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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별아star a Mar 12. 2019

여행의 의미- 동서양(東西洋)의 뱀과 여성



용의 도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황금 양털을 구한 아르고호의 선원들과 이아손이 류블랴나 근처의 호수에 있는 용을 물리치고 만든 도시가 바로 류블랴나(Ljubljana)이다. 그래서 그런지 류블랴나 곳곳에는 용을 보여주는 상징들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용의 다리와 류블랴냐 성이다. 실제로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을 가뒀다는 감옥이 있어서 색다른 관광장소로 방문 가치가 있는 도시, 류블랴냐.

류블랴나의 상징 '용' 다리
상상의 동물인 용을 가뒀다는 류블랴나 성 내 감옥의 모습


용의 도시를 방문하고 나니, 용(龍)을 서양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또는 동양에서 용은 길(吉)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제국의 '특별한 힘'을 용에 빗대어 그려냈다고 하는데 그러한 인식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용은 오랫동안 염원한 힘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물리쳐야 하는 대상으로 흉(凶)한 이미지로 보이고 있다. 특히 유럽의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용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미혹한  즉, '죄'와 '악' 그 자체를 상징한다.






영화 속 용과 뱀

신비한 동물사전


작년 말에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을 봤는데, 영화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우리나라 영화배우 김수현 양이 맡은 내기니, 뱀으로 변신하는 인물이었다. 내기니는 본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가 자신의 영혼을 7개로 나눠 보관하는 곳, 즉 '호크룩스' 중 하나이다. 볼드모트의 곁을 언제나 함께하는 그의 분신이기도 한 뱀, 내기니. 내기니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여자의 모습을 하고 뱀으로 변신한다.



'뱀은 곧 여자'라는 상징.

에덴동산에서 뱀은 하와(이브)를 유혹하여 선과 악을 알게 해주는 생명의 나무의 과일을 따 먹게 한다. 과일을 먹은 이브는 아담에게도 과일을 알려주고 둘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단 하나의 규율, 선악과를 건드리지 말라는 뜻을 거역하여 '죄가 없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신비한 동물사전의 내기니를 봤을 때, 다양한 생각이 들었는데, 에덴동산의 이브와 선악과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질문들이 스치고.


왜 하필 내기니였을까? 왜 하필 뱀이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여자였을까? 왜 하필 동양인이었을까?



내기니를 처음으로 지어낸 해리포터의 작가 죠앤 K. 롤링은 그 답을 알고 있을까?

그녀의 대답에 따르면 내기니는 '내기(Nagi)라는 인도의 설화 속 뱀신을 숭배하는 종족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한다.


내기니는 그곳에서 따온 이름이고 아이디어일 뿐, 동양인, 여자, 그 속성에 관한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분명, 영화 속 수현이 맡은 내기니는, 그 설정만으로 봤을 때는 흉측한 저주를 품었지만, 평소에는 아리따운 모습을 가진 '여자'였다.



`평소에는 여릿한 모습으로 본모습을 감추는 '영악(靈惡)'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 편의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은 서양인이 동양인 여자에게 가지고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편견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영화 속 내기니는 남자 주인공 크레덴스의 선택에 따라 길을 나서는 그런 캐릭터이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인 여성'이 수동적인 이미지라고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캐릭터였다.



내기니가 자신이 묶여있던 서커스 단(circus)을 크레덴스 베어본(Credence Barebone)과 함께 탈출하게 되는데, 크레덴스는 신비한 동물사전에 등장하는 강력한 마법사 중의 하나로, 앞으로 진행되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핵심인물이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아직 자신의 신분이나, 정체성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서커스 단에 묶여있었던 크레덴스. 자신을 알기 위해 모험을 하는 '크레덴스'와 그의 곁을 함께하는 '내기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He may know what you were born, but not who you are.
(그 사람은 너의 출생에 대한 것은 알지 모르나 네가 어떤 이 인지 아는 건 아니야).

크레덴스가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는 그린델왈드의 유혹에, 그의 편에 서서 동참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 내기니가 해 준 말이다. 외로웠던 크레덴스, 그래서 더욱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했던 그. 크레덴스는 그 길을 내기니와 함께하고자 했다. 


그리고 내기니는 출생보다, 타고난 것보다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훗날 이 말이 시리즈에서 어떤 복선을 가져오게 될지는 모른다. 크레덴스와 내기니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질지, 다른 누군가가 등장할지, 그 속에서 내기니가 어떠한 역할을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기니의 역할이 분명 어둠의 세계에 힘을 보태는 것임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부터 종종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해리포터의 <불의 잔> 편에서는 볼드모트(톰 리들)는 쇠력이 약해져, 힘을 되찾기 위해 내기니의 우유를 마신다. 크레덴스와 내기니가 만난 년도가 톰 리들의 탄생연도였다는 것도, 톰 리들이 고아원에 버려진 이야기에 대한 고아원 원장의 간략한 설명이 서커스 단(circus)에 묶여있던 내기니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동양 여자'라는 이미지로서의 내기니, 그리고 그 속성.

이는 오랫동안 서양인들의 인식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남자의 가장 연약한, 그러나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되는 여자.


내기니. '해리포터''신비한 동물사전', 그 속에서 이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지게 될까?

정체성을 찾으려는 크레덴스, 혹은 마법의 세계의 힘의 균형을 쌓는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 아직 등장하진 않았지만 볼드모트(톰 리들)의 이야기에서 작가가 캐릭터에 내포한 상징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내기니, 어쩌면 그녀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어둠의 힘을 막으려는 강인한 여인의 모습으로, 아들의 힘에 기대기보단 그가 담대하길 바라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녀의 역할이 어떻게 보일지 기대되는 까닭은 슈퍼 히로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양인, 서양적 세계관으로만 국한된 영웅적 전개가 지루하기 때문이다. '동양인 여자'의 이미지로 세상의 원죄를 다 덮어 씌우는 그런 잔인함은 없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나와는 다른 파란 색깔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우리 스스로에게도.


신비한 동물사전 1, 2 그리고 2020년 개봉 예정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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