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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Apr 28. 2019

2화 오키나와에서 마주친 우치난츄

우치난츄라 불리는 오키나와인




아메리칸 빌리지에는 유명한 맛집은 많으나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아무리 맛이 있어도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체질인 데다 한국 블로그에서 유명한 맛집 또한 싫다. 포시즌스(四季, Four Seasons) 스테이크도 그런 곳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키나와에 왔으니 스테이크 정도는 먹어보자는 생각과 철판구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이 승리한 1945년부터 일본에 반환된 1972년까지 약 28년간 미국이 점령한 지역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키나와의 식문화는 오키나와 전통식뿐만 아니라 스테이크나 햄버거 등의 미국 식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일본어로 데판야끼(てっぱんやき)라고 불리는 철판구이는 말 그대로 데판(てっぱん)을 사이에 두고 요리사가 고기를 구워(やき) 손님에게 직접 서빙해 주는 요릿집이다. 요리사가 직접 구워 주다 보니 고기가 정말 맛있을 즈음에 먹을 수 있어 좋고, 요리사의 멋진 요리 솜씨도 볼 수 있어 좋다. 요리사가 보여주는 불쇼와 요리 기구를 이용한 저글링 쇼는 덤이다.


요리사가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데판야끼, 요리사의 쇼 타임도 있다


주문할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일본어를 틈틈이 공부해 두었지만 막상 주문을 앞에 두고 긴장이 되었다. 오키나와는 다행히 일본 본토보다는 영어가 통하는 지역이다. 메뉴판에는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가 나란히 적혀 있고, 유명한 식당에서는 한국어 메뉴를 갖춘 곳도 많다. 하지만 그동안 배운 일본어도 써야 할 겸 일본어로만 주문을 해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다. 주문할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레 후타츠, 고레 후타츠, 고레 히토츠, 고레 후타츠 구다사이' 라고 말했다.


번역하자면, '쇠고기 안심 2개, 오키나와 돼지고기 2개, 와규 1개, 어린이 메뉴 2개 주세요'가 된다. 만국 공통어인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고레(이것)'라고 하고, '히토츠, 후타츠, 밋츠, 욧츠(하나, 둘, 셋, 네)'라고 숫자를 세면 된다. 일본에서 나마비루라고 부르는 생맥주도 주문했다. 오키나와에서는 어딜 가나 오리온 드래프트 맥주가 있다.


오리온 맥주는 1957년에 오키나와 맥주라는 이름으로 탄생하였다. 이듬해인 1958년 맥주 이름 공모를 거쳐 오리온 맥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오리온은 남쪽의 별을 의미한다. 별은 사람들의 꿈과 동경을 상징하므로 오리온 맥주는 오키나와 재건의 희망이 되었다. 그 해 11월 산호초가 융기한 섬인 오키나와에서 연수가 흐르는 지역을 찾아 나고시에 맥주 공장을 설립하였다. 1959년에 처음으로 독일식 맥주를 생산했으나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1960년 열처리를 하지 않은 드래프트 맥주로 탈바꿈하여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현재 오리온 맥주는 일본에서 1% 정도의 점유율에 불과하지만 오키나와에서는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체감상 90%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어딜 가나 오리온 드래프트 맥주다.


주문은 끝났다.

주문을 끝내긴 했는데 점원과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점원은 웬만한 남자보다 건장하고 뚱뚱한 일본 여자였다. 그런데 생김새가 약간 달랐다. 마치 일본인과 서양인의 하이브리드 같은 느낌이었다. 가능성은 세 가지였다. 정통 일본인이거나 혼혈인이거나 오키나와인 일 것이다. 그분이 '우치난츄'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오키나와인은 자신들을 우치난츄라고 한다. 고백하건대 이번이 세 번째 오키나와 방문이지만 그 전에는 우치난츄라는 말을 전혀 알지 못했다. 우연히 오키나와를 여행한 어떤 작가의 글을 보고 우치난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깊이 배우게 되었다.


"아나타와 니혼징데쓰까?"

 일본인이에요?


그렇다고 대답했다. 용기 내어 또 한 번 물어봤다.


"데와, 우치난츄데쓰까?"

 그럼, 우치난츄인가요?

 

이번엔 우스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것으로 우치난츄와의 첫 대화는 끝났다.




오키나와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면 '오키나와를 오키나와 방언으로 우치나라고 한다'라는 글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조금 다시 쓰고 싶다. '우치나를 일본어로 오키나와라고 한다'라고. 그 말이 그 말일지 모르겠지만 우치나는 전적으로 오키나와인의 시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오키나와어는 오키나와의 고대 왕국인 류큐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어이다. 류큐 왕국의 수도인 슈리성과 오키나와 중, 남부 지방에서는 그들이 살고 있는 섬을 예로부터 우치나아(うちなあ)라고 불렀다.

