고, 조율하는 이들을 말한다. 즉, 무대 위에서 보이는 사람만이 아니라, 무대 뒤, 혹은 창작 이전의 오랜 준비과정에 몰두하는 사람들, 결과보다는 과정에 머무는 사람들, 그리고 때로는 성과 없이도 ‘감각’과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공연 한 편을 위해 수많은 회의와 조율,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기획자나 매개자.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티칭 아티스트. 작품은 없지만, 언젠가를 위해 꾸준히 ‘감각’을 갈고닦는 프리랜서 창작자 등을 말한다. 이들은 작업 중이지만 작업물이 없을 수도 있고, 계속 일하고 있지만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가시적(invisible)이고, 창의노동자(creative laborer)라는 범주에서 그들을 정의할 수 있다.



혼자 살기 시작한 무렵부터 가끔 가다 번역, 원고료가 들어오거나 연주 의뢰가 들어와서 입에 풀칠을 좀 할 수 있게 되면 습관처럼 채워두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오렌지 주스였다. 주로 물 또는 탄산수로 수분을 섭취해 온 습관 덕분에 그 외 음료는 잘 구매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주머니가 조금은 두둑할 때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란색을 자랑하는 오렌지 주스 한 통을 샀다. 생활비는 오르락내리락하며 늘 불안정했으나 가끔가다 상승세를 탈 때가 있었다. 종종 공연이나 글쓰기 등과 같은 부수입으로 수입의 수준이 비교적 조금 높아질 때는 큰 오렌지 주스 두 통이 어김없이 채워져 있었다. 바라만 봐도 새콤달콤함이 느껴지는, 일종의 열심히 일한 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조그마한 보상과도 같았달까. 특히나 더운 계절인 여름에는 나의 작은 아틀리에에 갈 수 없는 날도, 있는 날도 있었지만 내게 시원한 주스 한 잔이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새콤한 오렌지주스의 한 모금이 내 안의 무거운 감정이나 불안까지도 씻어내는 듯했으니까.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일은 질적 예술을 행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과도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로 이어진다. 결과에 대한 긍정성보다는 과정과 태도에 대한 긍정, 즉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 자체가 긍정이어야 한다는 예술인들을 향한 가르침은 그동안의 작업을 몰아치듯이 해내 온 나를 다그치는 말과도 같았다. 중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행해옴에도 불구하고 생활을 위해서는 늘 일회성 작업을 주로 맡을 수밖에 없었는데, 나의 창작 작업도 이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5년 전, 코로나 시대에 활동하지 못해 근황을 알 수 없었던 동료 예술인들의 얼굴이 드문 드문 SNS에 보이기 시작하고, 방역 정책 또한 풀릴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렸던 때. 서서히 페스티벌과 공연장도 다시 열리며 여기저기 연락이 오기 시작했던 때를 떠올린다. 한창 어둡던 시기, 마지막 무대에 섰던 때는 지난겨울, 한 문예회관 문학예술교육의 사업에서 초청받은 재즈 공연이었다. 이마저도 관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앞, 뒤, 양 옆 세 자리 이상을 띄어 앉아 공연을 관람해야 했다. 무대에서 바라본 관객석은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텅 비어 있었다. 실제 공연 관람을 사전 신청한 관객들의 수는 공연을 세 번 꽉 채우고도 남을 수였지만, 실제 코로나 대비 방침으로 인하여 1/3로 제한된 것이었다. 문화예술을 누릴 자유를 명확한 기준 없이 제한하고 또 억압해 온 지난날들의 잔혹한 현실을 실감했던 무대였다. 관객석은 초라할 만큼 텅 비어 있었지만, 그 빈자리는 오히려 내 속의 울림을 더 크게 증폭시켰다. 예술이란 결국 비어 있는 자리에서도 울리는 것을 믿는 연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공연장 관객석을 빈자리를 바라보며 스스로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는지 글로 기록을 해두자고 생각했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현실을 살아냈다. 마주해야 할 현실과 싸워야 할 현실 그리고 따라가야 할 현실은 전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틈에서, 예술이라는 사적인 저항을 더듬듯 이어가고 있었다. 해도 들지 않는 날, 단비가 지나간 뒤 땅이 오랜만에 젖었던 순간처럼, 피하고 싶은 현실에 희미하게 비춘 하루들.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촘촘하게 쌓인 절망감을 어디에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절망은 처음엔 덩어리였고, 그다음엔 물결이었으며, 이제는 바닥에 고인 침묵이었으니까. 그 침묵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작업이었다. 그저, 오렌지 주스 한통을 넣은 가방을 메고 오늘도 연습을 하러 가는 일. 이는 작은 의식처럼 반복되겠지. 시큼한 단맛을 품은 채, 다시 삶을 훈련하는 아틀리에로 향하는 일.






