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국 26개 도시 유럽 여행기
피렌체,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유럽 여행 네 번째 국가 이탈리아의 여행지 피렌체(Firenze)
피렌체, 그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듯하나,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는 그런 곳.
그곳의 여행기이다.
피렌체, 새로운 문화를 꽃피운 도시
영어식으로 '플로렌스(florence)', 이탈리아 어로 'Firoe' 즉, '꽃'이라는 어원을 가진 도시 피렌체.
피렌체는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문예부흥의 도시이자, 이 문예부흥을 지원한 메디치 가문의 '백합꽃'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미켈란젤로, 지오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유명 예술가들의 활동지였던 피렌체, 현재 피렌체는 유네스코에 의해 도시 전체가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을 만큼 그 의미가 큰 도시이다.
르네상스의 화려함을 담은 두우모 성당, 르네상스를 꽃피운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우피치 미술관, 예술의 도시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소 베키오 다리. 피렌치는 도시를 사랑하는 시민들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우모 성당
두우모 성당은 돔(dome)의 반구형의 둥근 지붕을 가진 독특한 형식의 건축물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추정되고 있는 두우모 성당은 1292년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1446년에 완성되었다. 규모가 상당하여 세계에서도 네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은 첫째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이고 두 번째는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성공회 성당(St. Paul's Cathedral) 세 번째는 독일 쾰른 대성당(Kölner Dom)이며, 네 번째가 ‘꽃의 성모(Santa Maria del Fiore)’라는 뜻을 가진 피렌체의 중심에 있는 두우모( Duomo) 성당이다.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도 특징이지만, 무엇보다 건축 형식이 여느 유럽의 성당들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다.
반구형의 둥근 지붕과, 하얀색 외관의 정교한 조각들과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그림들. 두우모 성당에서는 유럽의 성당의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 그 이상의 무언가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아마 인간의 상상력으로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성당의 고정된 형식의 비껴감, 그것이 아닐까.
르네상스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고정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그 정신을 가장 많이 담은 곳인 두우모 성당.
피렌체와 르네상스(Renaissance)
중세시대 말기 로마 가톨릭 교회와 신성 로마 제국은 정신적·물질적 생활에서 통일되고 안정된 기본 틀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이에 인간의 본성, 인간 정신과 지혜라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적 부활을 기원하는 르네상스가 발원하였다. 인문주의로부터 전통적 종교 교리가 강요한 정신의 억압 상태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한 것이다. 또한 인간의 자유로운 탐구와 비판력을 자극했으며, 인간의 사고와 창의력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르네상스의 정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은 무엇보다 미술분야이다. 미술은 당시에도 학문의 한 부류로 간주되었는데, 무엇보다 신과 피조물의 형상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주는 재능과 나름의 타당한 가치를 지닌 영역으로 여겨졌다.
르네상스 문예부흥
이런 의미에서 미술이 당대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도 상당하였다. 르네상스의 문예 부흥을 주도해던 피렌체에서는 당시 성당의 건축양식을 두고 당대 유명 건축가들 간 경합이 벌어졌는데, 그들 중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가서 고대 건축과 조각에 관한 연구를 하고 피렌체로 돌아오게 된다.
동시대의 화가들의 작품이 단조롭고 선을 주로 이용한 장식과 종교적 위계질서를 연상시키는 구성 방식에 의존했던 것과는 구별되는, 개인의 지식과 개성을 담은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합리적인 성격의 고대 세계의 미술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메디치 가문과 피렌체
르네상스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는 두우모 성당도, 르네상스의 문예 부흥을 이끈 예술가인 도나텔로도 당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지원을 받았다. 피렌체의 문화, 경제, 상업의 중심이었던 메디치 가문은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 피렌체 공화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문이었으나 금융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면서 유명해진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었던 조반니 디 비치(Giovanni di Bicci, 1360∼1429)는 피렌체의 귀족들과 대립하여 평민들의 입장을 옹호하며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되었다.
귀족에게 유리한 세금 제도를 철폐하고 평민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혁신하였고 상당한 돈을 공화국에 기부하여 귀족과 평민 양쪽의 지지를 받았다.
무엇보다 문예 부흥 사업에 자금을 쏟아부어, 피렌체에서 문예 부흥 운동으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15세기에는 메디치 가문을 통해 미켈로초, 도나텔로, 프라 안젤리코, 기베르티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후원을 받았으며 르네상스의 걸작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폰테 베키오 다리
베키오 다리는 이탈리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1345년에 건설되어 세계 2차 대전 중에도 피렌체에서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세기의 연인인 단테(Dante Alighieri : 1265~1321)와 베아트리체(Beatrice : 1266~1290) 만난 곳이기도 한 다리이기 때문에 더욱 낭만적인 장소로 여겨진다.
노을이 지는 아르노 강을 낀 베키오 다리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의 시선은 마치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영원한 원(circle)과 같으니, 내 시선은 높은 천체 대신 그녀의 얼굴로만 향하는구나".
-단테-
유럽인들의 삶의 교과서로 여겼던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 베아트리체를 신에 버금가는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로 격상시켰다.
베아트리체는 '신성한 행복을 주는 여인'이라는 이름으로, '신곡'에서 신의 옥좌로 향하는 단테의 길라잡이이자, 구원자 역할을 맡는다. 단테와 베아트리체, 그들은 단지 2번을 그것도 우연히 만났을 뿐이었다.
19세기 영국 화가 헨리 홀레 데이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베키오 다리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림으로 옮겼다.
베키오 다리는 다리이자, 14세기 당시 푸줏간 정육점등 가게로 쓰이는 건물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보석상, 미술품 거래상들의 판매소가 들어와 있다.
피렌체 중앙시장(Mercato Centrale Firenze)과 곱창버거
피렌체 중앙시장의 '곱창 버거'는 피렌체 시민들이 추천하는 음식으로, 시장 내에는 곱창 전문 버거 가게가 여러 곳이 있다. 맛 또한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맞는 달콤함과 건강한 맛이 느껴진다.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피렌체는 르네상스 예술지, 신과 종교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된 인간 본질과 본능, 지식의 강조로부터 부흥한 문화예술의 성지이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했던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한 욕구는 문화적으로 꽃 피우기도 한다. 누군가의 분노가, 열정이, 결핍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을 사랑하는 것, 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결국 먹고사는 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