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에 흔들릴 때마다 찾아보길, 나에게 보내는 편지
퇴사를 전한 뒤, 나의 다음 시간을 상상하며 그려보고 있다. 맑은 날의 무지개처럼 빛날 것 같기도, 혹은 유독 미세먼지가 심한 날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뿌연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갑자기 마구 두려워질 때도 있다.
아직 길게는 2개월, 그 이상의 시간을 앞두고 매일매일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다. 회사에서 해야 하는 일도 많지 않아 여유가 생기니, 생각이 겹겹이 쌓이는 듯하다. 안 그래도 변덕이 심한 편인데, 퇴사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으니 오죽할까. 이런 우왕좌왕은 당연하다고, 운명이 좋은 곳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나를 달래면서도 나의 안테나는 360도로 고속 회전하며 이 불안함을 달래 줄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다.
'퇴사'
천만의 직장인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이면서 한 편으론 '그래서 이제 뭐 하게?'라는 물음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단어다. 퇴사 후 당신은 자유롭게 낮 시간에 걸어 다닐 수 있고, 공원에서 햇빛 아래 멍을 때릴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달콤하고 성취감 넘치는 고정적인 수입은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나 모아놓은 돈 있어! 퇴직금도 있고..." 말 끝을 흐리는 나에게도 그 불안은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유튜브를 보아도, 인스타그램을 보아도 '프리랜서' '디지털노마드' '부업' 'N잡' 등의 키워드는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그 유용한 정보를 놓쳐버리면 나에게 지옥의 사신 같은 큰일이 다가올 것만 같다. 내가 못할 일도 아니고, 도전하면 할 수 있는 일이며 해 본 적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하나만 물어두면 회사를 벗어나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마케터도 프리랜서를 할 수 있다고?
오브 콜스, 물론이다. 나도 이미 1개의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지인은 회사 재직 중일 때보다 훨씬 더 잘 벌고 있다고 한다. 마케터는 콘텐츠, 광고 운영, 상세페이지 제작 등 프리랜서로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요즘 프리랜싱 플랫폼이 워낙 잘되어 있어 진입 장벽도 낮다.
그래도 '남의 일'이다.
프리랜싱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지인의 말이다. "그래서 저는 무조건 회사에 가든, 제 일을 하든 하려고요." 장기적으로 대행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외주의 입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회사에 소속된 입장이 아니기에 성과를 내기 위한 정보에 제약이 있으며, 불투명한 재계약 여부는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 그뿐이랴, 2-3개의 회사와 함께 일을 하려면 나의 에너지도, 스터디 시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즉, '나의 시간을 가진다'라는 이번 갭모먼트의 목적에 명백히 위배되는 일이었다.
분명 퇴사를 결심할 때, "그래 이제 나만의 아젠다를, 주제를 채우기 위해 시간을 가져보자"라고 했음에도 정신없이 프리랜싱에 대한 콘텐츠를 보고 나니 방향성이 갑자기 어떻게 해야 프리랜서의 일로 안정적인 수입 파이프라인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히게 되는 나를 보면서 번뜩 '이거 맞아?'라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남의 일을 더 하자고 퇴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 결과물에 조금 더 나의 주관과 이야기를 담고 싶은데, 라는 욕심은 앞서는데 담기가 어려워 밑천이 드러나는 기분을 여러 번 느꼈다. 내 아웃풋에 깊이를 더 쌓고, 그리고 언젠가는 하게 될 나의 것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지. 당장 돈을 더 벌고 저축하며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분명 아니다. 그런 선택이라면 어떻게든 회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게 맞다.
나는 타인의 의견과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잘 흔들린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해도 쉽지 않다.
명확한 자기 믿음과 확신을 기반한 뚝심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어떤 성취를 이루어 갈 때 필수조건이나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런 고민 과정 덕분에, 내 결심은 한층 더 촘촘해지고 있다. 내 시간을 보낸다는 조금 추상적인 목적을 목표로 한번 더 구체화해보았다.
이번 갭모먼트의 목표, 잊지 말 것
1. 내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찾자.
어떤 일이든 메시지에서 출발한다. 나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 소명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떤 것에 깊게 빠져드는 편이 아닌 나에게, 이건 정말 세상에 알려야만 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야, 라고 콕 박히게 될지 궁금하다.
2. 나의 강점은 사람과의 연결. 영감이 되어 줄 많은 대화와 사람을 경험하자.
네트워킹이 가능할 만큼의 영어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고, 내 세계를 확장시켜줄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노마드의 성지라 불리는 몇몇 곳을 여행지 리스트업에 올릴 예정이다.
3. 생산자도, 소비자도 아닌 관찰자 시점에서 살 것. 조금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지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찾았다면 그것을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감각'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무던 무던하게 이것도 좋아, 저것도 좋아. 하지만 그 속에서 분명한 취향을 가진 나. 나의 취향을 조금 더 뾰족하게 다듬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퇴사하고 뭐 할까? 매거진은 스타트업, 마케팅 에이전시 등을 거친 6년 차 마케터 '영선'이 처음으로 갭모먼트를 가지며 하게 되는 생각과 일상을 기록하는 시리즈입니다. 요즘 같은 대퇴사의 시대에 저의 갭모먼트는 남들과 같을까요? 혹은 나만의 풍경을 그려가게 될까요? 일기처럼 하루에 1개씩 쓰는 것이 목표랍니다. 궁금하시다면 구독하고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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