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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스 Jan 01. 2024

비로소 이별을 떠나기로  했어

#05 끝에 시작이 있다면

올해 내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승진을 했고 소설이 당선되었으며, 제법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어보기도 했지. 작년까지만 해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클라이밍도 하고 볼링도 하고, 웨이크보드도 탔다. 빵도 만들어보았다. 소금빵과 마카롱, 마들렌과 베이글을 빚었고 10년 만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도 다녀왔다. 애석하게도 이 모든 것은 소설 쓰는 일을 관둬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 끝을 내기가 어려워서 끝맺지 못하고 있었던 그것을, 비로소 글을 쓰지 않겠다고, 글과의 오랜 인연에 종지부를 찍고 나니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일들은 마음을 비워야 새롭게 채워지는 모양이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도 결국엔 비워야 채워지듯이.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작별을 경험한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친구가 한순간에 돌아서는가 하면, 진심을 다해 꿈꾸고 노력했던 일은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간 앞에 가족이란 존재는 속수무책으로 낡아간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나누어주었던 애인과는 사소한 한 가지를 극복하지 못해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누구나 이별 앞에 실패를 겪는다. 실패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모든 시작엔 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끝이 두려워 쉽사리 시작을 하지 않는 편이다. 상처받지 않을 자유가 내게도 있다.     


이별은 작별과 다르다. 작별이란 상대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당하는, 즉 필연적인 것이라면 이별은 조금 더 능동적이고 주체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별이 이별보다 먼저 찾아오며, 어떤 이별은 영영 완성하지 못한다. 이것은 결국 오랜 기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을 끝내 포기하겠다는 인정의 결과물. 스스로에게 닥친 필연 앞에 버티지 않고 항복하겠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연성인 것이다.     


  우리가 이별에 실패하는 이유는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별 끝엔 외로움과 고독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공들여 쌓아두었던 요새가 겨우 무릎 높이의 파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때로는 평생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앞으로 쉽게 떠올리거나 타인과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때로 범죄가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별을 힘겨워하던 시기가 있었다. 내 마음에 사람을 들인 일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충분히 고민하여 이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세상 모든 일이 노력만 빚어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란 결국 각자의 주체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맞춘다 한들 맞춰지지 않았고, 떠난 마음을 서로 붙잡고 싶어도 붙잡아지지 않는다.  

    

  물성이 비워진 자리에 관념만이 남았을 때 나는 오래 절뚝거렸다. 마음을 다독이고, 괜찮아지려고 힘껏 노력했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감정의 파도에 충실하게 휩쓸려 다녔다. 일상이 무너졌고, 눈썹과 눈썹 사이로 자꾸만 졸음이 찾아왔다. 모든 게 귀찮아졌다. 겨우 사람 하나 떠나보내야 하는 것뿐인데, 손으로 더듬어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감정일 뿐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자꾸만 내 마음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했다. 무엇을 채워 넣는 것은 나의 특기이자 오랜 습관, 해결점을 찾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명상’과 관련된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처음부터 명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몇 년 전부터 즐겁게 보고 있던 여행 유튜버 “여행자메이”가 세 번째로 발표한 에세이집이었다. 나는 그 작가가 지닌 사유와 감정이 좋았다. 서툴지만 나아가려는 다부진 욕망을 동경했다. 나와 정서의 깊이나 생각의 폭이 결이 맞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녀 역시 수차례 이별을 겪었고, 그 경험이 묶여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바로 『내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을 틀까?』다. 이 책은 여행 유튜버이자 작가로,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온 그녀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혹은 비난을 받으며 겪었던 솔직한 심경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연도 담겨 있는데 나는 그녀가 활동을 중단한 사이 지독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처음엔 충격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내면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차피 끝을 낼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무엇이든 시작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시도한 여러 활동 중 처음으로 명상을 시도했던 에피소드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녀는 처음엔 선생님의 메시지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선생님은 말한다. 명상을 하는 동안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다면 행복했던 기억도 지워야 한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맥시멀리스트인 작가는 과거의 좋았던 기억으로 현재를 나아갈 수 있는데, 터무니없는 피드백이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래서 도망친다.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쉽지 않게 얻은 기억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내면을 채우고 있던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시 명상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끝내 깨닫는다. 진정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시작엔 끝이 있다. 그러나 끝을 맺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끝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더 나아가지도, 되돌아가지도 못한 채 한참을 서서 헤맬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삶을 헤매는 이유가 인생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너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험한 한계치를 미리 측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람과의 이별에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자꾸만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기억은 좋았던 것과 좋지 못했던 것이 한번에 찾아온다. 어느 것이든 그것은 괴롭다. 그렇지만 ‘이별’을 떠나기 위해서는 과거를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는 당신, 그것을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온다.           





<사랑하는 시대에게>는 2024년에도 계속됩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제 글에 마음을 눌러 주시는 분들 모두 너무 감사해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음주에는 좋은 소식으로 여러분을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 그리고 제 브런치를 들여다봐주시는 모든 분들이 행복한 오늘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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