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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스 Jan 29. 2024

운명에 맞서야 한다면

#09 조화롭게 살 수 없어 조화가 되어야 한다면

  지난주 나는 친구들과 이래저래 홍대 거리를 쏘다니다 사주와 타로를 연이어 보았다. 그런 걸 본다고 해서 당면한 문제가 해결이 된다거나 특별히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날은 몹시 매서울 정도로 추웠고, 근처의 카페는 만석이었으며, 한 골목 돌아 걷다 보면 사주와 즉석사진관이 연이어 있어 어디든 들어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날 만났던 친구들은 운명을 믿지 않는 타입이다. 그중에 나는 기회주의자다. 살아오며 내가 타고난 운명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때로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과 인상, 사는 곳과 말투(어떤 말들은 삼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만 보고 나를 과신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함부로 타인이 나를 과신함으로써 괄시당할 때마다 상처를 입었다. 그때마다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해명했고, 해명이 되지 않을 땐 증명을 하려 했다. 나는 세상의 공평함을 믿는다. 타고나기를 내가 누린 것이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타고나기를 평생 가질 수 없는 것이 내게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아니, 운명을 믿는 날도 있다. 그러나 운명에 관계없이 기회를 사냥하는 타입이다. 나는 내가 잡은 기회를 운명이라 믿기로 했다. 가만히 있어서는 세상이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얌전한 아이에게 어른들은 양보하고 기다리는 법만을 가르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피로함을 줄이기 위해 이 ‘세계의 순리’는 애석하게도 평화로운 조화보다는 약자의 부조리함을 결코 해소해주지 않는 인공적인 ‘조화’를 사방에 뿌려놓은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니 나도 철저하게 강인한 가짜가 될 수밖에.        


  이직과 퇴사 사이. 생각이 많았던 한 주였다. 감사하게도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아서 더 벅찼던 한 주이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운동을 하지 못해 몸의 선이 망가지는 것이 보여 속상했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생각의 끈이 자꾸만 헤지는 것 같았다. 날마다 중요한 미션들을 해내야만 하는 달력으로 꽉 차 있는 것을 보니 조금 숨이 막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만히 혼자 방 안을 빙빙 돌며 몇 시간이고 생각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어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건 회사에 대해 생각을 해야만 했다.    

  

  회사에 대해 생각하면 약한 ‘조화’로 살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 답을 내린 것은 분명하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꽤 즐겁다.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일도 무척이나 내게 에너지를 주는 일이지만 뜻하지 않게 시작하게 된 UX라이팅도 신기하고 흥미롭다. 정답이 없는 일에 답안지를 써내는 일. 목적어를 빼고 목적을 말해야 하는 언어 장난. 지금의 회사가 내게 운명이라면 회사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이 자린 기회다.      


  내게 사주를 봐주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통된 말을 했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고민했다. 그 사람들은 내게 마음이 편해지려면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욕심을 버리고, 목표의 가짓수를 줄이고, 더 사소한 것. 더 사소한 것에 마음을 붙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노력했다. 날마다 변하지 않아 줄 것들에 정을 붙였다. 길가의 나무나 고궁, 혹은 학교. 누구도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숨겨진 도서관의 서가에 배열된 책. 잘 정돈된 방. 몇 통이고 바꾸지 않는 향수. 같은 코스로 걷는 길. 우중산책.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내게 분명히 도움이 된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 있다. 그러나 사람을 계속해서 살게 하는 것은 사소하지 않은 것에 있다. 햇빛과 바람이 없더라도, 사방이 척박한 땅이더라도 그것을 개간하고, 그에 맞는 씨를 뿌리고, 물을 구해오고, 품어가며 땅이 아닌 것을 땅이 되게 하는 일. 나에게 인생이란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삶은 기꺼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성장으로 완성된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 때로 포기하는 일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욕망하고, 실패하고 무너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무엇이 있었다고, 그것을 꿈꾼 적이 있노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부끄럽지 않게 노력하는 일 역시 마음을 채워줄 것이다. 무엇에 도전하는 일엔 잃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나 세상은 공평하기에 얻는 것도 있다. 그것이 비록 크지 않더라도 그런 것들에 감사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려 한다. 내게는 그 편이 좋겠다. 진짜 달이 될 수 없어도 괜찮다. 사람들은 때로 빛에 의해 발견되는 진짜 달보단 스스로 발광하는 가짜 달을 응원할 것이다. 때로 차가운 달보단 뜨거운 달빛 조명의 이야기가 더 값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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