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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시대에게 - 8

왜 하필 나였어? (하)

by 곽민주

저녁을 나가서 먹을까 하다 우혁이 곧 다시 바다로 나가봐야 한다고 하길래 그냥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다. 메뉴는 우혁이가 좋아하는 콤비네이션 피자. 특별히 치즈크러스트도 추가했다. 우혁이는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허기가 지는 듯 보였다. 우혁이는 요즘 살이 급격히 더 빠진 것 같았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뭍에 너무 오래만 있으면 수분기가 날아가 그럴 수 있는 거라고. 그래서 왜 인간들 사이에 ‘멸치’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고 우스갯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우혁아, 천천히 먹어."


우혁이 허겁지겁 피자를 먹다 사례에 들린 듯 가슴을 쿵쿵 쳤다. 나는 우혁에게 콜라를 건네며 말했다. 우혁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그런 우혁의 모습을 천천히 응시했다. 우혁이는 아무리 봐도 인간답다. 인어스럽지 않다. 인어를 본 적이 없었으니 인어스러운 것은 무엇이고, 또 인어스럽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또 내가 이런 말들을 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싶지만 우혁이는 그냥 우혁이다. 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우혁이. 초딩처럼 피자를 좋아하는 우혁이. 입가에 기름을 묻히고 지저분하게 먹는 우혁이.


"이렇게 있으니까 무슨 벌써 결혼한 것 같네."


내 말에 우혁이 허허, 웃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피자를 내려놓고는 기름이 묻지 않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시대야. 나 주식 많이 올랐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우혁이는 요즘 다시 주식에 홀랑 빠져 있다. 나는 기뻐하는 우혁이의 입가를 휴지로 스윽 닦아준다. 그러기가 무섭게 우혁이 피자를 들어올림과 동시에 토핑을 흘려 옷 위로 떨어뜨린다. 조심 좀 하지. 내가 슬며시 짜증을 내고 우혁이 내 눈치를 살핀다. 나이키 자수 로고가 박힌 바지에 흘린 토핑을 우혁이 주워 먹는다. 우혁이는 나이키를 좋아하고, 농구를 좋아하고, 조던도 좋아하고, 게임도 좋아하고. 그런 애다. 그런데.


"시대야, 나 늦었다. 나 일어나 봐야할 것 같아. 아마 이틀 정도 안 들어올 거야."


우혁이 황급히 싱크대로 달려가 손을 씻으며 말했다. 그 순간 다시 우혁과 나의 세계가 벌어진다.


"바다에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아, 친척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다들 여기 근처에 살거든."

"친척들? 네가 형님이라 부르는 사람들?"

"응."


우혁이 당연한 질문을 묻느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우혁의 친구도, 우혁의 친척도 만난 적이 없다. 우혁이 어떤 세계를 살아왔는지 나는 궁금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우혁이 물고기로 변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지 않은가. 나는 도대체 뭘 믿고 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한 거지? 생각이 거기까지 갔을 때 나도 의자에 걸려 있던 가디건을 대충 챙겨 입고 우혁에게 말했다.


"나도 가. 나도 봐야겠어."


내 말에 우혁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혁의 등을 톡톡 밀치며 말했다.


"앞장 서. 네가 진짜 인어인지 아닌지, 나 오늘 봐야겠다고. 아니, 진즉에 봤어야 했는데 내가 그간 너무 정신이 없어서. 네 친척인지 뭔지도 좀 봐야겠어."


우혁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다는 듯 식탁에 올려져 있던 차 키를 챙겼다. 그리고 천천히 집 안의 불을 껐다. 안방의 불이 꺼지고, 옷 방의 불이 꺼지고, 거실의 불이 꺼지고, 복도를 비추고 있던 깜빡임 등도 꺼졌다. 남은 것은 집 앞 복도 위로 드리워진 우혁의 그림자 뿐이다. 우혁이 내 한쪽 어깨를 감싸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우혁이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무언가 불안하다는 표시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우혁이 입술을 떼며 망설이듯 느리게 말했다.


