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진 걸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는데? (하)
가족에게는 우혁이의 비밀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우혁이는 그저 평범하게 자라 지금은 인천에서 일을 하는 애.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인 것이다. 우혁이네 부모님은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국적은 한국인. 그게 전부다. 그리고 이것은 그다지 틀린 사실도 아니다.
엄마는 처음 내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몇 번이고 내게 되물었다. 뭐? 시대야, 네가 결혼을 한다고? 물론 그럴만도 했다. 나는 독립을 한 이후에 가족에게 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사교성이 좋지 않아서일까, 우혁이를 만나는 동안 나는 우혁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그저 누군가 내게 남자친구가 있냐, 물으면 고개를 끄덕하고 마는 것이다.
"네가... 결혼을 어떻게 할 건데?"
그게 엄마가 내게 한 첫 질문이었다. 엄마의 물음에 부엌참에서 찬물을 담은 물잔을 손에 쥔채 그러게, 하고 답했다. 엄마와는 특별히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저 여느 다른 가족들과 같은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실은, 나 살기도 바빠 이렇다할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서먹해진 채로 시간이 흘렀고, 나중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명절에도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본체만체 할 수 있는 사이. 가족도, 나도 서로의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냥... 내가 그 애 집에 들어가 살기로 했어."
"왜?"
"그냥, 타이밍이 그렇게 됐어."
"네 직장은 어쩌고?"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
"왜?"
"망했거든."
"그러면 네가 너무 기우는 거 아니니."
"어쩔 수 없잖아."
내 말에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집은 동쪽으로 창이 나 있어, 해가 잘 들지 않는다. 해가 가장 많이 드는 때는 오후 무렵으로, 해가 서쪽으로 지는 내 방이다. 태어날 때부터 살았던 집은 층수가 낮고 넓지 않았지만 내 방 만큼은 해가 질 때마다 햇빛이 꽉 차게 들어와 눈이 부셨다. 애니메이션을 보듯 환한 빛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꺼지기를 반복. 그러다 확하고 해가 저물어버리는 것이다.
"너 그 애 좋아해? 믿을 수 있는 애니?"
엄마가 내게 물었다. 엄마의 질문은 마치 내 방의 풍경 같다. 해가 확 들어오듯 따뜻해지다, 순식간에 해가 저물어 추워지는 외풍이 안 되는 그런 방 말이다. 나는 엄마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좋아하느냐는 물음도, 믿을 수 있겠냐는 물음도 다 가짜 같았다.
결혼을 앞두고 생각에 생각을 물고 있다보면 내가 생각하고 믿었던 모든 관념이 다 거짓말 같을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이 지금 내가 판단하는 이것이 맞을까? 우혁이를 믿어도 될까? 우혁이는 어쩌면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어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우혁이를 너무 짧게 본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 그런 것들이 동반되는 것이다. 그런 날에는 내가 완전히 뒤집어진다. 어떤 날은 내가 틀린 사람인 것만 같다. 나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괴로워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른의 선택을 해도 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척이나 싫어진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에 조심스러워진다.
우혁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 본 우혁이는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 우혁이는 나를 얼마만큼 믿고 있는 걸까? 우혁이는 나를 좋아한다고 믿고 있긴 한 걸까? 우혁이는 이 결혼에 대해 얼마만큼의 불안을 안고 있고, 얼마만큼의 진심을 담아둔 걸까.
인천 근처의 회사를 알아봤다. 인천 주변에는 아쿠아리움이 없어 내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 업종을 바꾸는 방법이 있거나 서울에서 다시 회사를 구한다면 통근거리가 멀어진다. 회사를 구한 뒤에 집을 옮겨야할텐데, 회사는 곧 구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집을 새로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보다 내 업종으로 갈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예 없는 편이라 봐도 되었다. 걱정이 됐다. 결혼이고 뭐고를 이야기하기 전에 내 미래가 하나도 보장이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불안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부모님을 데리고 상견례장에 나갔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회를 즐겨 먹고, 기념일마다 횟집에 갔는데, 우혁이네 부모님이 들으면 기함할 내용이었다.
