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비치 호텔에서 리잔씨파크 호텔까지의 아구 요리 전문점
오키나와에 가기 전의 일화다.
처제는 평소 아귀찜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이번 여행에서 아구(아귀) 맛집을 준비하겠다고 야심 차게 말했다. 그런데 왜 아구일까? 오키나와에 두 번 정도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오키나와가 아구 요리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시에 처제는 한참 오키나와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체가 괜찮은 아귀 요릿집이라도 찾은 거겠지라고 짐작하고 한동안 아구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형부, 아구가 그 아구(아귀)가 아니네. 헤헤"
잊고 있었던 아구를 다시 생각나게 했던 것도 처제였다. 그제야 오키나와의 아구를 조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오키나와에서 유명하다는 아구는 아귀가 아니라 돼지였다. 제주도의 흑돼지와 비슷하게 생긴 오키나와 산 흑돼지.
살짝 기대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주도에서 먹은 돼지고기를 잊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중에서는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가끔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을 때 육지의 돼지고기와 제주도 돼지를 비교하며 장난 삼아 으스대곤 했다.
"육지의 돼지는 천하다니까. 돼지는 섬 것을 먹으면 육지 것은 천해서... 크크크크"
섬 것 돼지를 최고라고 쳤던 나에게 오키나와 섬의 돼지라니,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일이었다.
제주도의 돼지고기는 어딜 가나 맛이 있다. 유명 맛집도 좋지만 제주도에서 내가 주로 찾는 곳은 도시의 외진 골목이나 시골에 있는 식당, 숙소 주변에 있는 아무 식당이다. 그렇게 해서 발견하게 된 내 인생 최고의 돼지고기는 제주도 외도동에 있는 ‘돈사촌’이라는 곳이다(돈사돈이 아니다). 이곳도 친구들과 갔던 제주 여행에서 숙소 주변의 아무 식당이나 찾다가 발견된 그야말로 득템한 곳이다.
오키나와에서 아구를 처음으로 먹게 된 계기도 어쩌다가였다. 오키나와에 막 도착한 날, 장거리 비행과 이동으로 지쳐 그저 주변에서 유명하다는 데판야끼 레스토랑에 무작정 들어갔다. 아메리칸빌리지에 있는 '포시즌스(Four Seasons)'라는 레스토랑이었다. 데판야끼에는 소고기만 가능할 줄 알았는데, 메뉴판에서 아구가 눈에 띄었다. 가족이 다 같이 겨우 1인분만 맛보기로 했다. 1인당 한두 점이나 집어 들었을까? 그런데 우리 가족은 모두 서로를 쳐다 보고 ‘대박’을 외쳤다. 어디선가 젓가락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구는 오키나와 돼지가 되기 이전 중국에서 도래한 품종이라고 한다. 아구는 600년 전 중국에서 건너와 현재는 오키나와 재래종 흑돼지가 되었다. 제주도의 흑돼지도 아주 먼 옛날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오키나와 아구와 제주도 똥돼지는 어쩌면 같은 뿌리일지도 모르겠다. 둘 다 비슷한 크기에 검은색의 털을 가지고 있어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아구의 크기는 대략 100kg 전후이다. 일반 돼지가 200 ~ 300kg 정도인데 비해 아주 아담하다. 그리고 성장 또한 느리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아구를 다시 먹게 된 것은 둘째 날이다. 그리고 셋째 날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오키나와 아구 거리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키나와 아구 거리’라는 용어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오키나와 중부에 있는 문비치 호텔에서 묵었는데, 문비치 호텔에서 리잔씨 파크 호텔까지의 약 2km의 도로의 양 사이드에는 온갖 식당이 즐비하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아무래도 이자카야이다. 일본은 어디 가나 이자카야가 많다. 그리고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아구 요릿집과 스테이크 전문점이다. 나는 내 멋대로 이 거리를 '오키나와 아구(アグー) 거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류큐노우시(琉球の牛)'였다. 류큐노우시는 오키나와에만 온나, 차탄, 나하 세 군데에 체인점이 있는 규모가 큰 식당이다. 이중 문비치 호텔이 있는 온나점이 본점이다. 우리 가족은 역시나 대책 없이 가장 유명하다는 이유로 이 곳에 가려고 했다. 류큐노우시는 류큐의 소고기라는 뜻이다. 아구가 아니라 소고기 구이를 파는 전문점이다. 일본식 야키니쿠 말이다. 아구를 파는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우리 가족은 이 곳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장인어른이 어디선가 한국인의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섭외한 곳이다 - 정말 한국인의 운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저녁 6시 경이였는데 이미 대기줄이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이 줄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은 되지 않기로 했다. 발걸음을 돌려 주변의 아구 전문점을 찾았다.
