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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Jun 07. 2019

9화 오키나와 소바는 왜 소바라고 불리는 것일까?

메밀 없이 소바가 된 면 요리의 사연




오키나와에 여러 번 갔지만,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 소바를 먹은 것은 몇 번 되진 않는다. 첫 번째 기억은 소바에 대한 뿌리 깊은 로망을 처참히 무너뜨려 버린 것이고, 두 번째 기억은 밀로 된 면 요리인 걸 알고 먹었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그다지 찾지 않았던 것 같다. 소바에 대해서, 특히 일본의 소바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다. 한국에서 소바라면 보통 냉소바로 알고 있었다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온소바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심지어 매우 대중적이었다), 소바가 메밀로 된 면을 사용하는 걸로 알았다가 오키나와 소바는 밀로 된 소바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소바라는 것이 야끼 소바니 오키나와 소바니 해서 메밀이 들어가지 않은 면 요리도 면류의 총칭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메밀가루를 사용한 면 요리를 말하는 것이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소바를 메밀가루가 30% 이상 포함된 면 요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소바는 면류의 총칭으로 소바라고 부르는 것일까? 아님 오리지널 소바의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것일까? 오키나와 소바는 왜 소바라고 불리는 것일까? 나는 이 의문을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다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위키피디아를 뒤져봤다.




오키나와 소바를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일본 라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왜냐하면 오키나와 소바의 어원을 따져 보면 라멘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소바가 일본의 라멘과 비슷한 것이었다면, 일본의 라멘은 중국의 면 요리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기정의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의 면 요리가 일본에 유입된 경로는 다양했다. 일본인 작가 ‘하야미즈 겐로’가 쓴 ‘라멘의 사회생활’에 의하면 일본의 대표적인 두 가지 라멘인 삿포로 라멘과 하카타 라멘이 유입된 경로가 서로 달랐다고 한다. 중국은 땅이 넓기 때문에 한 가지 요리법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장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요리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중국요리라고 하는 하나의 요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장강을 경계로 북방 요리와 남방 요리가 있다. 이 중에서 면 요리도 꽤 차이가 있다. 간수를 사용하지 않고 굵은 면과 간장 맛의 짙은 국물을 특징으로 하는 북방의 면 요리는 요코하마에서 도쿄의 진간장 문화권으로, 간수를 사용하고 가는 면과 담백한 소금 맛 국물을 특징으로 하는 남방의 요리는 나가사키 찬폰과 사라 우동으로 전해진다.
‘라멘의 사회생활’


삿포로의 미소 라멘과 규슈의 돈코츠 라멘의 맛이 다른 것은 중국 요리가 유입된 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삿포로 라멘은 중국의 북방 요리가 시베리아를 거쳐 정착된 것이고, 규슈 라멘은 중국의 남방으로부터 전해졌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유입된 경로가 다르고 맛도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삿포로는 원래부터 중국에서 넘어온 면 요리를 라멘이라 불렸고, 규슈에서는 그것을 ‘지나 소바’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1958년 일본에서 최초로 인스턴트 라멘인 ‘치킨 라멘’이 탄생하고, 이것이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점차 두 음식은 라멘이라는 표준어로 정착되었다.


이야기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일본에서 라멘은 메이지 시대 중기에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넘어온 물건이라고 하여 난킹 소바(なんきん, 南京)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지나 소바(シナ, 支那)라고도 불렸고, 주카 소바(ちゅうか,中華)라고도 불렸다. 지나나 주카나 모두 중국을 이르는 말이다.


오키나와 소바의 기원은 류큐 시대에 이미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도 하고 류큐 왕국의 접대 요리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밀가루를 사용한 면 요리로서의 오키나와 소바는 메이지 시대 후기의 것이며, 1902년에 나하시에 개업한 ‘지나소바야(支那そば屋)’라는 가게가 직접적인 원조로 보고 있다. [위키피디아]


개인의 요리 하나가 지역의 명물인 된 것이다. 향토 음식이라는 것이 지역의 특산물과 문화가 융합되어 서서히 생겨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야미즈 겐로는 말한다. 즉, 하나의 가게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주변의 가게들이 따라 하게 되면서 그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각 지역의 라멘은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풍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융화되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이상한 메뉴를 내놓은 라멘집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고 그 가게가 미디어 등을 통해 알려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지역의 관광화와 함께 주변 가게들이 따라 하면서 같은 메뉴를 내놓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각 지역의 라멘이 탄생한 경위다.
‘라멘의 사회생활’