그래서 호텔에 딸린 양식집을 골랐다. 우혁과 기념일에 찾았던 식당이기도 했다. 나는 나의 가족에게 우혁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편이 옳을지 옳지 않을지 내내 고민했다. 내가 몇 년만 어렸어도 이 모든 사실을 가족에게 알렸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조심스러운 것이다. 나는 나의 가족에게 그저 잘 지내고 있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상견례 당일, 나는 우혁의 가족이 어떻게 생겼을지 몹시나 궁금했다. 그들도 모두 인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어 가족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 자신들의 비밀을 유지해올 수 있었을까. 인어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걱정과 설레임,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었다.
우혁이네 가족은 우리보다 먼저 레스토랑에 와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슴이 무척이나 두근거렸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상견례는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부모끼리, 형제끼리, 그리고 당사자들끼리의 무언의 기싸움.
직원의 안내에 따라 걸어가는 길. 괜히 흘러나오는 편안한 음악이 살갗을 에는 듯 따갑게 들렸다.
"엄마, 나 괜찮아?"
문 앞에 서서 나는 괜히 엄마의 어깨를 툭 치며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우혁이네 부모님은 전세계를 여행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마 다른 어른들보다 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우혁의 자랑이었다. 우혁의 말을 들으며 문득 들었던 생각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이라는 표현이 어느 점에서 자랑거리가 되는 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자유롭다, 그것은 나를 한국사회에서 며느리로서 통제하지 않을 거라는 위로인건가? 아니면 내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집의 위치로 마음이 불편했으므로 나는 우혁이 내게 건네는 모든 말들에 괜히 신경이 거슬려 있는 상태였다.
드르륵 문이 열렸을 때, 방 안에는 멀쩡한 인간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우혁의 부모님은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이상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 채는 것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턱부터 귀까지 아가미가 난 자국 같은 것을 먼저 볼 줄 아는 거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위치에 크기나 길이는 달랐지만 아가미가 흉터처럼 나 있었다. 다만, 우혁이네 어머니는 긴 생머리를 늘어뜨려 그것을 가리고 있었고, 우혁이네 아버지는 옷깃을 올리고, 구렛나룻이 긴 편이었다. 우혁이는 피부가 새까매(나중에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래서 태닝을 정기적으로 받는다는 걸 알게되었다) 눈에 크게 띄지 않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우혁 어머님, 아니 사돈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음. 편하신대로요. 이렇게 뵈어서 반갑습니다. 저희가 인연이 되려고 했나 봐요."
시작은 두 어머니들의 하하호호 대화로 이어졌고, 두 아버지들은 과묵하게 물만 들이켰다. 나와 우혁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긴장해 있었다. 그나마 이 상황에서 조금 더 활발하게 웃음을 짓는 쪽은 우혁이었다. 아무래도 영업 일을 해서 그런지 사회적인 넉살이 좋은 편인 것 같았다. 예전엔 상견례라고 하면 대단히 엄청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실은 상견례는 별 건 없고 그저 부모님이 서로의 성향을 조금씩 알아가는 일 같았다. 상견례나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 아마 부모님들끼리는 만날 일이 없을 테니까.
대체로 우혁이네 가족이 조금 더 말 수가 많은 편이었고, 나는 그 날의 시간 동안 우혁이네 부모님이 해왔던 일,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요즘의 일상이나 관심사 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혁이네 부모님은 현재 일본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해조류로 만든 덮밥이라고 하는데, 매일 아침 직접 바다로 나가 해조류를 채집해 온다고 한다. 김이나 미역 같은 것들 말이다. 조개나 물고기 같은 해산물은 취급하지 않는다. 짭조름한 원재료 본연의 맛에 각 지방에서 난 채소를 곁들여 간장과 함께 먹는 맛이라고. 엄청 크거나 유명한 가게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비주얼과 흔치 않은 메뉴 덕분에 관광객들의 인기를 받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나 한국인들의 입맛에 잘 맛대나 뭐래나. 이야기를 나누다 우혁이네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가 한국 주말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상견례가 마칠 때쯤에 두 사람은 다음주에 방영될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과연 누구의 딸이 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조금 달랐다. 신혼집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쪽은 우리 엄마였다.