그래서 찾은 곳은 '오키나와의 검은 털 와규'라는 뜻의 '沖縄黒毛和牛'이라는 식당이었다. 이 곳은 구글 지도에도 한자와 일본어로만 나와 있는 걸 보니 한국인이 잘 찾지 않는 식당인 것 같다. 대략 여섯 개의 테이블이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가족들이 두 테이블을 쓰며 시끌벅적했지만, 남은 자리가 있었기에 들어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빠르게 가운데 자리에 앉으셨다. 일본의 식당에서의 문화 하나는 점원이 안내하기 전에 먼저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단히 실례가 되는 행동이라고 책에서 읽었던지, 일본인 지인이 알려준 것 같다. 당연히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아실리가 없다. 빠르게 점원에게 저 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렇다고 했다. 이번에는 자릿세가 있냐고 물었다. 성인 한 사람당 350엔이라고 했다. 이 거리의 거의 대부분이 자릿세를 요구한다. 350엔 정도면 평균 정도이다. 이걸 모르면 자칫 당황할 수 있으나 나에겐 예상된 일이었다. 이 식당에서의 주문은 모두 태블릿으로 입력한다. 한국어도 지원되기 때문에 점원과 대화가 되지 않아도 주문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한마디로 무소통 주문 방식이다. 다만 세트로 시키지 않으면 고기뿐만 아니라 상추나 마늘 하나까지도 별도로 주문해야 한다. 450엔짜리 상추를 시켰더니 상추 4장이 나왔다. 350엔 자릿세는 예상했지만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장인어른이 대단히 언짢아하셨다. 그나마 고기가 맛이 좋아 다행이었다. 이 곳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방법은 기름장이나 쌈장이 아닌 고추장과 고추냉이에 찍어 먹는다. 각각을 따로 찍어 먹기도 하고 둘을 섞어서 찍어 먹기도 한다. 고추냉이를 찍어 먹는 것이 생각보다 훌륭해서 한국에 와서도 자주 그렇게 먹었다.
다음 날 저녁,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고기에 굶주린 좀비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문비치 호텔 근처에는 오키나와에서도 유명한 데판야끼 스테이크 하우스 '잼스테이크'가 있다. 원래 이 곳은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인데 대신 런치 가격이 저렴하고 어린이를 위한 메뉴가 따로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다. 점심에 왔으면 좋았겠지만 낮에는 관광 때문에 바쁘고 저녁에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좀 이상했다. 주차장이 텅텅 비었고, 식당도 불이 껴져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화요일, 급하게 구글 지도를 돌려보니 화요일은 휴무. 개인적인 느낌적인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오키나와의 휴무일은 동네마다 다르다. 어떤 동네는 주로 화요일에 쉬고, 어떤 동네는 주로 목요일에 쉬고, 이런 식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주말에는 잘 쉬지 않는다. 대신 주중에 하루, 혹은 이틀 정도를 쉰다. 슈리성으로 가는 날을 월요일로 잡은 이유도 화요일에 쉬는 상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세자키의 상점은 주로 수요일에 쉬는 듯했다.
어제의 데자뷔가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인어른이 나서 주셨다. 내가 주차를 하는 동안 빠르게 나가셔서 근사한 식당 하나를 섭외해 놓으셨다. 자리 예약까지 모두 완료.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Old Houses Grilled Meat Aragaki House'라는 식당이다. 간판에는 일본어로 작은 글씨로 '古民家焼肉', 큰 글씨로 'あらかき邸(아라카키 집)'이라고 쓰여 있다. 오래된 민가를 식당으로 만든 야키니쿠 전문점으로 이시가키 씨의 저택' 쯤으로 해석된다. 이 곳은 오래된 이자카야 분위기가 나고 좌식으로 앉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의 주문 방식은 기본적인 소통 방식인 대화다. 형편없는 일본어 실력으로 이것저것 묻다 보니 주문하는데만 30분이 걸렸다. 와규와 아구를 섞어서 적당히 시켰다.
"자네 없었으면 우린 주문도 못 한 뻔했어"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30분이나 걸린 주문에 대한 핀잔인지 칭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본어가 안돼도 영어도 있고, 검지어(손가락)가 있으니 다른 누가 주문해도 문제는 없다'라고 말씀드렸다. 이 곳 역시 고기 맛이 좋았다. 특히 등심보다는 안심이.
그런데 아구는 왜 맛이 좋을까? 원래 이 품종의 돼지가 맛이 좋기도 하겠지만, 일본 특유의 엄격한 품질 관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키나와에서는 아구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엄격하게 관리한다. 식용으로 사육되는 아구에는 증명서를 발급하고, 각 객체에는 IC 칩을 부여하여 아구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아구의 육질은 부드럽고 냄새가 적다. 붉은 부분이 적고 지방이 많지만 외래종에 비해 콜레스테롤 수치가 4 분의 1 정도로 낮다고 한다. 아구는 소고기처럼 석쇠에 구워 먹는 데 완전히 익히지 않아도 맛이 좋다. 웰던보다는 미디엄 웰던 정도면 좋을 듯하다. 소고기처럼 안심과 등심 부위가 있는데, 안심이 비싸지만 적당히 기름기가 있어서 더 맛있다.
이 글에서 언급된 식당 리스트
사진출처
[1] http://stat.ameba.jp/user_images/20160319/11/maimero-yuu1120/2c/23/j/o0699039413596046411.jpg
[2] https://tabelog.com/keywords/%E9%BB%92%E6%AF%9B%E5%92%8C%E7%89%9B/okinawa/kwdLst/
[3] https://yujinagaya.com/archives/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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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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