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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Dec 18. 2023

애인과 초콜릿

#03 비밀이 없는 내가 맛볼 수 있는 것

겨울 동안 초콜릿을 자주 찾았다. 특히 술에 취했을 땐 길을 가다 편의점에 들러 달콤한 간식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이것이 나의 주사다) 주로 브라우니 같은 카카오가 함유된 것들이었는데, 하고 많은 간식 중에 왜 하필 초콜릿이었냐고 묻는다면, 그저 초콜릿 특유의 쫀득한 식감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입안에 퍼지는 단맛의 감각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것 같다.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핫초코는 피로를 풀어주고, 퇴근길에 베어 무는 생초콜릿은 켜켜이 쌓이다 짓눌려버린 감정들을 녹여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단 것이 좋은 이유는 나에게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단것을 먹으면 이상하게 몸 안의 피가 도는 느낌이다. 그건 마치 포도당 주사를 맞는 것과 같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있으나 무어라 물성처럼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단 것은 내게 이유 없이 끌리는 본능적인 욕구 중 하나랄까. 앞에 놓여 있는데 굳이 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랑과 같은 감각이다.


 나는 단 것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그 어떤 욕구보다도 우선된 감각이기도 해서, 반드시 맛보고 싶은 단맛은 우선 입안에 넣고 보는 편이다. 불필요하게 찐 살은 어쨌든 다시 빼면 되는 거니까. 최근엔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일을 두고 초코가 발린 과일 모찌를 먹겠다고 우다다다 무리에서 벗어난 적도 있었다. 친구들과 편의점에 들어가면 신상 초콜릿을 여러 개 사놓고는 나눠 먹기도 한다. 나는 군것질거리가 좋고, 간식이 좋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좋다. 지나치게 단 것이 좋다. 그것을 지겹도록 함께하고 싶다. 나는 이것이 사랑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내게는 그것이 그 어떤 욕구보다도 우선된 감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드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우선 마음을 나누고 보는 편이다. 불확실하게 시작된 관계는 어쨌든 다시 마음을 덜어내면 되니까. 여기서 재밌는 것은 단맛이라는 건 참 허영 같아서, 맛보기 전까지의 기분만 좋다는 것이다. 단맛을 본 후엔 어쩐지 그것이 시시해지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단맛의 얄궂은 면이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떻게 단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 초콜릿과 캐러멜이 앞에 있는데 그걸 참을 수 있단 말이야? 납득할 수 없었다. 인생에서 단맛이란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애쓰지 않아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니. 처음엔 애써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진심으로 단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인공적인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거였다. 원물에서 나오는 단맛이 아닌 향료와 합성첨가물로 뒤범벅된 단맛. 상상이 되는 그 맛. 어쩌면 그들은 입안에 오래 감도는 단맛의 속성을 좋아하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주로 철저하고 깔끔한 사람들이었다. 흔적을 남기고 되돌아보는 것보다 당장에 직면한 과제를 수행하기에 급급한 사람. 감정의 물타기를 하는 것보다 이해타산적인 계산에 더 능한 사람. 최근에 나는 그것에 대해 자주 골몰해 있곤 했다. 아니, 거의 함몰되어 있었다. 단맛을 좋아하는 내가 본능적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입을 맞춘 것처럼 단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내가 사랑할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으려나? 그런 질문을 속으로 하다 보니 나중에는 단 것을 넙죽넙죽 받아먹는 사람에게 일부러 마음을 기울이려 애썼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표현도 많이 하고 다정한 척이라도 해주거든) 그러니까 말 그대로 ‘애를 써야만’ 했다. 내게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고,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었던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가짜 같다고 생각했다. 나를 얼마나 안다고 곧바로 내게 빠져들 수 있지? 내게 예쁘다고, 귀엽다고, 사랑스럽다고. 그런 말을 어떻게 쉽게 해낼 수 있어? 의심했다. 나를 맛보지 않고, 나를 맛본 듯 ‘인공첨가물’ 같은 감각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말이다.  


