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Jun 19. 2019

10화 오키나와의 태양, 하늘, 바다, 오리온 맥주



지난번에 '오키나와 재건의 희망, 오리온 맥주의 역사(2018.12.1)'라는 글을 쓴 이후, 오리온 맥주에 변화가 있었다. 바로 올 초에 들려온 회사 매각 소식이다(이 이야기는 이 글의 맨 끝에 있다). 새로운 소식을 추가도 하고, 지난번에 쓴 글을 정정, 보충도 할 겸해서 오리온 맥주 이야기를 새로 쓴다. 대신 제목을 오리온 맥주가 아닌 오키나와 맥주라 하였다. 오리온 맥주의 역사를 쫒다 보니 이것이 곧 오키나와 역사의 시그니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이다.



오키나와 맥주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오리온 맥주를 설립하고 오랜 기간 회사를 경영하여 오리온 맥주를 그야말로 오키나와 맥주로 만든 ‘구시켄 소세이’라는 인물이다. 오키나와에는 전후의 어려웠던 시기에 오키나와를 재건한 4명의 사업가가 있는데, 이 재계의 유력 사업가를 총칭하여 오키나와 사대 천왕이라 부른다. 오리온 맥주의 구시켄 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오리온 맥주를 설립한 당시의 구시켄 사장과 나이를 더 들었을 때의 모습


1896년 8월 22일 생인 구시켄은 22세의 나이에 일본 본토로 건너가 오사카의 조선소에서 일했다. 그는 여기서 번 돈 220엔 가지고 오키나와로 돌아와 한동안 오키나와 경찰로 살았다. 오키나와 전투가 발발하고 미군에 포위되면서 자결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불발되어 미군의 포로가 되었고, 전후에는 경찰서장과 미야코 민정 지사까지 역임하였다. 여기까지는 맥주와 전혀 상관없는 인생이었다.


그가 맥주 산업에 뛰어든 건 은퇴 후다.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그는 동생과 함께 된장과 간장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오키나와의 된장과 간장은 90% 이상이 일본 본토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구시켄은 류큐 은행의 대출을 받기도 하고 미군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해서, 결국에는 오키나와 내의 점유율을 간장에서 70% 된장에서 58% 정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는 오키나와를 재건하기 위한 다른 사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오키나와 민정 장관이었던 벤셔의 강연을 듣고 맥주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하였다.


벤셔는 상공회의소 총회에서 '앞으로 오키나와 산업의 기둥은 시멘트와 맥주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멘트는 건물이나 도로 등을 건설하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반면 맥주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주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때 구시켄의 나이는 이미 60을 넘어섰다. 하지만, 구시켄은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과정이 발효와 효모에 대한 지식이 축전된 것이고, 일본 본토의 인맥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1957년,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 맥주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회사 설립은 구시켄 사장과 발기인 29명이 함께 하였다. 원래는 독자적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었고, 일본 본토의 맥주 회사와 합작하려고 하였다. 구시켄 사장은 기린맥주에 기술 제휴를 제안했으나, 기린맥주가 오키나와의 수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와 맥주 설비를 지정된 업체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기술 제휴는 중단되었다. 그리하여 '오키나와 기린 맥주 주식회사'가 될 뻔했던 회사는 '오키나와 맥주 주식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 오키나와 맥주 주식회사는 오리온 맥주를 발매하였다. 이 첫 맥주는 회사 이름도 바꾸게 하여 '오키나와 맥주 주식회사'는 2년간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오리온 맥주 주식회사'로 바뀌었다(2002년 오리온 맥주는 기린 맥주가 아닌 아사히 맥주와 제휴를 맺었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 수입된 오리온 맥주는 오키나와 맥주라는 타이틀로 출시되고 있다).


'오리온'이라는 이름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바로 시민들이 공모하여 만든 소중한 이름이다. 당시 오키나와 맥주는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부르기 쉬운 이름을 찾다가 이를 일반인들에게 공모하였다. 상금이 고액이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응모 열기는 대단했다. 무려 2,500건 이상의 접수를 받았다. 1등 상금이 당시 미화로 83달러 정도였고, 83달러를 받은 1등 당선작이 바로 오리온이다. 오리온이라는 별자리는 남쪽에 있어 남쪽의 오키나와의 이미지와 일치하고, 별은 사람들의 꿈과 동경을 상징하므로 오키나와의 재건과 오키나와인의 희망이 되기에 적합한 이름이었다. 또한 당시 오키나와를 통치하고 있던 미군의 최고 사령관이 쓰리 스타였기 때문에 선정되었다고도 한다.


