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하이라이프』
요즘 나는 자주 말을 참는다. 호기심과 의문을 참고, 감동과 감탄을 참는다. 그러다 보면 자주 목구멍이 켁켁거리곤 하는데 그때의 감각은 마치 르뱅쿠키나 스콘을 한 입에 털어 넣고 입안 가득 부스러지는 식감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앙물고 있는 것만 같다. 혓바닥 아래 고여 있던 침과 아직 촉촉하게 젖지 못한 부스러기가 뒤엉켜 있는 것 같은 느낌.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어떤 맛인지는 인지하고 있는데 그보다 목구멍 안쪽의 답답함에 허기를 채우듯 허겁지겁 씹어 삼키는 듯한 형세. 그런 모양새가 지금의 나다.
김사과 작가의 <하이라이프>를 읽으며 나는 최근의 ‘나’와 나의 주변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 사이에서의 나, 가족 사이에서의 나, 체육관과 도서관에서의 나. 그리고 회사 동료들 사이의 나. 모든 곳에서의 나는 조금씩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으나 결국은 나다. 내가 무엇을 증명하든, 증명하지 않든 나의 인정과 동의에 관계없이 나를 지칭하고 포괄하는 시선은 동일하다. 그러다 보면 내가 사람들로부터 함부로 규정되거나 오해받지 않기 위해 원하는 키워드와 이미지를 갈구하는 것 자체가 허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록작 중 하나인 <두 정원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김은영과 윤은영에 대해서. 각자 ’절약의 화신‘과 ’소비의 화신‘으로 칭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는 은영과, 손에 쥔 것들을 아끼고 아끼며 살아가는 은영은 가치관과 소비 행태,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열렬히 주장하고 있지만 작가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이들의 갈등을 꼬집고 있다. 은영이 은영의 사치를 비난하든, 은영이 은영의 구질구질한 생활에 질려하든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는 것. 스스로를 그곳에 산다는 걸, 소속감을 느끼는 그 자체로 사회는 그들을 ’은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정된 틀 위에 규정된 틀.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끊어낼 수 없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정형의 세계를 그와 평행하는 또 다른 정형으로 날카롭게 파고든다.
요즘 나는 표출하는 것보단 침묵하고, 대항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으로부터 ’허영‘을 기대하거나 함부로 그들의 모양새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다 보면 오래 전의 나-재미없는 사람-가 되어가는 것 같아 조금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 대신에 얻은 것은 마음의 여유. 말의 무게를 체감하며 존재감을 옅게 풀어가면서 나는 몇 가지 특징으로 파악되는 단순한 사람이 아닌 오히려 규정되기 어려워 깊어지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단편적인 면만으로 다수에 의해 함부로 규정되더라도 그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이 세계의 구조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어와 속성에 대해 생각한다. 이것은 어쩌면 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세태 그 자체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