 초콜릿을 맛보지 않아도 저절로 초콜릿 특유의 달콤하고 쌉싸름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다. 나는 이 책을 초등학교 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의 감각이 매우 생생하다. 초콜릿 공장이 가동되나 공장 안팎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수상한 공장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공장의 주인인 윌리 윙카와 차기 상속자가 될 가난하고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 그 공장을 갖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속물적이고 세태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결국 그 공장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야기. 온통 의문스러운 플롯 속에서 작가는 초콜릿 강에 실수로 빠져든 한 인물처럼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입안으로 생콜릿을 한가득 베어 문 감각을 상상하게 만드는 장면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마을에는 초콜릿의 달콤한 냄새가 온종일 가득하고, 슈퍼의 매대마다 스테디셀러 상품이 나열되어 있다. 신상품이 나올 때면 사람들은 열광하고, 실험적인 맛에 쉽게 빠져든다. 초콜릿은 저렴하면서 쉽게 도파민에 중독될 수 있는 요상한 식품이다.


 그러나 주인공 ‘찰리’는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초콜릿조차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아이다. 다 무너져가는 집엔 부모님, 그리고 네 명의 조부모님과 함께 엉덩이를 맞부딪히며 어떻게든 모여 산다. 모두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이러한 인공적인 단맛을 누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다. 이제 겨우 어린이인 찰리는 이것을 일찍이 깨닫는다. 그래서 무엇도 욕심내지 않는다. 허영을 갖게 해달라 조르지 않는 아이. 애써 꿈을 꾸지 않는 아이. 그런 찰리가 초콜릿을 맛볼 수 있는 날이 1년에 딱 한 번 있다. 바로 찰리 본인의 생일이다. 네 명의 조부모는 자신들의 용돈을 모아 찰리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 찰리는 포장지의 귀퉁이를 조금 벗겨 며칠이고 아껴 먹는다. 그래서 찰리에게 단맛은 소중하다. 꿈을 꾸지 않는 아이들은 사실 꿈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 간절해서 아껴 먹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는 ‘사랑’과 ‘초콜릿’에 대해 생각하다 찰리를 떠올렸다. 그 사람에게 ‘단 맛’이란 어쩌면 무용한 가치가 아닌, 절박하게도 너무나도 희소하고 가장 소중해서 아껴 두는 감각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서야 그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 사람의 인공적인 단맛이 싫다는 말, 이것은 어쩌면 스쳐 지나갈 바람처럼 불어온 사랑의 속삭임에 쉬이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 것이다.


 그러니 내 사랑이 참으로 얄팍해 보였다. 어쩌면 내 사랑은 벌컥 들이키는 맥주처럼 첫맛의 승리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욕이 강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지금 내가 가진 사랑을 모나게 반죽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나는 그래서 좌절했다. 무릎을 깨 먹고, 피를 줄줄 흘리고, 심지어는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다 큰 어른인 내가 찰리보다 미성숙한 사랑을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사랑을 해보기는 한걸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사랑은 맞을까?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결론 내렸다. 사랑 앞에 붙는 모든 말들을 의심하지 않기로. 확실하지 않는 것을 확신하지 않기로. 초콜릿 앞에 침이 고이는 것은 사랑이다. 단맛 앞에 본능적으로 욕구가 이는 것은 사랑이다.


 서로를 향한 실존적인 언어를 나눌 수 없는 아이돌 덕후의 마음도 사랑이다. 책을 읽고 작가를 만난 적이 없으나 텍스트만으로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사랑이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해 기대감을 품는 이들의 꿈도 사랑이다. 올해 내가 사랑에 대해 깨달은 것은 그것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알면 알수록 알 수 없음으로 뒤엉킨 털실 같아서, 모든 것엔 정답이 없다. 우리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읽고 맛본 적 없는 윌리 윙카의 초콜릿이 건네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그러니 초콜릿과 같은 인공적인 맛에 빠져드는 것도 결국 사랑이지. 불확실성의 마음으로 시작해 불가분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도 사랑이지. 이제 나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맛보지 않아도 달콤한 맛을 느꼈다던 인공적인 언어들을 말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내 사랑을 믿기로 했다. 더 이상 흔들리며 사랑을 유예하지 않고, 정체되지 않은 채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어제는 초콜릿을 좋아했고, 내일은 캐러멜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 역시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분별없이 아무에게나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고, 끊임없이 통제하지 않으며 힘껏 방랑하다 보면 꾸준하게 사랑하게 되는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 내게서만 맛볼 수 있는 단맛이 궁금하다면 더이상의 망설임 없이 설레임만 가지고 나에게 오라. 내게는 요술 같이 빚어 놓은 단맛이 있다. 엉뚱하지만 명쾌하게 해결되는 플롯이 바로 여기 있다. 이것이 앞으로 내가 조금씩 벗겨 먹을 마음. 가볍지만 제법 밀도 있게 내세운 새해 목표이자 어리숙하지만 당차게 나아갈 성장의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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