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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Apr 29. 2019

3화 오키나와에서 500엔에 회 먹는 방법

featuring 마키시공설시장




우리 가족은 '오키나와의 밥상'이라고 불리는 마키시 시장으로 향했다.


이 곳은 나하의 국제거리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일 듯하다. 국제거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시장과 돈키호테 그리고 스타벅스가 삼각 지형으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현청에서 시작하는 1.6km의 국제거리는 전후의 잿더미 속에서 이뤄낸 오키나와 발전의 상징이다.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 곳을 '기적의 1마일'이라고 부른다. 국제거리라는 이름은 '국제극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지방도에 과거 '어니 파일(Ernie Pyle) 국제극장'이 있었는데 연일 활기를 띄는 곳이었다. 이 극장의 이름을 따서 국제거리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차를 가지고 이곳에 온다면 교통 체증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왕복 2차선인 도로는 넓지 않고 차로의 차 보다 인도의 사람이 많은 곳이다. 더욱이 이 곳이 초행이라면 적당한 주차장을 찾는 것도 어렵다. 다행히 나는 전에 편하게 주차한 곳이 있어 그곳에 주차를 했다. 국제거리를 달리지 않고 외곽으로 들어와 바로 주차를 할 수 있으며, 골목길을 나오면 바로 스타벅스가 나온다. 일본은 코인 주차장이 대부분인데 이 곳은 한국처럼 입출구 게이트가 있는 일반 주차장이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시장을 구경하기 전에 돈키호테에서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었다. 앞으로 잘 걸어 다녀 달라는 일종의 호의였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35COFFEE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쉬기로 하셨다. 국제거리 특히 마키시 시장 주변에서 잠시 쉬기에는 35COFFEE 만한 곳이 없다. 건너편 스타벅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35COFFEE는 마키시 시장 초입의 돈키호테 2층에 있어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커피의 가격도 150엔 정도로 저렴하다. 35COFFEE는 '삼오커피'가 아니라 '산고커피'라고 읽는다. '산고'는 일본어로 3과 5의 의미도 있지만 산호초라는 뜻이 있다. 이 곳 35COFFEE는 오키나와 산호를 이용하여 로스팅한다고 하는데 맛은 보장하지 못하겠다. 대신 수익금의 3.5%를 아기 산호의 배양을 위해 쓰인다고 하니 기분 좋게 마셨다.   


사진출처 : www.tabirai.net


시장에 들어섰다.

'나하시장제일마키시공설시장'이라는 현판이 보였다. 마키시 공설시장 (牧志公設市場)은 종전 직후인 1947년 경에 나하의 도자기 상인들이 모여 자연적으로 발생했던 암시장 때문에 생겼다. 이후 암시장 주변이 점점 커지고 도자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상점과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니 사설 시장에서의 불법 점거와 위생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하시는 1950년 목조 주택 4채를 지어 정식으로 시장을 세웠다. 하지만 1962년에 시장이 소실되었고 1972년에 현재의 부지에 총면적 1,419 평방미터의 공설 시장으로 재건하였다. 현재는 129개의 업체가 들어서 있고, 시장 주변까지 포함하면 700개의 점포가 있다고 한다. 마키시 시장에 있는 점포들은 종전 직후부터 시작하여 창업한 지 5~60년 정도가 되는 가족 경영이 대부분이다. 마키시 시장은 오키나와 물류의 거점으로 사람과 물자가 몰려들어 종전 후 폐허가 된 나하시의 국제거리를 발전시킨 주역이다.

에세이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의 모델인 중고서점, 울루루

시장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 봤다.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울루루 중고서점'이다. 시장에 웬 서점이지 라고 의아해할지 모르겠지만 여긴 상당히 유명한 서점이다. 그 유명세는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까지 닿아 있다. 나는 오키나와에 오기 전 한국에서 '오키나와에 헌책방을 열었습니다'라는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그 헌책방이 '울루루'이다. 일본의 대형 서점에서 일하던 저자가 갑자기 오키나와의 지점으로 전근을 오게 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던  중 시장에 있던 오래된 서점이 폐점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점을 인수한다. 이 책에는 서점을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과 시장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제주도에 가면 독립서점들이 꽤 있다. 제주도에 가면 '소심한 책방'이나 '알로하 서재' 등 독립 서점에 가보곤 한다. 독립 서점의 매력은 대형 서점에 볼 수 없는 지역의 저자들이 출판한 책과 그 지역을 그린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루루에서는 일본어 책이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림으로 된 오키나와 책들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중고 책들에 파묻혀 에세이의 작가이자 이 서점의 주인(으로 보이는) '우다 도모코' 씨가 책을 읽고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말을 걸지 못했다. 도모코 씨는 항상 저 모습이었다. 활기차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장의 시계 속에서 도모코 씨의 시간만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정지된 시간을 깨뜨리지 않기로 했다.