"인천에서 시작을 한다고 들었어요. 그러면 우리 시대는요."
"시대도 동의했습니다, 어머님."
우혁이 내쪽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말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시대는 회사를 어떻게 다니라고?"
"시대, 다음달부터 회사 안 나갑니다. 그래서 구해질 때까지만..."
"그래도, 시대 성격에 인천 근처로 회사를 알아보러 다니겠지. 시대 직업이 흔한 것도 아니고. 서울은 아니어도 그 중간지점 쯤에 다시 구하는 게 어떤가."
엄마가 손을 들고는 테이블 위를 집게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음식의 김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자 우혁이네 어머니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천천히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은데, 시대씨 생각은 어때요?"
"저는......"
"시대씨가 너무 고단하지만 않으면 나는 나쁘진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부부라는 게,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우혁이에게 들었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시대씨가..."
"시대가 왜요? 시대가 왜 양보를 해야 합니까."
"그러니까, 우리 종족이."
우혁이네 어머니는 말을 하다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우혁이네 어머니가 내게 하려던 말을 안다. 우혁이가 인어라는 사실. 그래서 언제나 인어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지금 우혁이가 사는 집은 한국에서 가장 큰 인어병원이 있는 곳이라는 그 사실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사돈, 시대씨가 우리 우혁이에게 양보하는 만큼, 우혁이도 시대에게 양보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우혁 어머님, 내가 우리 시대, 지키고 싶어서요. 여기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시대 걱정이 많이 됐어요. 집도 남자쪽으로 해. 회사도 남자만 다녀. 그 다음의 결과가 어떨지, 우리 시대에 대입해 보면 너무 훤히 눈에 보이는데, 딸 가진 부모로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이해하시죠?“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내가 본 적 없는 눈물을 주륵하고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물이 진짜인지 아니면 지금의 기싸움에서 이겨보겠다는 심산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우혁이가 내게 양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안다. 우혁이는 바다 근처에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처럼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생을 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우혁이가 내게 양보한 것은 타고난 성질인 것이다.
"엄마, 울지 말고... 내가 우혁이랑 알아서 할게."
"네가 하긴 뭘 알아서 해. 너 혼자서 네가 뭘 안다고."
"나하고 우혁이 일이야."
"너하고 우혁이가 잘해서 지금 바닷가에 간다고 이러니? 너 그게 얼마나 고생인 줄은 알아? 너 평생 외롭게 거기 살게 될 수도 있어. 친구도 없이."
"엄마!"
나도 모르게 슬며시 짜증을 냈다. 우혁이가 어쩔줄을 모르겠는 표정으로 나와 엄마를 번갈아보았다. 아빠 역시 들고 있던 술잔을 스윽 내려놓으며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저기... 일단 오늘은 조..좋은 날이니까 우리 그 이야기는 찬찬히 하고, 두 사람 결혼을 축하해 주는 건 어떨까요?"
"당신 지금 나는 악역이고, 좋은 사람 되겠다고 이러는 거야? 이건 현실이야!"
엄마는 그날 사돈 앞에서 아빠의 등짝을 짝하고 때렸다. 아무튼 이 상견례는 망했다.
아쿠아리움에 출근을 하자마자 한숨을 푹 쉬었다. 전날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점점 굳어가던 우혁이네 어머니의 표정. 그리고 떨떠름한 얼굴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우혁이네 아버지.
