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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스 Feb 19. 2024

뜨거운 안녕은 없어

#12 징크스 한 번 깨보지 않을래?

  나는 왜 이렇게 헤어지는 감각이 낯설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늘 먼저 일어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진다. 나의 어리광은 조용하고 침착하다. 그저 먼저 일어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면서 2차고 3차고 꿋꿋이 따라간다.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 사람들 속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마음. 나는 사람들이 좋다. 그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었든 그렇지 않았든 별로이든 아니든 그저 눈앞에 존재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정이 들어 버린 사람이라면 눈을 맞춘 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꽤 사랑스럽다. 끊임없이, 오래도록 헤아려 보고 싶어진다.


  나는 제법 말괄량이 같은 성격이다. 늘 당차고 씩씩한 체를 하지만 생각보다 겁도 많고, 깐깐하게 따지는 것도 많다. 순수한 아이처럼 밝은 모습이 있는가 하면 순진하게 하염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푼수처럼 쉽게 흔들리는가 하면 꽤 신중하고, 혼자 오래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나는 소중한 것을 함부로 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한 번 들였다 버릴 때가 되면 애물단지 같은 취급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버리고 싶은데 추억이 있어 의리삼아 버리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면 그건 좀 비정한 것 아닌가? 그것이 물건이든, 무엇이든 소중한 것이 소중하지 않게 변질되는 것만큼 서글프고 비참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떤가. 나는 사람을 신중하게 들이는 편인가. 최근에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예외적인 것이 있다면 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능력만큼은 신중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한 번 친밀해지기로 마음 먹은 사이는 꽤 오래 보는 편이다. 그러니까 안녕, 뒤에는 안녕! 그리고 또 안녕. 나에게 안녕은 내게서 멀어지라는 이별의 당부가 아니다. 기쁘든, 슬프든, 아프든, 서글프든 그저 나와 함께 있어줘. 나눌 수 없어도, 헤아릴 수 없어도 나의 가시거리 앞에서 처절하게 보여주고 구겨지고, 으스러지고 그냥 그렇게 있자. 싸우고, 의심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늘 그런 날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있는 날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바람처럼 흩날리지 말고 나무처럼, 뿌리처럼 나이테를 둘러가며 내 옆에 있으라는 것이다.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또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만큼의 안녕을 하자. 또 보자. 이것이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내게는 회복의 정서가 있다. 그리하여 이것이 나의 안녕이다.  


  찔레꽃을 밟더라도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면서 정답게 걷는 것. 끝내 함께 회복해가는 것.  


  내게는 한 가지 징크스가 있다. 내가 진심을 다해 마음 깊은 곳,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목소리를 들려주면 그 이후로 그 사람이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영영 큰 아픔을 준다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면서 사람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 그리하여 기대하지 않고, 돌려받지 않으려 하는 정서는, 그래서 사람을 하찮게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고 내내 계속해보겠다는 태도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엉켜 온 그 징크스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요즘의 나는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나를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쉽고,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다. 적당한 거리. 그 이상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가 않지. 그렇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규칙과 파기, 질서와 금기. 안과 밖, 이해와 몰이해, 우연과 필연. 이번에도 그런 무용한 것들이 깨질 수 있을까? 이것이 결국 재미있는 이야기로 완성될까? 무너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좋을 것이니까. 유독 안개가 짙고 흐린 날이다. 가볍게 조금 웃어 본다.   


* <사랑하는 시대에게> 1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함께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연재 브런치북 <사랑하는 시대에게>는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 위해 잠깐의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에요. 금방 돌아올테니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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