덧붙이자면, 일본어에는 /a e i o u/ 다섯 개의 모음이 있지만, 오키나와어에는 /a i u/ 세 개의 단모임과 /aː eː iː oː uː/ 다섯 개의 장모음이 있다. 우치나아에서 '나아'는 '나'의 장모음이므로 '우치나-'라고 하는 것이다. 오키나와란 우치나를 일본인이 쓰는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차용하여 쓴 것이다. '우치'는  沖(화할 충, 일본어 훈독으로 '오키'라고 읽는다)과 '나아'는 縄(줄 승, 일본어 훈독으로 '나와'라고 읽는다)를 써서 오키나와가 되었다. 오키나와에는 우리말로 충승(沖縄)이라고 하는 표지판이 많은데 바로 오키나와를 뜻하는 한자어이다.

‘우치난츄(ウチナンチュー)’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자신들을 일컫는 말이다. 대신 본토의 일본인은 ’야마토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야마톤츄(ヤマトンチュー)’라 부른다. 야마토는 일본의 옛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선 왜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제로 오키나와인들은 일본 본토인들을 내지의 사람이라는 뜻인 '나이챠(ナイチャー)'를 더 많아 쓴다고 한다. 우치난츄라는 말에는 일본에 차별받고 억압받았던 류큐 민족의 역사와 그들만의 정체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그 한 예가 ‘세계 우치난츄 대회’이다. 오키나와에서는 수년에 한 번씩 ‘세계 우치난츄 대회’를 열어 세계 곳곳에 흝어져 있는 우치난츄들을 모으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축제를 벌인다. 지난 대회에서는 약 5천 여명이 참가했다. 근대 이후 우치난츄들은 일본의 해외 이민 정책과 객지벌이 등을 위해 하와이나 브라질 등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났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치난츄들은 대략 3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오키나와 섬에 약 35만 명의 우치난츄들이 살고 있으니 해외 이민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현재 오키나와의 인구는 150만 명 정도이다. 오키나와 인구의 1/5 정도가 우치난츄인 셈이다.




안훼가 무슨 대화를 하냐고 물었다. "오키나와인이냐고 물어봤어"라고 대답했다. 안훼는 그렇게 묻는 게 그들에게 실례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일본인 누군가가 나에게 "한국인인가요?"라고 묻지 않고 "조센징인가요?"라고 물으면 실례가 될까? 일본인이 부르는 조센징에는 양국 간의 역사와 감정이 서려있기 때문에 왠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일본인도 아닌 제 3자가 오키나와인에게 우치난츄라고 묻는 것은 관심의 표현 정도로 이해해 주지 않을까?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동안 우치난츄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다. 한번 우치난츄를 겪어 보고 나니 우치난츄가 계속 눈에 띄었다. 그럴 때마다 "우치난츄입니까?"라고 정중하게 물었다. 대부분 맞았다. 일본인에 비해 우치난츄는 눈썹이 짙고 눈이 크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큼직했다. 남자들은 몸에 털이 많고 손에도 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묻는다. 그래서 이쁘냐고? 한국인도 일본인도 예쁜 사람이 있고 예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치난츄도 그렇다. 하지만 대체로 일본 본토인보다 미남 미녀가 많은 걸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일본 연예계에는 오키나와 출신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 가수인 아무로 나미에도 우치난츄이다.


온나노에키 휴게소에서 사진을 찍자 저 멀리서 포즈를 취해 준 우치난츄, 용기를 내어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 봤다, 흔쾌히 응해 주셨다. 두 분 모두 우치난츄이다.


포시즌 스테이크로 글을 시작했으니 포시즌 스테이크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결론은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만족한 한 끼였다. 모두들 와규 > 아구 > 안심 순으로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절대적인 평가이고,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평가로는 난생처음 먹어 본 아구가 가장 좋았다. '아구(アグー)'는 600년 전 중국에서 건너온 돼지의 한 종류로 현재는 오키나와 재래종 흑돼지가 되었다. 일반 돼지가 200 ~ 300kg인데 비해 약 110kg 정도로 크기가 작고 성장이 느리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서는 사육하고 있는 아구에 증명서를 발급하고 각 객체마다 IC 칩을 부여하는 등 아구를 브랜드화하고 있다. 이 아구가 얼마나 맛있었으면 3박을 여행하면서 3일 저녁을 모두 이걸로 했을 정도이다. 어른 다섯 명과 아이 둘이 적당히 먹고 맥주와 사케도 한 잔씩 했는데 비용은 그럭저럭 20만 원 정도가 되었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제목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Xd2_frzFD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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