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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스 Jan 08. 2024

얼마나 더 기꺼이 몽상을 하면

#06 소설이 나에게 남긴 것

고백하자면 내게도 잔뜩 구겨진 성품과 일그러진 표정이 있다. 지금껏 좋은 사람인 척, 마음이 너그러운 척 노력했지만 내게도 내내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어른이 있지. 바로 열일곱에 만났던 담임선생님이다. 살아오는 내내 내 인생이 이토록 지지부진하게 유예된 것은 다 그 여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왜 내게 그때 하필 글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예술 전공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꼬드겨서 서른이 되도록 나를 이렇게 높다란 벽 앞에 세워 놓고 마음의 지옥에 가둬버린 것일까. (심지어 그 선생님은 내게 그 말을 남겨준 다음 날 출산휴가로 학교를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정적인 성격인 줄 아는 데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열정 만수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해 동안 그런 말을 지겹도록 많이 들어왔다. 참, 생각해 보니 어제도 그런 말을 들었지. 대단한 것 같아요. 열심히 사시네요. 부러워요.

 

소설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어쩐지 머나먼 허공을 향해 빽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그리고 엉엉 울고 싶어진다. 바닥을 향해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고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손에 쥔 모든 것들을 내동댕이치고 싶어진다. 그렇게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꺼내어 보지만 괜찮아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어? 나는 늘 꽉 찬 상태로 인생의 한 시절을 흘려보냈다. 소설 속에서 나는 우주 탐험도 해보고, 로봇도 발명해봤으며, 여행도 다녀왔다. 그뿐인가, 외동이 되어보기도 했고 의대를 전공해보기도 했으며, 연애도 했다. 이런 내가 우스워져. 퇴근 후에는 4시간을 꼬박, 주말에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글을 읽고 썼다. 다른 것은 하지 않았다. 나는 줄곧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못한 것이 아니라 이젠 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진실이다. 이것은 결국 나의 선택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내게는 타고난 재능 같은 건 없다는 걸. 지금껏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나는 증명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나를 미치게 했다. 도달하고 싶은데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애초에 입출구가 하나뿐이어서 되돌아가야만 벗어날 수 있는 동굴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김민철 작가의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은 결국 ‘생존’에 대한 그녀만의 철칙이 담겨 있다. 스스로 카피라이팅에 재능이 없다고 여기고 있지만, 작가는 무려 19년 동안 한 회사를 꾸준하게 다니고 있다. 심지어 내게는 꿈만 같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수행하기까지 한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다른 많은 성공담이나 에세이에서 바라보는 재능과 인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보단 현실에 안주하는 법을, 평안하게 도달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요즘 내가 골몰해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작가는 재능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현재 손에 쥐고 있는, 운이 좋든 나쁘든 타고난 재료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방법을 찾아가려 한다. 그녀는 최고 대신 최선을 선택한다. 그리고 마음을 비운 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누구나 도달할 수 없듯 결국 그녀에게 ‘최고’라는 가치를 선물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팀장’이 된 이후로 팀원을 대하는 방법이나 일과 일상을 분리하는 일에 대해서도 인상적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언뜻 나도 모르게 팀원을 사람이 아닌 기계로 볼 때가 있다. (이것은 성향 차이일 수도 있겠다) 팀원은 점점 스스로의 골이 깊어지며 지쳐가는데 나와 팀원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질러 버리면 공들여 쌓아놓은 탑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나와 함께 나아가는 사람들과 발자국의 폭을 맞출 것. 마찬가지로 일과 나를 분리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의 ‘자아’를 어딘가에 잃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회사 인간으로서의 자아와 작가로서의 자아, 그리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아에 균형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무엇에도 치우치지 않기.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들은 누구나 너무도 사람이어서 시선을 분산하기보단 집중하는 것에 오래 골몰하고 몰입해버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은 올해 내게 좋은 소식이 있다. 오늘도 하루종일 마음이 두근거렸다. 네이버에 내 이름을 몇 번이고 검색해보았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커리어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미치게 만들었던 일. 2024년에 나는 내 작품을 세상에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목구멍에 온갖 감정들이 턱턱 걸린 채 삼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할 때마다 책이 있느냐고, 어디서 증명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를 단지 허영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보는 것만 같은 시선을 느낄 때마다 쌓아둔 노력이 무색하게만 느껴져 자꾸만 무너지고 공허해졌다. 그래서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로소 소설가가 되었다고. 내가 원했던 일을 결국 해낼 수 있게 되었다고. 묵묵히 해왔던 일이 결국 나의 커리어가 되었다고. 어쩌면 이 클럽에 들어와 좋은 기운을 받은 것 같기도 해. 그래서 모두에게 고맙다. 감사하다.

 

나 역시 작년까지는 최고가 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나의 성향에서 좋지 못하게 작용했다. 명예욕과 인정욕구, 그리고 재물욕과 승부욕이 이리저리 뒤섞인 괴랄한 결과물일 것이다. 여전히 나는 정복욕도 있고, 명예욕도 있고, 재물욕도 크다. 그러나 이제는 최고보다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내 새해 목표는  장편소설 투고하기(독자와 팬이 생기길 원하니까), 근육량 3키로 찌우기(귀여운 선생님께 성취욕을 선물해주고 싶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은 결혼에 가까워지기(신경 쓰지 않으면 아마 후순위로 밀릴 것 같은 데다 오래 고민했지만 어제 결정을 내렸다. 나는 우리 집의 미니미 버전이 갖고 싶다) 오늘의 내 마음이 내일의 마음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세상을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드넓게 바라보고 싶다. 한발 물러서서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싶다. 유예했던 가치들을 보상받고 싶다. 편안해지고 싶다.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꾸려가고 싶다. 그렇게 올해는 나라는 우주를 유영해보려 해. 힘껏 꿈꾸고, 마음껏 누릴 거야. 나는 이제 그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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