앞서 기린맥주는 오키나와의 수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기술 제휴를 거절하였지만, 구시켄 사장은 오키나와의 좋은 물을 찾아다녔다. 오키나와 섬은 산호초가 융기한 섬이라 대부분의 물이 경수이고 알칼리성이 강해 맥주를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나, 산이 있는 오키나와 북부의 도시 나고에서 연수를 채취할 수 있었다. 구시켄 사장은 일본 내에서 술의 권위자로 알려진 도쿄대학의 사카구치를 찾아가 이 물의 검사를 의뢰하였다. 그 결과 오키나와의 물로도 좋은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현재도 오리온 맥주의 양조 공장은 오키나와의 나고 시에 유일하게 있다. 나고 공장에는 오리온 해피 파크도 있어서 맥주 양조장을 견학하고 오리온 맥주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959년 5월 17일, 마침내 오리온 맥주는 발매되었다. 갈색 병에 황금색 라벨을 가진 오리온 맥주는 나고 공장에서 출하되어 나하 시내로 화려하게 보내졌다. 구시켄 사장과 나고 시민들은 일약 축제의 분위기에서 맥주를 가득 채운 트럭들을 바라봤다. 맥주의 가격은 35센트로 일본 본토의 맥주가 55센트인 것에 비해 저렴했다. 처음에는 아사히, 삿포로, 기린과 같은 일본 본토의 대기업 맥주의 공세로 고전했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더운 날씨에 맞는 미국식 페일 라거로 전환하고 엄청난 영업 활동으로 이를 극복하였다. 오리온 맥주의 영업 방식은 한마디로 전 직원을 활용한 인해전술과 구시켄 사장의 푹 넓은 인맥이었다. 오리온 맥주의 전 직원은 오키나와의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오리온 맥주를 주문하고 다녔다. "오리온 맥주 있어요? 오리온 맥주 주세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구시켄 사장은 (한 때 경찰서장이었던)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지역의 단체가 오리온 맥주를 마시지 않고 있다면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오리온 맥주를 마시라고 설득했다. 이러한 전략은 매우 주효해 1959년에 14%이었던 점유율이 1966년에는 무려 95%까지 올랐다.


1960년에는 병으로 된 드래프트 맥주를 발매하였다. 최근까지도 오리온 맥주의 라벨을 보면 'ORION Draft Beer'라고 쓰여 있는데, 이때부터가 오리온 드래프트 맥주의 시작이다. 드래프트 맥주는 열처리를 하지 않아 신선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크게 성공하였다. 열처리는 당시 대부분의 맥주에서 살아 있는 효모를 제거하기 위해 맥주를 끓였다가 식히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병에 라벨을 부착하지 않고 스티커에 고무줄을 끼워 병목에 걸어서 판매했다. 그런데 이것이 뜻하지 않는 히트를 쳤다. 스티커를 모아 2센트에 다시 팔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2년에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었다. 일본 본토에 복귀한 후 오키나와에서의 주세를 감면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우대 세율은 5년간의 한시적인 조치였지만 5년마다 재검토하여 연장할 수 있었다. 지금도 오키나와에서 출하하는 맥주는 본토에 비해 20% 정도의 주세가 경감되고 있다.   


1973년에는 캔 맥주를 출시했다. 이때의 캔은 지금과 같은 알루미늄 캔이 아니라 스틸 캔이었다. 알루미늄 캔이 도입된 건 1977년이었다. 참고로 일본에서 알루미늄 캔이 처음 도입된 건 1971년의 아사히 맥주였다.


2002년에는 아시히 맥주와 제휴를 맺었다. 당시 왜 기린이 아니고 아시히냐는 주주들의 비판이 꽤 있었다고 한다. 이 제휴로 아사히는 나고 공장에서 '아사히 슈퍼 드라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오리온 맥주는 아사히를 통해 오키나와 외에서 오리온 맥주를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캔맥주의 디자인은 수 차례 변화가 있었다. 2015년에 드래프트 맥주 발매 55주년을 기념하여 리뉴얼한 캔맥주의 디자인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샴페인 골드의 바탕에 빨간색 별이 세 개 그려져 있고, 그 밑에 ORION이라고 크게 쓰여 있다. 아래에는 빨강, 스카이 블루, 남색 세 개의 물결 모양이 놓여 있다. 샴페인 골드는 맥주의 색을 의미하고, 빨강, 스카이 블루, 남색의 물결 모양은 각각 오키나와의 태양, 오키나와의 하늘, 오키나와의 바다를 상징한다.



최근에 오리온 맥주가 매각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시아 최대의 금융 그룹인 노무라 홀딩스와 미국의 투자 펀드인 칼라일 그룹이 오리온 맥주를 공동으로 인수한다는 기사였다. 한 때 오키나와에서만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50% 정도로 떨어젔다고 한다. 나는 이 마저도 높은 수치라 생각하지만, 확실히 이제는 오키나와 시민들의 맥주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이 찾는 맥주로 변화된 듯하다. 맥주 소비는 감소하고 있고,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주주들은 대부분 고령화가 되어 주식을 현금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노무라 칼라일의 자금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오리온 맥주를 사랑해 온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리온 맥주의 건투를 빈다.

2019년 최근의 오리온 맥주, 맥주 라벨의 역사가 담겨 있다.




참고 자료

오리온 맥주의 발자취 https://www.orionbeer.co.jp/company/history.html 

오리온 맥주 회사 연혁 https://www.orionbeer.co.jp/company/history2.html

오리온 생맥주의 역사 https://www.orionbeer.co.jp/brand/draft/history.html

위키백과 오리온맥주 https://ja.wikipedia.org/wiki/%E3%82%AA%E3%83%AA%E3%82%AA%E3%83%B3%E3%83%93%E3%83%BC%E3%83%AB

오리온 맥주 창업자 구시켄에 대해 https://blogs.yahoo.co.jp/kusinakayone/43955364.html

잘 알려지지 않은 오키나와의 오리온 맥주에 관한 7 가지 사실 http://okinote.com/2014/10/6557

오리온 맥주, 노무라 HD는 인수의 "정치적 상황"... 혜택 종료 시한 폭탄 https://biz-journal.jp/2019/02/post_26696.html

류큐신보 https://ryukyushimpo.jp/news/entry-893138.html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furusato-tax.jp/feature/detail/47350/3847


본문 사진 출처

https://www.orionbeer.co.jp



이전 09화 9화 오키나와 소바는 왜 소바라고 불리는 것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