그렇다면 지나소바야에서 오키나와 소바가 태어났다는 설은 꽤 신빙성이 있다. 그 이후의 경과를 보면 더욱 그렇다. 지나소바야가 생긴 지 3년 후, 이 가게에서 일하던 직원이 독립하여 나하시 츠지 근처에 새로운 가게를 차렸다. 그리고 2년 후 이 가게 근처에 또 다른 가게가 생기면서 고객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후 나하시에는 오키나와 소바 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오키나와식 면 요리의 명칭은 정착되지 않았다. 당시 나하 경찰서장은 명칭을 ‘류큐 소바’로 변경하도록 하였으나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고 그냥 ‘소바’ 혹은 오키나와 말로 ‘수바’라고 더 많이 불렸다.


이렇게 한때 번성했던 소바 가게는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모두 소멸되고 말았다. 물론 오키나와 전투는 소바 가게만 파괴시킨 것은 아니었다. 오키나와 전투의 피해는 상당했다. 나하 시는 미군의 다섯 차례의 집중 폭격으로 시가지의 90퍼센트가 소멸되었다. 슈리성과 그 일대에는 포탄이 대략 20만 발, 투하한 폭탄은 1,000톤, 그리고 수천 발의 박격포가 떨어졌다. 슈리성과 류큐 왕국의 건축물 그리고 수많은 훌륭한 공예품도 모두 소실되었다. 민간인 희생도 커서 오키나와 출신의 군인 3만 명과 민간인 9만 명이 희생되었다. 한반도에서 강제 연행된 종군 위안부 만 명 정도도 희생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오키나와는 미국의 소유가 되었으나, 오키나와인들은 밀로 만든 소바를 잊지 않았다. 나하 시내를 중심으로 소바를 만드는 대중식당은 점차 늘어가 얼마 안돼 소바는 전쟁 전의 인기를 다시 끌게 되었다.


1972년 오키나와는 일본에 반환되었다. 이때부터 오키나와 소바는 명칭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지나 소바 혹은 라멘이라고 불렸던 면 요리가 라멘으로 통일되었으나,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떨어져 있고 미군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토와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는 라멘으로 불리지 않고 그대로 소바로 정착된 것이었다. 오키나와를 반환받은 일본은 본토의 소바 요리와 구분하기 위해 오키나와의 소바를 ‘오키나와 소바’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번엔 소바의 성분이 문제가 되었다. 일본의 전통적인 소바의 입장에서는 오키나와 소바를 소바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1976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생 면류의 표시에 관한 공정 경쟁 규약’에 따라 ‘소바는 메밀가루가 30% 이상이 들어가야 한다’라는 근거로 오키나와 소바의 명칭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전쟁 전부터 오랜 기간 관습적으로 사용한 소바라는 명칭을 바꾸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오키나와 열도에 한해서 소바라는 이름을 허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행 규칙이 제정된 것이 1978년 10월 17일이다. 그래서 10월 17일은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 소바의 날’이다. 한마디로 오키나와 소바는 오키나와 현에서 오키나와 방식으로 만들어질 때에만 소바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것이다(그 밖의 오키나와 소바가 되기 위한 조건은 다양하다).




한참을 오키나와 소바에 대해 생각하니 그동안 여행 중 맛 본 소바가 달리 보였다. 역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여행엔 반드시 길가의 허름한 가게에서 제대로 만든 오키나와 전통의 소바를 먹어 보고 싶다.



참고 자료

1. <라멘의 사회생활 : 일본과 함께 진화한 라멘 100년사>, 하야미즈 겐로 저, 김현욱,박현아 공역, 따비, 2017년 03월 05일  

2.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 무라야마 도시오 저, 김윤희 역, 21세기북스, 2015년 07월 31일  

3. 위키피디아 沖縄そば https://ja.wikipedia.org/wiki/%E6%B2%96%E7%B8%84%E3%81%9D%E3%81%B0

4. 위키피디아 蕎麦 https://ja.wikipedia.org/wiki/%E8%95%8E%E9%BA%A6


제목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l3Mr7vSdm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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