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정시 준비반을 다니고 있는데, 방학 때는 아침 10시에 등원해서 저녁 11시까지 공부를 한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은 10시쯤에 귀가한다고 하는데, 우리 애는 학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공부하는 아이가 대견하다.
1~2학년 때는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속을 많이 태웠는데, 3학년 때 목표가 생겼다며 공부에 빠져드는 아들을 보면, 솔직히 말해, 적응이 잘 안 된다.어쨌든 아이의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기다려왔던 우리 부부에겐 정말 기쁜 일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스스로 무언가에 목표를 정하고 열정을 불사른다는 것은 박수받을 일이다.
이제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았다. 개학하면, 9월에 한국교육과정 평가원이 주관하는 모의고사를 치르고 수시 원서를 쓴다. 그러다 보면 곧 수능이 다가올 것이다, 아들이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지치지 않고,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안타까운 것은 학원의 위치가 애매해서 매일 태워줘야 한다는 것과 한 번 등원하면 집에 다녀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학원을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아는 친구들도 별로 없어서, 혼자 두 끼 이상을 매일 사 먹어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아들은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주변에 많다고 좋아하더니, 지금은 끼니때마다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한다고 한다. 밥값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만만찮은 식비에 부담도 컸을 것이다.
아내는 이런 형편을 진작에 눈치챘는지 아이의 저녁 식사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싼다.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식사 후에 디저트로 먹으라고 과일이나 요플래도 채워 넣는다. 가끔 나한테는 저렇게 해주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만 지극 정성인 아내를 보면, 질투가 느껴질 정도이다. 어쨌든 도시락 준비가 끝나면, 아내는 수업을 위해 출근하고, 나는 퇴근하는 데로 아내가 준비해 놓은 도시락을 아들에게 갖다 준다.
그러다가 방학을 맞이했다. 우리 집에는 아내를 제외하고, 모두가 학교를 다니기에 애들을 챙기는 아내만 더 바빠진다. 며칠 관찰을 해보니, 아내는 출근했다가 집에 들러서 도시락을 싼 다음에 다시 출근을 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는 방학 중에 아내를 돕기로 했다. 사실 돕기로 한 건지, 아니면 해야 할 것 같아서 찔려서 하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두 아이를 당분간 전담하게 되었다.
여기서 질문.
옆에서 곁다리로 돕는 것과 전담하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하루 일과를 공개한다. 아침에 일어나면가족들이 먹을 토스트를 만든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식빵을 구운 다음 잼을 바른다. 계란의 노른자를 터트려 적당하게 익힌 후에 계란과 치즈를 빵에 넣는다. 그 사이에, 아들을 깨우고, 완성된 토스트를 포일에 감싼다. 아들이 씻고 내려올 때를 기다려서 차를 준비시키고, 수험생을등원시킨다.
재빨리 돌아와서 딸을 깨우고 밥을 먹인 다음, 학원에 보낸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빵을 좋아하는데 딸은 느끼한 걸 못 견딘다.
잠시 여유 있는 시간을 맞이하여 나도 스터디 카페로 향한다. 딸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1시간 반에서 2시간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렇게 또 12시 반쯤에 집으로 돌아와서 딸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다. 점심은 주로 온라인에서 주문한 밀키트를 이용한다.
아이는 또다시 학원엘 가고, 나는 정리를 한다. 어제 아들이 먹었던 도시락과 아침부터 쌓인 설거지를 한다. 이 시간을 이용하지 않으면 저녁 시간이 빠듯해진다. 설거지를 하면서 여유가 되면 빨래도 돌린다.
설거지가 끝나면 도시락을 싼다. 아내가 싸던 도시락을 흉내 내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준비 시간과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조리 시간, 완성된 도시락을 아들에게 가져다주는 배달 시간, 그리고 그걸 감당할 나의 헌신이 필요하다.
처음 도시락을 싸던 날에 나는 근처의 반찬가게에 들러 나물을, 과일가게에서는 포도와 복숭아를 샀다. 그리고 온라인 반찬가게에서 주문해 놓았던 밀키트를 조리했다. 아들은 고기반찬을 좋아하기에 나는 도시락의 메인 메뉴로 떡갈비와 소불고기를 반찬으로 준비했다. 고기만 먹으면 금방 질릴 것 같아 콩나물무침도 함께 넣었다. 디저트로 복숭아를 준비했다.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자르니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렇게 준비한 것들을 도시락통에 담았다. 도시락에 담긴 나의 작품을 보니기분이 좋았다. 도시락을 싸는 행위가 아들에게 아낌없는 아빠의 사랑을 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닌 아빠가 준비하는 도시락의 특별함을 아들이 알아줄지 모르겠다. 서툴지만 사랑이 가득 담긴 도시락을 아들에게 전해줬다. 아들이 도시락을 맛있게 먹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충만해졌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더니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 같다.
처음이라 그런지 집안일을 하고, 도시락을 싸다 보니 오후 일과가 다 지나가 버렸다. 곧 딸아이의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벌써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엄마들은 이 일들을 매일, 어떻게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엄마가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실감한다.
저녁에 아내에게 칭찬을 받았다. 매일 이 일을 하는 사람이 한 번 한 사람에게 칭찬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다.
앞으로 방학 동안 이 일을 매일 해야 한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솔직히 말해서 두려움이 밀려온다. 가끔은 이 험난한 일을 해결해달라고 배달의 민족에게 부탁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