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다스 Jan 15. 2024

살벌한 전쟁터에서

#07 시행착오를 극복해야 할 때

                 

  나는 지금 살벌한 전쟁터의 현장에 있다. 매일 19시부터 22시까지. 살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거나 약속이 없는 날엔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주말에는 더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처음엔 사람들이 서툴게 스쿼트를 하고 기구 운동을 해대는 나를 우스꽝스럽게 보는 것만 같아 민망했는데 요즘은 마음에 생채기가 날 때마다 동굴 대신 헬스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덤벨 같은 무거운 기구를 들고 있으면 서서히 기운이 빠지며 스트레스가 풀리고 웃음이 난다. 양 손바닥에 생긴 굳은살은 그간 열심히 무게를 올리려 노력했던 영광의 흔적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얼굴이 익은 전우와 캡틴도 있다.      


  근력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초반에는 헬스장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10의 속도로 쉬지 않고 30분의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정수리부터 배어 나오는 땀이 관자놀이와 미간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하, 좋다. 살이 빠지는 감각. 안도하며 선생님이 알려준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스쿼트는 매일 100개를 했고, 덤벨을 든 채 런지와 이런저런 스트레칭, 머 어쩌구저쩌구 프레스들. 처음엔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아 무릎이 욱신거리기도 했다. 동작을 할 때마다 뼈가 두둑거리는 신음을 뱉었다. 선생님은 내가 오랜 기간 잘못된 자세로 살아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도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어 고관절이 거의 분리된 상태라고. 그렇담 이겨내야지. 나답게 해내야지. 운동이 하기 싫어 나가지 않은 날은 없었다. 내게 운동은 어느새 싫고 좋고를 따지지 않는 너무 당연한 루틴이었다. 심지어는 약속이 끝나고 1시간이라도 시간이 비면 헬스장으로 달려가 운동복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채 폐장시간까지 스텝밀에 올랐다. 나는 그때 내가 단지 운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강박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헬스장에서 꽤 유명한 회원이다. 그러니까 극단적인 식단으로 굶어서 살을 빼 온 케이스. 점심은 그릭요거트, 저녁은 물에 탄 쉐이크 한 잔으로 육 개월을 버텼다. 여름 동안엔 날씬해지고 싶다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한 달 동안 매일 쉐이크만 두 잔 마신 적도 있다. 처음 PT 상담을 받았을 때 나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꽤 많은 양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고, 여전히 내 스스로가 뚱뚱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얼마 동안은 밥을 잘 먹지 못했다. 식사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얼마 동안 나를 아는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에 놀라거나 심지어 걱정을 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대식가였는데 함께 밥을 먹으면 젓가락을 깨작거리며 쌀알 단위로 섭취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씹기만 하고 뱉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나서도 죄책감이 들어 다이어트약과 효소를 적정량보다 초과해서 복용하기도 했다. 달리기에 미쳐 있을 때에는 그런 상태로 다섯 시간을 뛰기도 했다. 건강하지 못했다. 자주 어지럼증을 느꼈고,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소화를 해내지 못했다. 덕분에 올해 나는 앞자리만 두 번 바뀌어 본 경험이 있다.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러나 열심히 한다고 해서 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표면적으로는 희귀질환을 투병 중인 환우의 시선에서 바라본 어른의 세계,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밀도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처음으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어떤 시작을 하고, 어떻게 결말을 맺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설사 타인의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선험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실패는 늘 예견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인생에서 대부분의 가치는 우리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같은 상황으로 게임말을 올려 둔 채 한 번 더 실수할 기회, 혹은 실패했던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 애들, 앞으로도 그러고 살겠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수치를 느끼고, 그러면서 또 이것저것을 해보고.”

  “아마 그렇겠지?”