급한 르포 프로젝트 하나를 마감한 후 나는 다시 글과 생활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지난겨울부터 기업에 입사해 글을 쓰고 기획을 맡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하지만 기업에서 요구하는 평생 내러티브 관점으로 생각을 풀어내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해왔기에 개조식으로 쓰는 글은 쉽지 않았다. 단적으로는 재미있기도 했고,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성장에 대한 의지는 분명했지만, 노동비라는 이름의 숫자들은 이상할 만큼 나의 현실을 따라오지 않았다. 성장은 추상적이었고, 월급은 너무 구체적이었다. 생활 공과금, 월세, 아틀리에 유지비, 인력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허탈감에 자꾸만 무너지곤 했다.



처음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뮤지션이자 작가로 살며 창작 시간을 관리하는 일 자체가 가장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일을 맡으면 그 무엇보다 진지한 프로다운 태도로 임함에도, 일과 삶을 균형 있게 나 스스로 일구어 가는 일은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습관을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든 부분은 창작 작업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잠을 충분히 자고 다른 사람의 삶을 돌보는, 생활 자체를 일구어 낼 수 있는가 하는 기본적인 돌봄의 문제였다. 자기 확신은 늘 하루 늦게 오는 손님 같았다. 문을 열어도 오지 않는, 기다려야만 작업이 지속되는 존재. 삶과 프로젝트의 조화는 불가능하고, 그러한 조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열정 넘치는 수전 손택의 말이 씌워진 것만 같다.



이처럼 출판은 했지만 이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수많은 작가들은 강연, 입주 작가, 특별 연구원 등 다른 임시직을 떠돌며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속에서 창작생활을 얼마나 균형감 또는 리듬감 있게 유지할 수 있느냐가 아마도 삶의 최대의 난관이지 않을까.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나름의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살아나간다. 가정이 있다면 부양가족의 욕구와 자신의 야망 사이에서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고, 창의적 작업과 가정의 의무 및 생계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기관에서 일을 하거나, 온종일 녹음, 작사 등의 음악 창작의 외주를 맡았을 때는 글을 쓰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었다. 일상을 주로 기록하는, 비교적 힘이 빠진 글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시간이 없어 불가능했던 날도 많았다. 당연하게도, 아틀리에 자체를 운영하는 일에도 늘 긍정적이고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지만, 무엇보다 하루를 정리하는 글을 쓸 때가 가장 내면적으로 평화롭다. 혼자 조용히 글을 쓸 때는 종종 아녜스의 작업 철학을 떠올리게 된다.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그녀는 예술가들이 늘 찬양하는 영감과 뮤즈를 믿지 않았다. 2020년 서울 국제 여성영화제에서 만났던 바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속의 그녀의 얼굴을 생각한다. 내가 글을 바라보고 작업하는 태도는 창작에 소요되는 건 창의적 힘과의 관계이고, 자유 연상 및 공상과 공조하고, 우연한 만남과 사물, 추억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던 그의 철학과 일정 닮아있다. 그녀처럼 내 몸에 익힌 성찰과 수양을 글에 비춰내려 애를 쓰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순간과 우연성이 조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쓰는 것이다.



작업 환경이 열악할 때도, 프로젝트에 빠져있지 않은 상태로 글을 마주하고 온몸으로 써야 할 때도, 구상하는 책을 실제로 펜을 들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일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해도,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삶만을 생각하는 것이 사명이란 생각을 하며 살아본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아틀리에라고 부르는 작은 연습실. 피아노 한대, 겨우 책 몇 권이 놓여 있는 작은 책상, 그리고 옷걸이가 전부인 공간에서 옅고 깊은 꿈을 꾸었다. 나만의 공간. 그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외로움의 장소. 지난 세기 작가들의 외로움을 흉내 내는 나날, 그것은 코스프레라기보다는 견디는 방식의 은유였다. 나를 존중하기 위한, 나만의 작은 연극. 조앤 미첼의 나의 취약점을 드러내지 않고는 아무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뭔가를 느낄 수 있다는 말처럼, 내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되뇌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 실제 아틀리에 벽 한편에 적어두었던 말이기도 했다. 아틀리에는 그런 곳이었다. 내 약점을, 내 강점으로 그리고 내 강점이 또 나의 취약점으로 변모하고 다듬어지는 공간.



불안과 불행의 시간을 겹으로 겪고 나면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희망을 모색하게 된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불어오는 살짝 더운 봄내음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 정도의 긍정성을 품고 있는 마음이라면, 뭐든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사랑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대로, 쉼이 부족하다면 조금은 느린 속도로 살아내면 되니까. 내가 나를 보살피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작은 의식들이 가능한 나만의 아틀리에에서. 언젠간 다시 냉장고를 오렌지 주스로 꽉 채울 날이 오겠거니, 새콤함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keyword
이전 02화아틀리에: 작은 은신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