울루루 서점의 건너편에는 시장의 하이라이트인 수산물 시장이 있다. 마키시 시장을 겉에서만 보면 한국의 시장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의 진면목은 수산물 시장에 있다. 수산물 시장은 노점이 아니라 하나의 건물 안에 모여 있다. 수산물 시장에서는 오키나와 근방에서 잡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어류로 가득하다. 온통 붉은색 물고기, 온통 파란색 물고기, 야광색이 나는 조개, 거대한 랍스터 등 컬러풀하고 크기도 거대하다. 저걸 어떻게 먹을까 했던 파란색 물고기를 회로 치는 걸 봤다. 두꺼운 칼로 비늘을 벗기고 주전자에 뜨거운 물로 껍질을 살짝 익힌 후 회를 썬다. 맛이 없어 보이던 파란색이 회로 써니 꽤 먹음직해 보였다. 우리는 모둠회를 먹었는데 그중에 저 파란색 생선도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오키나와의 붉고 푸른 생선들, 모듬회는 오백엔에 구입했다


여기서 회를 사고 먹는 과정은 노량진 시장과 비슷하다. 1층에서 회를 사서 2층으로 가 자릿세를 주고 먹으면 된다. 자릿세가 성인 1인당 보통 500엔 정도 하는데 회만 맛볼 거면 굳이 2층으로 갈 필요는 없다. 1층 군데군데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여긴 자릿세가 없으니 편하게 앉으면 된다. 밖에서 술을 사 와서 마셔도 된다. 우리는 500엔짜리 모둠회와 다른 가게에서 2천엔 짜리 연어회를 샀다. 간혹 간장 값이나 나무젓가락 값을 따로 받는 곳도 있으나 우리에게는 받지 않았다. 연어회가 너무 비싸다고 하니 안 받은 듯하다. 회는 신선하고 맛있었다. 모둠회는 막 포장하고 있길래 바로 산 것이다. 모둠회가 싸다 보니 연어회가 비싸게 보였지만, 신선함과 맛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 있는 모든 회가 신선한 것은 아니다. 특히 장인어른이 시킨 참치회가 그랬다.

자른 연어는 한 팩에 500엔, 덩어리 연어는 한 팩에 2천엔. 이곳의 연어회가 가장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수산물 시장 1층에는 바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자네, 저 쪽에서 참치회 좀 사 오게. 오백 엔이야”


가족 모두는 이미 적당히 먹었다고, 회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나에게 눈치를 보냈다(고 믿고 싶다). 가보니 진짜 참치회가 500엔이긴 한데 사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주인아주머니도  바쁘신 지 한참이 지나서야 주문을 받았다. 그렇게 어렵게 사온 회는 아무도 먹지 않았다. 장인어른도 먹지 않았다. 안훼만 조금 먹고 “이건 별론데”하며 젓가락을 놓았다. 남은 회는 내가 다 먹었다. 삼켰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배가 아플 것 같았다. 여기서 아프면 병원엔 어떻게 가야 할지, 설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남은 일정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배는 아프지 않았다.


수산물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밖으로 나왔다. 회 배만 부르고 다른 배는 텅텅 비었다. 해산물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오키나와는 돼지가 유명하니 돼지고기로 된 길거리 음식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많지는 않았다. 간혹 제주도 아강발 같은 족발이 있긴 했으나 해맑은 돼지 얼굴이 더 많이 보였다. 그리고 이 시장의 명물 시사는 오키나와 전통 악기 산신을 연주하고 있었다. 산신은 여기서 ‘하브’라고 부르는 뱀의 껍질로 만든 것이었다.

'치라가'라고 하는 돼지머리 껍질을 보고 싶었으나 대신 한국시장에서도 봄직한 돼지머리를 자주 봤다. 그리고 기타치고 노래하는 시사,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조금 더 걸으니 오키나와 전통 과자인 사타안다기가 보였다. 지난 여행 때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아니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도대체 지난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을까? 오키나와를 세 번쯤 오니 이제야 오키나와의 속 모습이 보였다. 사타안다기(サーターアンダギー)는 오키나와 사투리로 '사타(サーター)'라고 부르는 설탕을 기름에 튀긴 오키나와식 도넛이다. '안다기(アンダーギー)'는 기름에 튀긴다는 뜻이 있다. 사타안다기는 이름 그대로 밀가루와 설탕을 듬뿍 사용하여 공 모양으로 튀긴 도넛이다. 한 개에 60엔에 팔고 있어 어른 수대로 다섯 개를 샀다. 밀도가 높아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런데 조금 있다 보니 다른 종류의 것도 보였다. 깨알로 만든 것과 오키나와의 자색 고구마로 만든 사타안다기가 있어서 두 개를 더 샀다.

시장에서 산 사타안다기와 호텔 조식에서 나온 사타안다기, 사타안다기는 오키나와 어디에나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했다. 아이들은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시장에서의 쇼핑은 이쯤에서 끝내고 온나노에키로 이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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