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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별아star a Mar 21. 2019

여행의 의미- 오스트리아 빈, 클림트를 만나다

여행 경유지 오스트리아 비엔나, 짧은 시간 그러나 강렬한 영감


클림트, Gustav Klimt. 그 이름은 유명하나, 그에 대해서 아주 적은 정보만이 남아있다는 것이 오히려 그 화가의 특징을 말해주는, 오스트리아가 낳은 대표적인 화가이다.





영감을 주는 도시, 비엔나


슬로베니아에서 체코로 넘어가는 길, 나는 단 하룻밤이라도 비엔나에서 머물기로 하고, 일정을 꼼꼼히 정돈한다. 일정은 빡빡했지만,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반드시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벨베데레 궁전


빈(Wien), 영어로는 비엔나(Vienna)는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활발하게 작품을 쏟아내었던 영감을 주는 도시로 유명하다. 비엔나의 음악가들은 물론,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낳은 도시 비엔나.


누군가에게나 '그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작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그림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기도 전에, 그저 마음에 강렬하게 와 닿아서 깊이 꽂히는 그런 그림.


내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그러했다. 그의 고향이자 그가 창시한 빈 분리파(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기존 미술계에 반기를 든 운동)의 의장으로 활동했던 오스트리아 빈, 언젠가라도 그가 태어나 자라고 예술활동을 한 그곳에, 그의 영혼이 담긴 작품을 보고 싶었다.


쇤부른 궁전







벨베데레 궁전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빈의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은 사보이 왕가의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궁전이다. 1714년에 착공되어 9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좋은 전망의 옥상 테라스'의 뜻으로 태어나게 된 궁전, 누구나 좋아법한 넓은 공원과 깔끔하고 우아한 건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스타프 클림트 (1862. 7. 14~1918. 2. 6)


나도 클림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작품들을 보면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클림트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적었다. 그의 사랑과 일대기에 관해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어 그에 관한 '소설'이 나올 정도이고(이 소설은 꼭 나중에라도 소개해주고 싶다), 그가 죽은 후에야 열네 건의 친자소송으로 네 명의 사생아가 법적으로 인정되었다. 이 정도로도 그가 자유분방하고 틀에 얽매이지 않았고, 동시에 꽤나 베일에 가려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성향은 그의 그림에 모두 담겨있다.




키스 


키스는 누구라도 보면 '사랑하는 연인'그린 그림이라고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애정이 '황금빛 사랑'의 고귀하고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클림트는 그 흔한 자화상 하나 그리지 않은 작가로 유명한데, 이 작품은 클림트 자신과 그가 일생동안 사랑했던 여인  에밀리에를 담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그림의 주제로서 나 자신에게는 흥미가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흥미가 있다. 특히 여자들에게.”
- 구스타프 클림트


그보다 열두 살 어렸던 에밀리에, 그녀는 그보다 나은 조건과 환경에서 따듯하게 자라난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이에 비해 클림트는 불우한 가정환경, 아버지와 남동생을 일찍 잃고 정신병을 앓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고달픈 인생을 살았다.


그녀는 그의 뮤즈였고, 그가 퇴폐적인 그림에서 자연스럽고 밝은 그림으로 폭넓은 활동으로 인정받게 해 준 계기가 된 동시에, 관능적인 그림들에 까지도 영향을 준 그녀였다. 예술은 뮤즈라는 존재 없이는 한치도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둘의 이야기이다.



17살, 에밀리에가 클림트를 처음 만난 나이부터 그녀는 클림트에게 순정의 대상이자 뮤즈였고, 삶의 어려움과 방탕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빛과 같은 존재였다.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화풍으로 당시에도 대중들과 예술계의 파란을 일으켰던 클림트, 그가 그려낸 수많은 여인 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림에 수수하게 담아낸 여인이 바로 에밀리에였다. 



육체적 사랑을 즐겼던 클림트와 정신적 사랑을 추구했던 에밀리에는 서로를 동경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고 많은 것들을 공유했지만, 끝내 연인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클림트가 병환으로 죽는 순간 찾은 것도 에밀리에였고, 숨을 거두며 내뱉은 단어도 에밀리에였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 중에 가장 사랑스럽게 표현된 여인, 그리고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황금빛이 감싸고 있는 소박한 연인은 대조적이지만 더욱 명확하게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클림트는 자연을 곧잘 담아내기도 하였는데, 키스 그림에서 초록 잔디와 색색의 꽃들은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듯 밝은 모습이다. 무릎을 꿇고 그의 품에 살포시 몸을 맡기는 에밀리에, 눈을 감고 그의 키스를 기다리는 에밀리에의 볼에 입을 맞추는 클림트이다.


누구라도 그림을 보면, 그림 속 여인이 되어 풍족한 사랑을 느껴볼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그림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연인', '결혼'으로 완성되는 모습은 아니지만, 클림트는 에밀리에의 관심과 사랑에 언제나 목말라했다.


 '사랑의 완성'이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는 그림. 이 그림을 통해서 나는 결코 쓸쓸한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사랑에 관해서는 더욱이. 예술가의 자유로움과, 독특함. 그러한 것으로 사랑의 본질이 달라질까? 클림트에게 정말 에밀리에는 사랑이었을까? 아님 그저 그의 욕구를 채워주는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였을까? 본심은 클림트만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에밀리에 초상화 두 점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그림의 소유권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100대 그림 중에 하나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은 약$135,000,000(1416억 4000만 원)으로 2006년 경매 당시에는 미술 거래품 사상 최고가였다.