”아우쒸! 되는 일이 없네!“
머리를 쥐어 뜯으며 수족관 바닥을 닦았다. 그러자 우혁이네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내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아,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나는 산소통을 맨 채로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할아버지. 내 행동에 유리벽 바깥에 있던 관람객이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잠깐,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도 그렇고, 물고기들도 그렇고 내 목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는 얘기인가? 반인반수들만 알고 있는 건가? 나는 물고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물고기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순간 고개를 들고 우혁이네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우혁이네 할아버지는 작은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내 주변을 헤엄쳤다.
”할아버지, 다쳐요, 절루 가.“
내 말에 할아버지가 또 몇 바퀴 휘휘 돌더니 멀어졌다. 일렁이는 거품 사이로 할아버지의 비늘이 반짝였다. 뭐야, 정말 알아듣는다고? 생각해 보면 우혁이를 처음 만나게 된 것도 다 저 할아버지 때문이다. 우혁이네 할아버지가 내 전담 수족관만 아니었어도 우혁이를 만날일은 없었다는 거다. 나는 물밑으로 고개를 숙인 채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평소 일을 하며 혼잣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앞으로는 수족관에서 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님!"
그때 연지씨가 내 어깨를 툭하고 쳤다. 연지씨의 머리가 푸석했다. 오전에 일을 하고 머리를 감은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어.. 연지씨."
"수족관에 뭐 떨어뜨리셨어요?"
"어.. 아니에요. 그냥, 생각 좀 하느라고."
"아니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세요."
"내 남자친구랑 그 남자친구 할아버지 생각."
"엥? 남자친구가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어요?"
"그랬던 시기가 있었지. 할아버지를 생각하다 내 혈압이 잠깐 오를 뻔."
"엥? 왜요? 할아버지가 시집살이 시키려고 해요?"
"할아버지 때문에 남자친구를 만난 거 같아서."
"아, 대리님도 할아버지 알아요?"
"응. 지금 내 발밑에 있거든."
내 말에 연지씨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오늘 점심 약속 있으시구나. 연지씨는 바로 아래층의 건물에서 할아버지를 만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상견례 이후로 우혁과 사이가 조금 서먹해졌다. 딱히 싸운 건 아닌데 서로 당황을 좀 하긴 했다. 우혁도, 나도. 서로의 낯선 면들을 처음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이 우리에겐 서로의 가족이었던 모양이다. 평소 우혁에게 짜증을 잘 내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사소한 다툼 같은 것, 감정이 조금 상한 상태.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우혁과 함께하는 내일에 불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우혁과 데이트를 하는 동안 주로 서울에 온 쪽은 우혁이었다. 내가 인천으로 간 적은 많지 않았다. 데이트 장소로 갈만한 곳은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으니까. 홍대고 강남이고 올라오는 쪽은 우혁이었고, 나는 우혁의 집인 인천에 가기까지 우혁이 이렇게나 먼 곳에서 오는 줄은 몇 계절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천에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인천에서는 시내를 벗어나면 볼거리가 하나도 없다. 낡은 간판, 오래된 버스. 정차시간은 짧고, 배차시간은 길기만 하다. 영화관을 가더라도, 서점을 갈 때에도 인천보다는 서울이 더 크고,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맛집만 가더라도. 추억을 쌓더라도 서울에 가야 한다. 우혁을 처음 만난 곳도 서울, 연애를 하려면 서울로 가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혁을 따라 인천을 다녀온 날, 나는 서울에서 인천을 오가는 그 길에 멍하니 지하철 창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열차를 타고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과 역 사이를 지나치는 것을 바라보는 것뿐. 내가 지하철 좌석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는 동안 사람들이 열차에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어떤 역에서는 사람들이 꽉 찼고, 어떤 역에서는 사람들이 한 명도 타지 않았다. 열차는 계속해서 덜컹거렸다. 내 마음도 덜컹 조금씩 흔들렸다.
