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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스 Feb 05. 2024

눈빛을 읽는 능력 때문에

#10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이 괴롭더라도

  고백하자면 나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나는 사람의 눈빛을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보는 것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의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다음에 내게 뱉을 말이 무엇인지 투명하게 들린다. 그러니까 내게 사람의 눈빛을 보는 일은 중요하다. 평생을 눈빛 하나로 사람을 판단해왔다.


  사람의 눈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눈빛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눈빛을 통해 한 사람의 성정을 읽는다. 나와 맞는 사람인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인지. 고집이 센 사람인지, 슬픔을 간직한 사람인지, 질투가 많은 사람인지,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인지. 찰나. 정말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하다. 제대로 볼 수 있다. 내 능력은 한 번도 잘못 발휘된 적이 없다. 이것은 요술 같은 능력이다. 덕분에 쉽게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돌려받지 못할 때마다 꽤 오래 실의에 빠지는 내게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다시는 마주할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최근에 나는 한 사람의 눈빛에서 ‘거리감’을 읽었다. 나를 성가시고, 짜증난다는 듯 바라보는 얼굴.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마음을 할퀴어 오는 듯한 그 눈빛은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날 내가 받았던 인상-나랑 잘 맞지 않는 사람이네-만큼은 또렷이 머릿속에 남는다. 그날 나는 나와 인사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그 한 사람만큼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눈빛에서 내가 읽은 것은 ‘불편함’과 ‘싫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여럿이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 사람은 자꾸만 나를 골려주듯 짓궂게 장난을 쳤고, 나는 그 사람에게서 편안하지 않음을 감각했다.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않음.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어색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여럿이 모여 있는 자리가 아닌 오직 그 사람과 나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자리였다. 고개를 또렷이 돌려 그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싫음’이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의 눈빛에서 ‘싫음’을 읽어내고 싶었다. 나의 부질없고 사소한 그 능력이 사라졌을 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다. 나의 직관은 꽤 정확한 편인데, 나는 틀리지 않은 사람인데.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일부러 골려주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를 다시 만난 이유가, 이곳에 나를 불러온 이유가 그날 내게서 경험했던 ‘불쾌감’을 되갚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 편이 좋겠어. 그게 아니라면 내가 너무 괴로울 것 같았거든.


  여전히 그 사람의 눈빛에선 ‘불편함’이 읽혔다. 그때의 그 ‘싫음’은 옅어졌더라도 나를 불편해하는 모습과 내게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는 것이 읽혔다. 그걸 찾거나 찾지 못한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하는 듯도 같았다. 그래서 덩달아 나까지 조금 불안해졌던 것 같다. 그런 틈을 참을 수 없는 성격인 탓에 나는 속을 읽어보기 위해 작정하고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눈을 오래도록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알고 싶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평소 내가 겪은 상황과 장면들을 찬찬히 기억에 담아 두는 편이라 사람의 얼굴과 인상을 잘 잊어버리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눈빛. 도저히 너머의 목소리가 읽히지 않았던 그 동공만큼은 선명하다.  


  그날 내가 읽었던 것은, 그러니까 읽지 못했던 것은 그 사람이 내게서 찾고 싶은 그 ‘무엇’이었다. 그 사람은 내게서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날 내가 그 사람의 눈빛을 읽지 못한 것은 그 사람 역시 내게서 찾고자 하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나는 세상의 모든 관계에는 가치와 대가가 따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서 무람하게 치러야 하는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요즘 그것에 대해 골몰해 있다.


  읽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나를 둘러싼 일, 모든 시작 앞에서 끝의 꼬리를 미리 가늠하는 편이다. 이것은 오래 굳어진 규칙이자 습관이다. 그래서 자주 슬프고, 먹먹하고, 우울해지지. 떠나가는 감각을 늘 낯설어하는 거야. 그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고, 아픈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얼마 동안은 마음이 갈팡질팡하여 괴롭고 또 괴로웠었다. 그렇지만 이제 결론을 내렸다.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잃어야 하는 것들을 더 이상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잃어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 눈빛을 읽을 수 없던 사람이 기꺼이 나를 관통할 수 있기를, 불안과 고통은 내게 흘려버리고 평안함을 얻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그렇게 천천히, 걸음걸음 내게서 떠나가되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아갈 수 있기를. 나는 이제 그것을 진심으로 소원하기로 했다.


  오직 나만이 그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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