  “저도요.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p.306)     


  열일곱에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결혼을 하게 된 대수와 미라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청소년들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운동을 시작했다는 대수와 생각 없는 남자들을 극혐하면서도 그런 대수의 솔직한 목소리를 이해하며 그를 사랑하게 된 미라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무렵에 제 뱃속에서 꼬물거리기 시작한 ‘아름’을 만나게 된다. ‘어른이 되는 시간이란 게 결국 실망에 익숙해지는 과정(p.460)’을 말하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이들은 함부로 알 수 없음으로 가득 찬 어른의 세계에 불시착해 버린 것이다. 꿈도, 미래도 심지어는 자신 스스로도 들여다보지 않은 그 시점에 말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하나도 안 늙은 것 같아. 심지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아직도 자라고 있는 거 같다고 하는걸.” (p.372)     


  아름은 보통의 성장 속도와 다르게 신체적으로 빠른 노화를 겪게 되는 질환인 ‘조로증’을 앓고 있다. 어린 부모와 함께 성장하는 그는 외적인 모습으로는 부모보다 더 빠르게 노인이 된다. 학교에 가지 않은 대신 생겨난 친구 역시 옆집의 노인이다. 그는 말한다. 나이는 몸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고. 소설을 함께 읽다 보면 아름은 대수-미라 부부에게 단순히 자식이기만 한 것이 아닌 어른으로서의 인생, 즉 동반자 역할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름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들 부부는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어간다. 조부모의 역할은 배제되고, 세상엔 미성년자인 두 사람만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집과 재물, 그리고 자식을 지켜내어야 한다. 이들 부부를 보고 있으면 보통의 가족이란, 평범한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열일곱이 아닌 서른넷에 결혼을 하더라도 같은 시련을 직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독자의 눈이자, 아름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는 어쩌면 ‘세상을 정면으로 돌파함으로써 비로소 인생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창’인지도 모르겠다.      


  이해라는 말, 예전에는 나도 참 싫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네주는 따뜻한 악수가 먹먹했다.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또 번번이 저항하면서,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이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리게 된 걸까? 그리고 왜 그토록 자기가 느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는 걸까? 공짜가 없는 이 세상에, 가끔은 교환이 아니라 손해를 바라고, 그러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또 왜 존재하는 걸까.(p.325)           


  우리는 태어나 지금껏 세상의 가장 중심이 된 채로 살아왔다. 공부도, 운동도, 세상에 대한 모든 선택은 ‘나’를 위해 존재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순간이 반드시 오는 것 같다. 나보다 가족을 더 생각하는 마음, 나보다 친구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혹은 나보다 애인을 더 생각하게 되는 그 마음 말이다. 이 시점에 도달하면 무엇인가를 더 생각하는 마음이란 수학이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과감히 거스르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손해를 바라게 된다. ‘희생’이라는 단어로도 설명될 수 있던가. 대수와 미라는 17년 동안 세상의 중심에서 스스로를 위해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남은 17년은 ‘아름’을 만나 스스로를 잠시 궤도의 끝에 세워둔 채 타인과의 관계에서 충분히 실수하고, 실패하며 성장하는 시간을 보낸다. 즉, 이 작품은 주어진 환경이자 사회통념적으로 박혀 있던 프레임에 관계없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행착오를 극복해내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독하다는 말을 들을 때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성장했다. 잘 몰랐던 것 같다. ‘독하다’는 성격을 어떤 친구는 부담스럽게 느끼거나 단점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PT쌤은 내게 먹어야 살이 빠진다고 했다.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먹는데 어떻게 살이 빠지나요? 쌤이 그저 내 식단을 걱정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먹어야 유지라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참여했던 회식으로 수육을 제법 여러 점 집어 먹었던 어느 날, 정말 쌤 말대로 음식을 먹을수록 살이 빠지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했다. 알고 봤더니 근육으로 태워질 지방들이 많이 쌓여 있는데 이건 탄수화물이든 단백질이든 음식을 먹어 내 몸 안의 장기가 운동을 해줘야 하는 거였던 거다. 그 뒤로 먹는 양을 서서히 늘려갔다. 사람들을 만나면 씩씩하고 건강하게 먹는 즐거움을 누리기 시작했다. 식후엔 달달한 디저트도 먹는다.      


  여전히 나는 살과의 전쟁 중이다. 최근에 선생님은 내게 운동에 목표를 정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목표가 정해지면 더 성실하고 유쾌하게 해내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한 손에 운동 목표가 있다면 다른 한 손엔 맛있음의 추억이 들려 있다. 요즘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보며 함께 즐기는 미식 경험이 즐겁다. 한 그릇 뚝딱 비워낸 만큼 마음 깊이 채워지는 것들. 이것이 겨울 동안 내게 있었던 이야기. 나를 두근거리게 한 것이자 곧 나의 시행착오였던, 기꺼이 반성하고 반가워하며 맞이할 회복의 기록이다.

이전 06화 얼마나 더 기꺼이 몽상을 하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