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규, 『스파이크』
‘호감’과 ‘사랑’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나눴던 대화는 제각각이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행동을 보일 수 있을 때, 혹은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그저 나를 아이로 만들어줄 때. 그때 내 대답은 단순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기준 같은 것. 나에게 ‘호감’과 ‘사랑’의 차이를 묻는다면, 그건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의 유무다. ‘호감’만으로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이성적이지 못하고,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다다라서 계획해 두었던 모든 일들을 망치게도 하고, 미래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고장 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잘 일어나지 않는 편이고, 결국 소수의 이야기다. 보랏빛 소를 짜내어 눈앞에 보여주는 일일지도 모르고, 동시대를 함께하는 유일한 팬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1 퍼센트를 공략해서 99 퍼센트의 마음을 얻는 것이 스파이크 전략의 핵심’이라고 했던가.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일 자체가 내 영혼의 1 퍼센트를 공략당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단지 1 퍼센트만 채웠을 뿐인데 99 퍼센트의 효용이 따라오는 이것은 어쩌면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스파이크>를 읽기 전부터 나는 ‘선망’에 대해 생각했다. 사전적 의미로 부러워하여 바라는 일. 누군가를 선망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선 우선 관심을 받아야 하고, 평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것이 아름답든, 괴팍하든 평균값과는 남다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번엔 반격이다. 모두를 향한 것이 아닌 호감을 보이는 소수의 니즈를 침투하여 새침하게 공략한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팬심으로 물건을 구매한 적이 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 발견한 유명 인플루언서의 개인소장품이나 광고 제품이다. 사실 인플루언서를 따라 물건을 구매할 때에는 제품력을 집요하게 따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플루언서가 언급한 이야기들을 맹신하지도 않는다. 내가 그 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그 제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같은 제품을 가지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흡족한 기분이 들고, 매력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막상 물건을 구입하고 나면 제품력이 별로이거나 후회한 적이 여러 번이지만 때로는 주문서를 입력했다는 사실만으로 일체감을 느끼는 것만 같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품을 광고하더라도, 혹은 신뢰 자산이 충분히 쌓인 유명인을 데려다 광고하는 것만으로는 소비를 불러일으키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제품 자체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그것을 꾸준한 소비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도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처음 제품 자체를 고객에게 인지시키는 단계에서는 1%를 공략하는 일엔 소수만이 지닌 니즈를 충족해 주는 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방향성을 조금 더 좁은 폭으로 설정하고, 명확한 ‘키워드’가 떠오를 수 있는 포지션을 갖는 것이다. 애플이 심미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택한 것처럼, 마켓컬리가 새벽 시간, 집 앞 편의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제품을 배달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해당 서비스 또는 제품을 이용할 때 처음엔 내가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자체에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중에 제품력이 좋은 것들은 시작이야 어찌 됐건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받는 일은 늘 양날의 검 같다. 단순한 호감이 아닌 ‘사랑’을 품은 ‘팬’이 생긴다는 건 다수의 평균적인 시선과 조금은 다른, 나의 개성과 매력을 알아봐 주는 또 다른 개성을 지닌 타인을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바라는 ‘평범한 것’에 대해 골몰하게 되는데, 주변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평범하고 평균적인 것은 역시나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99 퍼센트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나의 1 퍼센트를 알아봐 주는 외계인 같은 사랑이 좋지. 아직 나의 사랑은 99 퍼센트의 평범함보다는 1 퍼센트의 매력이 빛을 발할 때 속절없이 끌려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은 늘 변수처럼 찾아오고, 한껏 오만해져 있을 때 반격당하듯 아픈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