지금껏 서울에 살아오면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만 만난 것은 아니다. 나는 일산이나 수원, 안산에 사는 친구들도 만나왔다. 대학 동기들이 그랬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홍대나 강남에서 만나곤 했는데 서울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어디든지, 언제든지 편하게 나올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나와 준비하는 시간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걸,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된 것이다. 그걸 우혁과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제야, 알게된 것이다. 우혁은 지난 1년 동안 나와 만난 후에 어떤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을까? 인어로 태어난 우혁이 바다를 벗어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자신이 타고난 곳을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마음. 어떻게 해도 본래의 체계를 벗어날 수 없는 환경. 우혁도 우혁이 원해서 인천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어 병원이 인천 근처에 있기 때문에, 혹은 학교나 회사가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테다. 그래놓고 세상은 대체로 많은 것들을 서울과 관통해 놓는다. 한번에 바뀔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물론 인천에도 인프라는 잘 구축되어 있다. 원하면 마트도 갈 수 있고, 영화관도 갈 수 있고, 올리브영도 있고, 쇼핑센터도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서울에 있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면 결국엔 다시 서울로 와야 한다.
우혁은 자신의 집으로 배달된 청첩장을 내게 몇 컷의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그때 나는 청첩장을 고르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우혁이 내게 인천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던 그날.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속상함에 눈물을 찔끔 흘렸던 날.
우리는 결혼식을 조촐하게 올리기로 했다. 청첩장을 찍는 것은 다분히 형식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식은 올리지 않고, 우리끼리 조용히 사진 정도만 찍어두기로 한 것이다. 청첩장은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이벤트성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나는 우혁이 보낸 메신저를 내려다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무언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때 처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주사를 맞은 팔 한쪽이 욱신거렸다. 나는 그 팔을 매만지다 깊이 한숨을 쉬었다.
이 결혼, 해도 괜찮을까? 우혁의 입장에서는 틈을 내어주는 일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인생 전부를 거는 일은 아닐까?
사직서를 쓰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쉽게 끝이 났다. ’권고사직‘. 사직서에 쓰여 있던 여러 개의 항목 중에 그 항목에 체크하는 건 내 스스로가 얼마나 무력한 사람인지를 여러 번 확인 받는 과정 같았다.
회의실이랄 것도 없이 탈의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 위로 사직서에 서명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은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웃는지 아닌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팀장이 입고 있던 유니폼 끄트머리가 헤져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입은 옷의 소매를 따라 매만졌다.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매일 같이 돌려 입었던 유니폼. 이제 이것과도 작별할 시간이 온 것이다.
"시대씨."
자리에서 일어나 장비를 손에 들고 복도로 나가려는데 팀장이 나를 불러세웠다. 고개를 돌려 팀장을 바라보다 팀장이 의자에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은 채 입가를 정리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 회사는 정했어?"
팀장의 뒤로 카키색 캐비닛이 삐걱이며 흔들렸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고, 습기가 차 곰팡이가 피어 있던 탈의실은 직원들의 휴게실이기도 했다. 원하면 쉬는 시간 동안 언제든 아쿠아리움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직원들 대부분은 멀리 나가는 것을 귀찮아하며 건물 안에 남았다. 지난 시간 동안 집에 있을 때보다 아쿠아리움 안에 더 오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내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더 이상 직원이 아닌 손님으로만 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해졌다. 꼭 흔들리는 산호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요, 아직."
"실업급여.. 받을 수 있을 거야. 알아봐."
그때 연지씨가 복도 건너편에서 걸어왔다. 연지씨는 나와 팀장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조금 신경질적인 어투로 손에 들고 있던 장비를 내려놓았다. 쾅소리에 팀장이 한쪽 팔을 구부린 채 괜히 쓰다듬었다. 팀장은 요새 잠을 못 자 팔이 아프다는 둥 궁시렁거리며 탈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둔 사탕 한 알을 꺼내 연지씨에게 내밀었다. 컴컴한 공간에 오래 머물다 보면 가끔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습관적으로 한 알씩 까먹는 사탕이었다. 연지씨는 내게는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하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받았다.