"시대야. 지금 여기서부터 함께 걷는 동안 말이야. 너무 놀라지 마. 그리고, 나를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마. 나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여야 하는 네가 나를, 낯설게 느낄까봐 그게 조금 겁이 나."


그때 나는 우혁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혁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도, 내가 네 보호자가 될 거고, 너도 내 보호자가 될텐데. 내가 네가 변신한 모습쯤을 알아야하지 않겠어? 네가 그물에 걸리더라도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봐야지."


내 손을 잡은 우혁의 손이 조금 떨렸다. 우혁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겁이 더 많은 인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세이돈 같은 건장한 인어 따윈 진즉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우혁이 운전한 차를 따라간 곳은 송도에 있는 공원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다 특유의 짭조름한 비린내가 훅 끼쳤다. 기분이 나쁠 정도의 비린내라기 보다는 고층 건물 너머 가까이 바다가 있구나,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정도였다. 우혁은 휴대폰을 꺼내 친척들과 연락을 하더니 다들 도착했다며 내게 옷가지와 카드를 챙겨주었다.


"너 돌아갈 땐 나 없잖아. 택시 타고 가야지. 챙겨. 초여름이어도 바닷가라 바람이 추울 거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문을 열고 내리며 우혁이 주차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반쯤 접어 신은 운동화를 고쳐신었다. 뒷굽에 검지손가락을 넣고 축을 펴는데 잘 안되어서 한참이나 낑낑거렸다. 주차장 근처에 있던 나무 사이로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벌레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다 알지는 못한다. 그저 저기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또다른 것들이 있구나, 생각할 뿐.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우혁이는 슬리퍼 하나만 신은 채 가벼운 차림으로 차에서 내렸다. 우혁이의 걸음을 따라가는데 우리 둘다 걸을 때마다 자박자박 소리가 났다. 나는 운동화가 조금 커서 소리가 났고, 우혁이는 운동화가 아닌 걸 신어서 소리가 난 것이다.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 우혁의 팔짱을 꼈다.


"얼마나 더 가야해?"

"15분 정도. 조금 걷는 것도 괜찮지?"

"그럼. 산책하는 것 같고 오랜만에 좋네."


정말이었다. 우혁과 다투지 않고, 마음 불편하지 않게 한적한 길을 걷는 일. 내가 정말 원했던 건 그런 거였는데 결혼을 준비하며 정작 우혁과 정말 원했던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혁과 이렇게 걸을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려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대단한 무엇을 바라는 게 아니라, 욕심을 부리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이런 일상 속의 안정감과 여유를 갖고 싶으니까. 그게 이런 사소한 산책 같은 것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래서 내게 이 결혼이 필요하고, 정당성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잠깐 우혁에게 기대어 걷는데, 우혁과 내 그림자가 보도블록 위로 겹쳐지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바람이 사각사각 머리칼이 내 살갗을 스쳤다. 그림자로만 보면 사람들은 우리 두 사람이 인어와 인간인지, 인간과 인간인지 애초에 가족인지 아닌지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혁이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니지 않는다면, 내가 인어에 대해 세상에 말하고 다니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일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혁. 결혼 축하해!"


그 순간 멀리서 낯선 음성이 들렸다. 그림자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드니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혁과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둠 사이 가려져 그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히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우혁과 같은 인간이었다. 대부분 상의 탈의를 하고 있거나 간단히 옷을 입고 있었다. 어린 아이로 보이는 애들은 휴대폰을 하고 있기도 했다. 열 명 남짓한 무리들이었다.


"어어어. 그러게 나 진짜 결혼하네."


우혁이 멋쩍게 웃자 무리 중 한 명이 우혁에게 달려와 꿀밤을 놨다. 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수줍게 손을 내밀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건넨 손에는 물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손을 맞잡았다. 축축한 손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우혁이 아버지의 형의 아들 되는 친척입니다. 뭐, 당시에 우린 다 알이라, 알들은, 알들끼리 파묻혀 있었어서. 우리 세계에서는 그런 관계가 그리 중요하지 않기도 하고."


