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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스 Feb 12. 2024

별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11 조금만 더 늦게 찾아오지 그랬어

어릴 때부터 어른스럽다는 이야길 듣고 자라왔다. 집에서는 유일한 첫째. 재미있게도 사촌 중에서도 나이가 제일 많은 편이다. 초중고등학교 통지표에는 늘 규칙을 잘 지키며, 정리에 탁월하다는 평가가 쓰여 있다.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때면 예의가 바르고, 손이 야무진 데다 당찬 성격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편 나는 차분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뭐든 척척 해낼 거라는 그 기대와 관심이 오래도록 부담스러웠다. 그게 싫어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가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위선과 거짓말이 늘 내 곁에 평행선처럼 자리했다는 뜻이다. 속마음과 다른 얼굴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뻔뻔해지는 것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마음을 가볍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세금 납부나 연말정산-같은 걸 하는 중인 사람 앞에서 ‘오~ 어른!’하는 추임새가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저절로 나오는 사람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진한 표정을 짓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막내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직관력이 좋아 눈치가 빠르고, 상황 예측이 쉬워지는 게 싫어서. 그러니까 얕잡아 보이고 싶은 마음. 나도 내가 자꾸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게 두려워서. 그리고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어서. 그래서 모르는 척, 눈치가 없는 척 연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나 보다. 가족에게조차도. 친해지고 싶은 친구 앞에서도. 지금 생각해 보면 첫째로 보이든 막내로 보이든 그런 것은 중요치 않고, 그저 내가 원했던 것은 조금 멍청하고, 쉬운 사람으로 타인에게 각인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좀 편해졌으면 하는데서 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인 것이다.


  왜 그랬냐면, 변명을 덧붙이자면,

  미성숙한 사람은 쉽게 버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사람에겐 연민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지금껏 또래와 달리 성숙하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내내 스트레스였다. 사람들은 어른스러운 사람에게 쉽게 기대하고 실망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쉽게 버리곤 한다. 어른스러우니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러분은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받는 감각을 아시는지. 몇 번이고 버림받을 것 같다는 불안을 가지고 성장하는 마음을 아시는지. 나는 그것을 안다. 그 비참하고 하염없이 무너지는 아픔을 안다. 그것이 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진짜 이유다. 스무 살의 어느 겨울,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원자. 나는 그 겨울에 구원자가 되고 싶었다. 외로움이 짙어질수록 세상을 일찍이 다 알아버렸다고 과신했다. 이 세계는 하찮고 허무하므로, 인간에게는 더 이상 애쓰지 말자고.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가자고. 그러다 보면 ‘버림받는 감각’ 같은 것은 애초에 겪지 않을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눈이 보이지 않는 관념보다는 손에 잡히는 물성만 믿어가자고. 나는 내가 지금껏 퍽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잘 모르겠다. 마음이 여기저기 짓물러 있는 것을 애써 감추듯 딱쟁이에 기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미성숙한 척 연기를 했던 것이 아니라, 진실로 미성숙한 사람임을 깨달았음에 대한 안도감이 든다. 또한 그래서 아쉽다. 내가 조금 더 성숙했을 때 만났으면 좋았을 걸 하고 떠올리게 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서 오늘의 나는 슬프다. 성숙한 대처라고 생각했으나 실은 미성숙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에, 내 마음 편하자고 이리저리 할퀴고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 후회가 된다. 너무나도 미안해진다. 나는 아직 ’구원자‘가 될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 ‘방랑자’의 시절에 머물러 있다.


  추진력과 결단력이 빠른 내게도 고민의 순간은 늘 존재한다. 정말로 결정이 어려워질 때면 나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로는 인간이 100년도 채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로는 Let it be. 순리에, 운명에 맡기자는 거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여전히 유속성 있게 흔들릴 것이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조류에 이리저리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 날엔 내 손으로 구원하게 되는 사람도, 의도치 않게 방랑하게 되는 사람도 또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마다 나는 또 마음이 아파지거나 마음을 채우게 되는 일을 겪을 것이다. 미성숙한 시기에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방랑자로 기억하겠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나는 나와 같은 방랑자를 만나 그 사람의 구원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때로 떠나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조금만 더 늦게 찾아오지 그랬어,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쩌면 지금의 내게 찾아왔어야 하는 인연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나를 지나쳐가려는 인연 앞에 더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지나간 인연들에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그것이 내게 좋겠다. 더 깊게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 마음 편하게 먹고, 여유롭게 웃어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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