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시대에게 (상)
우혁이는 일주일이 지나 발견되었다.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삿포로 근방으로 헤엄쳐 가던 중에 예기치 못하게 상어 무리를 만났다고. 상어들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고, 배가 고프면 보이는대로 주변에 있는 것들을 집어 삼키는 야만어들이라 친척들 중 한 명이 실종되었다고 했다. 우혁이는 한쪽 어깨를 다쳐 있었고, 연락이 온 곳은 제주에 있는 한 병원이었다. 우혁이는 한국에 오자마자 내게 연락을 해왔다.
'걱정할까봐. 우리 이제 부부인데.'
우혁 한 마디에 텅 빈 우혁의 집에서 우혁이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눈물을 왈칵 터트렸다.
'시대야 나는 괜찮아. 나는 무사해. 늘 그렇듯이.'
우혁이 목소리에 안도가 되면서도 제주에 어떻게 가야하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우혁이 인천을 선택했구나. 인어들이 특정 지역에 몰려 사는 것은 이유가 있구나. 이해가 되었다. 인천공항까지 정신없이 달려갔고, 제주공항까지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혁이는 어깨에 붕대를 돌돌 말고 있었다. 우혁의 한쪽 팔에는 끓는 바닷물이 채워져 있었다. 우혁이는 지금 따뜻한 해수가 많이 필요한 상태였다. 인간에게 혈액이 주요 공급원이라면 인어에게는 높은 온도의 해수가 필요하다. 우혁이가 혹여 몸이 아플 때 나는 우혁에게 무엇도 나눠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우혁이는 휴대폰을 열고 웹툰을 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우혁이가 만일 내게 그 사정을 시시콜콜 털어놓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번에도 몰랐을 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지. 우혁이는 말없이 집을 나가 며칠이고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연애 초기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중엔 이유 없이 잠수를 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우혁이는 그때 내게 그렇게 말했다. 부모님이 외국에 사셔서 외국에서 지내다 오는 거라고.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야. 아무런 장비 없이 바닷물을 헤엄쳐 다녔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우혁이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거니까 간섭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우혁이 역시 그동안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테니까. 우혁이는 제 비밀을 숨기기에만 급급했지 내가 숨기고 싶은 비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려 하지 않았으니까. 그 애는 나를 맹목적으로 믿고 있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나는 우혁이 누워있는 병실로 가 우혁의 머리를 감싸안으며 울기 시작했다.
"너.. 이거 다 뭐야..."
우혁이 휴대폰에서 눈을 떼며 나를 보고는 애써 밝게 웃어보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인어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야. 이런 일들은."
"걱정했잖아. 이틀 뒤에 온다 그래놓고 안 오니까."
"이런 일이 정말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혁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러다 뭔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인어로 사는 게 참, 쉽지가 않구나."
내 말에 우혁이 바로 말했다.
"인간으로 사는 것도 쉽지는 않던 걸?"
우혁의 말을 반박할 수 없어서 나는 울다 웃다가, 다시 울었다. 우혁도 미안한 지 이마를 매만지다 주변에 뭐 단 거 마실 거라도 없는지 찾았다. 인어들은 과당이 들어간 음료를 즐겨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인어병원엔 인간들이 관례적으로 사오는 음료수 같은 게 없다. 인어에게 최고의 선물은 플랑크톤이 적절히 배합된 해수다. 우혁이 나를 제 몸쪽으로 끌어오더니 어깨부터 팔까지 천천히 쓸어내렸다. 병실에는 우혁을 비롯해 세 사람 정도가 해가 지는 풍경을 따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어로 살면, 뭐가 제일 힘들어?"
내가 물었다. 우혁이는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렇게 힘든 건 없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아, 하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인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 내가 너하고는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거."
"그런 게 뭐지?"