그는 우혁처럼 마찬가지로 통영에서 해양생물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자기 말로는 우혁이보다 성적이 더 좋아서 박사까지 할 수 있었대나 뭐래나. 그 중에는 인어병원에서 근무 중인 의사나 간호사도 있었고, 평범하게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도 있었고, 아이돌 연습생인 조카도 있었고, 그저 평범히 우혁이처럼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도 있었다.


"제수씨가 우리 보고 싶으시다고. 저희 뭐. 평범합니다. 여기는 우리 와이프, 여기는 우리 애들. 우린 다들 인어에요. 우혁이가 능력이 좋네. 이렇게 아리따운 여성분을 아내로 맞이하고."


능청스러움 하나는 우혁이를 닮은 듯도 싶었다. 이 가문의 분위기는 제법 활기차구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그 분위기에 취해드는데 사람들 중 한 명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몸을 트니 머리카락의 물을 쭉 짜며 여자가 서 있었다.


"시대씨라고 했나요? 너무 걱정마요. 나는 외국인이면서 인어인 남편이 있어요. 우린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만났죠. 내가 알기로 내 남편의 여동생은 인간 남자를 만났다고 하더군요. 두 사람은 지금 아주 잘 살고 있어요. 크레타에서 신혼을 시작했죠. 한국도 괜찮을 거예요. 환영할게요. 인어를 알게 되신 걸."


그날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정말 거짓말 같은 세계였다.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고,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바닷물을 술처럼 마시고. 흥겹게 떠드는 모양새. 그러다 정말로 시간이 되었는지 무리 중 한 명이 무어라 손짓했고, 사람들이 일제히 옷을 벗고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일반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을 법한 곳이어서 불을 끄며 검은 암석 사이로 파도만 찰박찰박 치는 모양새로 보일 것 같았다. 우혁이 떠나기 전에 내게 달려왔다.


"너무 혼자 오래 걷지 말고, 무서우면......"

"무서우면?"

"미안. 내가 돌아가는 길에 함께 하질 못하네."

"아냐. 됐어. 내가 자주 나오진 않을 것 같으니까."


우혁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그 말을 뱉기도 전에 내 앞에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물고기로 휘리릭 변하는 것이 아닌가. 바다로 뛰어듬과 동시에 팔이 지느러미가 되고, 다리가 꼬리가 되고, 그는 마치 기다란 뱀장어처럼 몸을 배배 꼬더니 매끄러운 피부가 점액질로 뭉쳐진 비늘가죽이 되는 게 아닌가. 이어 서서히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종에 맞게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놀라지 말라고 했다? 난 생각보다 작은 물고기거든."


그 와중에 우혁이 내 귓가에 그 말을 속삭이는 것을 끝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우혁은 제 손등만 한 백색의 오팔펄이 빛나는 물고기였다.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물고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물고기를 잡아 먹을 줄만 알지, 관상용으로 본 적이 없는데다 세상에 그렇게나 다양한 물고기가, 아니 세계가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우혁이는 내 앞에서 몇 번을 펄떡이더니 점점 더 깊이 가라앉았다. 시끌벅적하던 바다는 금세 고요해졌다. 밤바다는 어디에 파도가 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암석인지, 어디가 물결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저 소리만 들릴 뿐이다. 철썩이는 파도 사이로 나는 내 스스로 나로부터 터져 나오는 비명을 막아야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혼자서 모래사장의 끄트머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모래사장이 끝나는 자리에 흙이 있고, 그 흙 위엔 나무가 자란다. 멀지 않은 곳에 밭도 있고, 상점가도 있다. 그리고 그 길은, 돌아가는 길은 나 혼자 걷는다. 그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결국 돌아가는 길은 내 몫이라는 걸. 우혁과 내가 함께하든, 다른 사람과 함께하든, 다시 돌아가는 길은 결국 나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나는 이 결혼을 준비하며 언제나 두 개 이상의 그림자를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는 나 혼자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혁이든, 누구든 함께 걷는 길. 남들처럼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길이 필요하다고. 실은 혼자 걸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좀 기묘한 감정이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걸 굳이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하려했다는 사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혼자서 지낼 수 있는 삶을, 굳이 결혼까지 해가며 함께하려 하는 걸까? 왜 나는 그 길을 굳이 일을 만들어가며 우혁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사랑한다는 감정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더 절실한 이유가 필요해.


