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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스 Apr 15. 2024

조용한 식사

#15 내 몫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움틀 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메뉴로 혼자 먹는 식사를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 그리하여 쳇바퀴 돌듯 일정한 루틴을 지키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면 , 특히나 상대와 친밀감을 나누기 위해서 한국 사회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행사다. 오죽하면 ‘식구’의 산정기준에도 밥을 함께 먹느냐 안 먹느냐로 당락이 결정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나는 오래 보아야 하는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선 제법 긴장하고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소수의 사람과 함께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이 내내 감추고 있던 본래의 성정이 잘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식사 자리에서 상대의 모습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세련된 것을 추구하는 데다, 제법 도도하게 보였지만 그 친구와 나눠 먹었던 한 끼를 통해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간 내 앞에서는 나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척,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듯했으나 그날 한 끼의 식사를 통해 나는 그의 본질이 어쩐지 성미가 급하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피는 눈동자에서, 내 목소리의 고저를 신경 쓰는 듯한 제스처에서. 빠르게 삼키고 여러 번 채워놓아야 했던 반찬그릇에서. 음식을 먹는 속도감이 매우 빠르다고 생각했다. 대화보다는 당장 눈앞에 놓인 요리에 더 집중해 있는 모습에서 아이 같은 면을 발견했다. 스스로는 이성이 더 발달되어 있다고 믿는 듯 보였지만 실은 본능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을 사람이라는 생각도, 예상했던 것보다 충동성이 짙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 친구는 그것을 알았을까. 내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걸. 외향적인 성향을 타고났지만 나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 무척이나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음식을 유독 더 천천히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나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서 밥알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는 것을 그 애가 알까. 그러다 장군감처럼 냠냠거리며 잘 먹는 모습에 내 몫을 더 내어주고 싶어지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알까.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그때 그 친구는 나를 매우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눈빛과 표정, 그리고 올라간 입꼬리의 높이에서 이전과는 달리 긴장감이 확 풀려 있는 것이 엿보였다. 그러나 그 친구가 나를 점점 더 편하게 생각할수록 나는 되려 불편해졌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고, 가까이 있던 그 친구의 기분과 상태를 자주 살피게 되었다. 그래서 되려 나는 체해 있었다. 몸 안에 거대한 생선가시가 박혀 있는 것만 같은 느낌. 집으로 돌아온 내가 그것마저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 다음날 점심까지 소화제를 먹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을 거라는 걸. 그 사람은 영영 모를 것이다.


  최근에 나는 사랑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 마음이 더 쓰이는 쪽에 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길 듣게 되었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있던 생각이었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폐부를 관통하듯 온몸에 저릿한 감각을 느꼈다. 마음이 더 쓰이는 쪽. 그런 건 연민의 감정이 아닐까. 연민과 애정은 구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마음이 쓰인다는 건, 조금 더 관심이 기울어진다는 뜻이고 지극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내 것을 대가 없이 내어주고 싶다는 의미라는 것을,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쓰이는 쪽의 기준 또한 모든 연민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는 건, 어쩌면 그 스스로는 견뎌낼 수 없는 것을 감당하기 시작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역시나 다시 되돌아오게 되는 생각.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마도 그 친구의 기억을, 내밀한 곳을 읽지 못했다면 나는 연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마음이 기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 친구의 정직함을 보지 않았다면,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실은 얼마나 별로인 사람인가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지도 않았겠지.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예민해져 갔는데 그 친구가 언제고 나를 떠나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중 삼중으로 덫을 놓고,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단단히 해가며 모든 탓을 징크스에 가둬버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의 직관은 틀리지 않았고, 한 끼의 조용한 식사를 통해 발견했던 성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저 슬펐다. 슬픈데 슬프지 않은 척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이제 내 기분을 마구마구 표출할 수 없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하다 못해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들을 꺼내어 전시하는 것이 이제 나는 조심스럽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여전할 텐데, 나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을 텐데 목격되는 사실만으로 함부로 나에 대한 이미지가 규정되는 것이 두렵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얼굴이 그림자처럼 검고 연하게 흐려지는 것만 같다. 나를 점점 잃어가는 듯한 기분에 다시금 내 뼈마디를 더듬으며 무릎에 턱을 괸 채 한껏 몸을 웅크리게 된다.


  나를 잃으면서 그 친구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부러 거짓말을 해가며 어느 날의 나는 그 친구에게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봐라, 네가 하라는 대로 했더니 세상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아!”

 

  역시나 맞은편에서 씩씩하게 밥알을 삼키던 그 애는 공룡 갈기 같은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뿌듯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조용한 식사. 사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여전히 대부분 폭력적이고, 그 속에 약간의 사려 깊음과 다정함이 있을 뿐이며 나 역시 그 친구에게 ‘다정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조용히 머금고 있던 마음을 꼭꼭 씹어 삼켜보기로 했다. 아마 그 친구도 나의 식사가 평온하기를 바랄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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