이 그림에는 가슴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이 그림의 소유자인 마리아 알트만, 그녀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조업으로 큰 부를 이룬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의 조카딸이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그의 재산과 수집품들은 모두 나치에게 몰수되었고, 그는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몰수된 것 중에서는 클림트의 그림 다섯 작품이 있었는데, 이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지고 있었다. 그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은 소송을 통해 이 그림의 소유권을 가져오기로 하고 마침내 인정받게 된다. 그녀의 나이 아흔 일 때의 일이었다.

 


클림트와 초상화의 모델


클림트가 활동하던 당시 빈에서는 부자 유대인들이 아내와 딸의 초상화를 유명한 화가에 부탁하여 그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그림은 자신의 아내의 초상화를 부탁한 페르디난트 블로후- 바우어로 빈의 이름난 부자이며 클림트에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후원자이기도 했다.


클림트는 빈 미술 대학에서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은 인재였고, 20대 중반부터 이미 공공건물을 장식하는 벽화와 역사화를 그려 황제의 훈장을 받을 정도로 명망 높은 화가였다. 따라서 그에게 초상화를 부탁하는 것은 일부 상류층 뿐이었다. 클림트는 상류층 집안의 딸들과 아내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니기도 했으며, 이 그림의 모델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그린 작품의 여인들이 대부분 외설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되고 있고 모델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들도 여럿이다.



그림은 클림트 화풍의 가장 큰 특징인 금빛으로 가득 물든 모습이다. 그 가운데 약간 빗겨 나게 자리 잡고 있는 여인은 어찌 보면 아련하게, 또 다르게 보면 아무런 느낌 없는 얼굴로, 달리 보면 무언가를 강렬히 갈구하며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것은 그녀를 담고 있는 화가, 클림트가 아니었을까? 그녀가 남편을 두고 클림트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강렬히도 원하고 그녀의 어떤 것이라도 담아내려는, 그녀를 이해하기 위한 열정, 그것이 아니었을까? '열정'-



 




생명의 나무



2017년 10월 19일 나의 친할아버지가 9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건강하셨고 편찮은데 없으셨지만, 어느 때가 되어서는 기력이 급속하게 약해지셨다.


누구에도 지어주는 고통 없이, 고난 없이, 평소 자신의 삶처럼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죽어간다는 걸. 느낄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이라는 걸. 그래서 슬픔이 깊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되돌아보니,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우리 가족에게 편안함이라는 축복을 주시고 가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를 보낸 곳은 서울 시립 승화원이었다. 가까운 친족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가족애를 중요시하는 나의 아버지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빼먹지 않으셨지만, 말 수가 없으신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5분을 넘기지 못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누구보다 다정하고 재치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돌아보면, 누군가의 인생은 50년 이상이 남았다고 치면, 누군가에게는 20년, 누군가에게는 2년, 누군가에게는 2개월 정도이다. 어쩌면 나는 할아버지의 남겨진 몇 년을 나의 50년 보다 가치 없다고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한창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나와, 이제 삶의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는 할아버지.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이, 내가, 나의 미래가 더 가치 있다고 느꼈던 거고, 그렇게 할아버지의 남은 인생을, 할아버지를 나만큼 소중히 하지 않았다.


평소에 노인을 공경하고, 지하철에서는 항상 자리를 양보하고, 사람들을 편견 없이 대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이러한 '노력'과 '열정'의 반의 반이라도 할아버지에게 보였다면, 할아버지는 좀 더 따듯하게 눈을 감지 않으셨을까? 나는 나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에, 가끔 치를 떨 때가 있고, 이럴 때가 바로 그럴 때이다.

할아버지는 따듯하게 눈을 감으셨을까?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 데도 나를 예쁘게 봐주셨을까? 분명 다 아셨을 텐데.



할아버지를 보낸 곳, 화장장에는 거대한 벽화 그림이 있었다. 황금빛으로 실내를 꾸며주고 있는 벽화는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였다. 죽은 사람들과,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한 장소에 생명의 나무라니.. 나는 그 작품을 한 동안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모두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를 살지만 하루를 죽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루를 더 산다고 자만할 필요도 하루를 덜 살았다고 오만할 이유도 없다.


 '나이'. 나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생명이 있는 한, 건강이 있는 한 우리의 삶은 하루를 덜 살고 더 산 것과는 무관하게 모두 '생명'을 갖는다.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고 귀하다.


"이 나이에는 이걸 해야지, 이 나이쯤 되면 이런 모습이어야 하고, 이 나이가 되면 이걸 하고 있어야겠지?" 누군가가 정해 놓은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에는 나의 '생명'이 너무 귀하다. 누군가가 더 일찍 해냈다고, 누군가가 더 늦게 해낸다고 그것만으로 잣대 삼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저 모두가 가치 있으므로.


 똑같이. '똑같이 가치'.  


우리는 싸운다. 때로는. 누가 더 적고 많음에, 누가 더 경험이 적고 많음에, 누가 더 나이가 적고 많음에. 죽음 앞에서는 부질없다고 느꼈다. 우리는 모두 죽어간다. 동시에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지금까지 허투루 살았다면 앞으로를 더 가치 있게, 지금까지 가치 있게 살았다면 더 하루하루 허투루 하지 않으며, 그렇게 열심히 살면 된다. 비교하지 않고, 남에게 남은 기간을 시샘하거나 나에게 남은 기간을 자만하지 않고.



'생명'. 나에게 생명을 준 것은 나의 뿌리, 나무의 뿌리.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나를 움직이고 숨 쉬게 하는 것은 하늘. 나에겐 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라서 자만했던 시간을 반성해 본다. 그리고 위로부터 받기만 했던 내리사랑을 깊이 새겨본다.



내리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 나는 내리사랑만큼 치사랑을 가져야 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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