그날 무엇을 보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혁이 정말 비늘을 지닌 인어라는 사실.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거다. 그건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 두렵기도 하고, 이제 우혁이가 살아가는 세게를 더는 부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뒤에 우혁이가 돌아오면 물어봐야지. 네가 사는 세계가 어땠느냐고. 너는 왜 나여야만 하는 거냐고.




그러나 우혁은 이틀이 되어도, 일주일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내 몸의 발진은 점점 더 심해졌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평소와 다른 음식을 먹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결혼을 준비한답시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증상이었다. 피부과에 찾아갔더니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혹시 인어병원에서 맞았던 그 정체불명의 주사가 문제는 아니었을까. 나는 우혁의 뭘 믿고 그 주사를 선뜻 맞으려 했던걸까. 단 1년 밖에 보지 않은 우혁의 세계를 내가 믿어도 될까.


우혁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하고 싶었고, 우혁이 아니더라도 내게는 인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인터넷에는 인어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을 나는 맹목적으로 믿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발진은 점점 심해졌고, 잠을 잘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어렵게 붙은 회사의 서류전형에서 나는 면접일에 갈 수 없었다. 첫째로 그 회사는 인천에서 통근이 불가능했으며, 당시 나는 목까지 발진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인어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인어병원에 가려니 인간인 나를 우혁으로부터 증명받아야 했다. 인어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고, 더 견고히 하기 위해 ‘다수’인 인간을 되려 이방인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에게도, 인어에게도 이방인이 된 채 세계를 떠돌고 있었다. 인어병원의 입구에서 내 증상에 대해 설명했지만 우혁이 없다는 사실 자체로 나는 병원에 출입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게 그 인어의 시스템이었고, 생각해보니 우혁의 세게를 알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생각을 인간의 사고로는 할 수 없는 것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진으로 인어병원에 진료도 받을 수 없게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부과에 가려니 이 증상을 무어라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겁이 났는데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 비로소 현실이 체감이 되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만 같은 느낌. 그 밤거리를 나 혼자 돌아서 집으로 온 느낌.


나는 결국 일반 피부과에서 알러지 검사를 하고,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을 먹고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의사는 내가 실생활에서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게 주사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우혁이의 모든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혁이 없는 우혁의 세계를 들여다볼수록 의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우혁은 무슨 일인지 돌아오지 않고, 나는 인천 근처에 내 전공에 맞지도 않는 구직처를 알아보러 다니고. 우혁의 집으로 공과금이며 각종 처리해야 하는 행정 업무들이 쌓이고, 우혁은 없고. 결혼은 어느 새 열흘도 남지 않음.


나는 우혁이 돌아오지 않는 자리에, 우혁이 물고기일 떄의 모습을 그려넣었다. 그걸 본 이후로 마트에 가면 죽은 생선을 볼 때마다 혹시 우혁이 잡혀온 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선을 보고 나면 속이 울렁거리고, 가끔은 숨이 쉬기 힘들 정도로 구역질이 났다. 토막 나 죽은 우혁이를 상상하기도 했다. 내가 전에 봤던 그 사람들이 다 마트에 진열된 생선들 같았다.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상을 받는 것이. 이게 우혁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일까?


내가 우혁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나로서는 우혁의 세계에 속하지 못함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우혁과의 결혼을 선택하면서 결국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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