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 커피, 지바고 커피, 산고 커피
2년 전 가족과 함께 오키나와에 왔을 때 수많은 관광지를 놔두고 왜 하필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 묵기로 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유야 있었다. 일본인이 직접 사는 집에 묵고 싶었고, 아이들이 일본인 친구와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숙박 공유 서비스로 알아본 나고시의 민가였다. 여기서 묵는 동안 나고 시장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이노 커피를 만났다.
이노 커피는 작은 나고 시장 안에 있다. 그리고 이노 커피는 아주 아주 작다. 앉을 수 있는 테이블조차 없다. 한 뼘이나 될까 싶은 공간에서 주인아저씨 혼자 커피를 내린다. 커피는 테이크 아웃을 하거나 이노 커피 앞의 공터나 시장의 벤치에서 마셔야 한다.
커피는 나라별로 다양하게 있다. 커피는 블루보틀처럼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내려 주는 드립식이다. 사람이 많으면 오래 기다릴 수도 있다. 커피를 고르기 어려우면 ‘오쓰쓰메 구다사이’라고 말하면 된다. 우리말로 ‘추천해 주세요’가 된다.
이노는 오키나와 말로 바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바다는 특별하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오키나와 섬은 류큐 시대 ‘우루마 섬’이라고 불렸다. 우루마에는 산호초라는 의미가 있다. 오키나와 해안은 산호초 모래사장이 발달해 있다. 이 해변가에서 먼 바다 암초까지의 가까운 바다를 오키나와 말로 ‘이노’라고 부른다. 이 이노에는 해조류나 산호초가 발달되어 있는데 간조 때에는 물이 얕아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오키나와는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밭에는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건 바로 이 이노였다. 이노에서 따온 해초류를 넣어 된장국을 만들어 먹었다. 이노에서 조개를 캐 먹었다. 이노는 ‘바다의 밭’이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한해살이>에서 발췌 후 정리
이노를 오키나와 말로 바다라 부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사연이 있다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사장님도 이 이름을 붙일 때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오키나와의 바다가 그들의 밭이 된 것처럼 나고 시장은 인근 주민의 삶의 텃밭이다. 바로 나고의 이노이다. 아침 일찍 이노 커피를 방문했을 때 주변 상인들이 커피를 주문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봐, 김 씨, 나 커피 한잔 내려줘”
이런 모습이었다. 주인이 김 씨도 아닐 테고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구수한 봉지 커피가 아닌 멋들어진 스페셜 커피를 주문하는 시장 상인의 모습이 친근하면서도 이색적으로 보였다.
이노 커피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아무래도 오전 11시 정각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전 11시를 지켜야 한다. 바로 옆 토리코 빵집에서 빵이 나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토리코 빵집의 애플파이와 이노 커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콜라보 일지 모르겠다.
inno coffee shop(イノーコーヒーショップ)
1-chōme-5-17 Gusuku, Nago, Okinawa 905-0013 일본
아메리칸 빌리지의 수많은 커피 하우스 중에서 선택한 것은 지바고 커피였다. 늦은 아침 아니 정오가 지났을까. 아메리칸 빌리지의 선셋 거리는 한산했다. 어젯밤에 봤던 화려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 곳은 해가 질 무렵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이때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때이다. 하지만 난 오전의 한가로움을 사랑했다. 아메리칸 빌리지가 미국 샌디에이고의 씨포트 빌리지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곳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걸었던 피셔맨스 워프의 아침 같았다.
아메리칸 빌리지, 이곳은 원래 미군 비행장이 있던 부지였다. 1972년 27년간에 걸친 미국의 지배를 벗어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자, 미군의 시설들이 서서히 되돌려졌다. 1981년에 미군 비행장 부지를 완전히 반환받아 공원과 레스토랑, 쇼핑 시설 등이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든 것이 이 곳이다. 아메리칸 빌리지가 있는 차탄 지역은 절반 정도를 군사 지역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한동안 산업이 저해되고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았었다.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반환된 부지에 매립지를 조성하고 주택 용지와 공원 용지 등을 확보하고 리조트 등을 세운 것이다. 오키나와는 사츠마의 침공으로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고, 종전 후 미국의 통치를 받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등의 복합적이고 독자적인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대표적인 코스모폴리탄이다.
이 거리에는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뭐든 하나 선택해서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비슷비슷한 모습에 고르기가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지바고 커피를 선택한 이유는 바다를 향해 놓여 있는 테이블과 테라스 때문이었다. 바다를 향한 야외 테이블이 있는 카페는 많았다. 하지만 그중 전망이 가장 좋았다고 할까. 특히 단이 높은 의자에 앉아서 보는 전망이 좋았다.
이 곳의 커피는 상당히 진하다. 그러면서도 부드럽다. 끝까지 마실 때까지 이 퀄리티는 유지된다. 돌이켜 보니 내 인생에 가장 좋았었던 커피일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인생 커피. 주위를 돌아보니 아이스 라테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이것이 이곳 시그니쳐 커피인가 싶었는데 알 수는 없었다.
화장실에 들려 무료로 나눠 주는 엽서 2장을 들고 나왔다. 우치난츄로 보이는 바리스타에게 가져가도 되냐고 엽서를 들어 보이고 어깨를 으쓱했다. 당시에는 일본어를 할 수 없어 만국 공통어를 사용했다. 바리스타는 가져가도 된다고 눈웃음으로 대답했다.
엽서를 들고 길 건너 테이블에 앉았다. 길 건너에는 바다를 옆으로 보면서 앉을 수 있는 2인용 테이블이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렇게 1시간 정도 머물렀다.
ZHYVAGO COFFEE WORKS OKINAWA
일본 〒904-0115 Okinawa, Nakagami-gun, Chatan, Mihama, 946 ディストーションシーサイドビル 1階
+81 98-989-5023
미리 말해 두겠는데, 35 커피가 특별히 맛이 있다거나 매장의 분위기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 커피의 맛은 밋밋했고 매장은 작고 어수선했다.
그런데도 불과하고 35 커피를 찾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째는 국제거리에서 가장 번화하다고 할 수 있는 돈키호테와 스타벅스, 마키시 공설 시장이 있는 사거리에 있기 때문에 관광 중 잠깐 쉬기에 좋다. 그에 비해 스타벅스는 너무 붐빈다.
두 번째 이유는 35 커피는 산호를 태워 로스팅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산호를 태워 로스팅하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했다. 35 커피는 풍화한 산호를 200도 이상까지 태워서 커피 생두를 볶는다. 그리고 35 커피는 수익금의 3.5%를 아기 산호의 배양을 위해 투자한다고 한다. 즉 죽은 산호를 태워 커피를 팔고 어린 산호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35 커피는 ‘삼오 커피’가 아니라 ‘산고 커피’라고 읽어야 한다. 하나 둘 셋과 같이 일본어에서 수를 세는 말이 ‘이치 니 산 욘 고’이고 이중 3과 5는 ‘산’과 ‘고’이다. 하지만 산고 커피라고 읽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본어로 산고(さんご)가 산호를 뜻하기 때문이다.
산고 커피는 매우 저렴하다. 작년 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에 60엔이었다. 이 가격이 진짜 맞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있다. 올해 갔을 때는 150엔이었다. 아무튼 국제거리의 산고 커피는 여행 중 쉼터로서 적당하다. 저렴한 가격과 3.5% 기부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부디 아기 산호들이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란다.
35COFFEE ドン・キホーテ国際通り店
일본 〒900-0014 Okinawa, Naha, Matsuo, 2-chōme819 ドン・キホーテ国際通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