"연지씨."
"네, 시대 대리님."
"퇴사하면 뭐할 거예요?"
연지씨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턱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무언가를 크게 그리는 듯 눈알을 비잉 굴렸다.
"대만에 가려고요. 좋아하는 여행지라서요."
"오, 대만! 연지씨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특히나 따뜻한 계절에 잘 어울리는 나라지. 인스타 보니까 여행 많이 다니는 것 같던데."
"그리고... 이번엔 좀 오래 쉴려고요."
"쉬어요?"
"네, 지긋지긋해요. 이렇게 일하고, 떠나고, 또 일하고, 떠나고."
"쉬면 안 돼. 연지씨는 나랑 달라요. 나는 그래도 경력이라도 있지. 연지씨는 바로 다음 회사 가야 해요."
"알아요. 아는데, 대리님. 나도 지쳐요. 지난 직장에선 선배가 저를 정말 못되게 괴롭혔어요. 새벽이 지나도록 퇴근도 안 시키고, 집에 가서도 일했어요. 난 잘 했는데, 자꾸만 사람 같은 일 반복하게 훈련하듯. 그런데 이번 직장은 좀 적응을만 한 하니까 망했어. 근데 나는 아무도 탓할 수 없어요. 나 진짜 죽도록 열심히 일했는데"
"......연지씨."
"사람들은요. 이런 내게 나태하다고 말해요. 겉보기에 단 한 줄로 설명되는 나는 그냥 ’김연지. 스물여덟의 김연지. 그뿐이거든요. 서울에서 나는 데이터로만 판단돼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정답이라고 부르는 그 값을, 나는 바꿀 수 없어요. 그건 사회적인 약속 같은 거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멈추면 안 돼."
"대리님, 전에 팀장님이 내 인스타그램 몰래 보고 뒷담하는 거 들었죠? 나도 알고 있어요. 근데요. 내가 SNS를 하는 이유는요.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데이터로만 설명되지 않는 무수한 시간들이 있다는 거, 그걸 인정 받고 싶은 거거든요. 이렇게 티내지 않으면 내가 너무 무력한 사람 같으니까."
연지씨가 손에 들고 있던 사탕을 열어 한 입 까먹었다. 연지씨는 나와 사탕을 먹는 방법이 다르다. 내가 사탕을 입 안에 넣고 동글동글 굴려 먹는 편이라면, 연지씨는 와그작와그작 소리가 날 때까지 부숴 먹는다. 이런 성격은 일을 할 때에도 차이가 있고, 퇴사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연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연지씨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곤 고작 쉬지 말고 더 앞으로 나아가라니. 어쩌면 연지씨는 정말로 휴식이 필요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나는 연지씨에게 마감은 내가 할 테니 먼저 들어가라고 조용히 말했다. 연지씨는 그럴 필요 없다며 몇 가지 장비를 내려놓고, 또 몇 가지 장비를 다시 챙겨 나갔다.
연지씨에게 다음 회사에 대해 물었지만 실은 정말 다음 회사를 정하지 못한 쪽은 나였다. 우혁과 그러고 난 뒤, 나는 내 업종이 아닌 다른 업종의 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혁이 인천에 살고 있는데, 굳이 내가 위치를 바꿔 다른 곳에 회사를 얻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지씨 말도 맞다. 우리는 이 수족관의 물고기들보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헤엄쳐가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회사를 옮기고, 또 옮기고, 또 옮길 수 있는데 내가 굳이 고집을 부려 서울에 회사를 얻게 된다면 집을 정하는 위치가 애매해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진짜 생존을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니라, 내게 허락된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어진 것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 나의 입장이자, 나의 주제라는 것을 그날 깨달았던 것 같다.
생각이 거기까지 갔을 때 더 이상 무엇을 고민하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우혁을 찾았다. 신혼집은 코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