"나는 인간으로 살아보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인간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잖아. 그런데 언제나 한국에 있다보면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내 뜻대로, 내가 원했던 대로 잘 되지 않을 때도 그렇고. 뭔가 해협을 넘은 것 같았는데, 또다시 대서양인지 태평양인지가 나타난거지. 지구는 끝없이 돌고, 바다는 계속해서 맞닿아 있으니까."
"야. 그건 나도 그래. 큰 산을 넘으면 또 큰 산이 나오는 것 같고. 그래서 마음이 미쳐버릴 것 같고."
"있잖아, 시대야. 나는 내가 인어인 게 싫어서 오래도록 바다에 가지 않으려고 버텼던 적이 있었다?"
우혁이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오라며 손을 톡톡 쳤다. 나는 우혁의 품에서 벗어나 신고 있던 샌들을 벗어놓고는 우혁의 옆에 기대어 앉았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는 말이야. 내가 이상하다는 걸 인지한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인간들처럼 살아가려 애썼어. 나는 절대로 우리 가문 사람들처럼 내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지는 말아야지. 나는 인간처럼 살아가야지. 그런 생각을 했던 시기가 있었어. 그게 내게는 20대였던 것 같아. 끊임없이 내가 인간세계에 잘 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으려 했던 시기가."
"그래서?"
"나는 진짜 많이 노력했어. 쉬지 않고 내가 인간이 되려 차곡차곡 내가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들을 배워왔어. 그리고 지금은 누가 봐도 완벽한 인간인 것 같지 않니?"
우혁이 제 아가미를 스윽 쓰다듬으며 말했다.
"맞아. 나도 잘 속았잖아. 무려 1년 동안."
"그런데, 시대야. 어쩌면 내가 나를 증명하려 했던 그 시기들은 말이야, 내가 인어인 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
"그냥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영원히 뭘 모르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원래 생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나인 걸 못견뎌 하면서 끊임없이 불안해하면서, 안정감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우혁의 얼굴에 옅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우혁 역시 바다를 건너는 동안 나에 대해 많은 고민과 불안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혁 역시 절반은 나를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또 절반은 인어로써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온 인간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을 불안해하고 있는 거라는 걸.
"우혁아."
"응."
결혼식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시간들 동안 우리는 너무 빠르게 많은 결정들을 내려야 했던 듯하다. 어떻게 사는 건 이렇게 물흐르듯 쉽게 지나치는 것이 하나 없는지. 결혼을 해내고 나면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치겠지. 이 시절은 참 끝이 없구나.
"우리 제주에 온 김에 여행이나 하다 올라갈까? 나는 마침 시간이 되고. 너는 연차 소진하면 되잖아."
내 말에 우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에는 물고기도 많고, 돌도 많고, 바다도 많고, 관광객도 많았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지도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할 수는 있다. 그저 여행기간 동안을 마음 편하게, 꽉 차게 보내면 되니까. 그러나 지도가 없는 여행은 돌아올 때 무척 힘이 든다. 때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여행을 떠나는 방식은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적어도 지금껏 여행을 한다면 지도를 펼쳐보고,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렇게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우혁의 부상은 다음날이 되자 말끔히 나았다. 우혁은 단지 바닷물에 몸을 좀 오래 담구고 있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그동안 나한테 시달리느라, 결혼 준비로 이리저리 정신이 없어 바닷가에 가지 못했던 것이 급격한 체력 소진의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헤엄치기. 의사는 우혁에게 그것만을 원했다. 우리는 숙소 근처에서 가까운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초여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엔 유독 비가 잦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의 제주는 비가 왔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간혹 해가 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먹구름이 어둑하게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잿빛하늘 아래 우혁이는 웃통을 벗은 채 바다를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다. 우혁이가 물 속에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애는 정말로 인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우혁이가 인어라는 말을 들었을 땐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고목만을 생각했는데. 저렇게 물 속에서 신나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락 없는 아이 같다.
우혁이가 물 속에 있는 동안 나는 모래사장에 몸을 묻고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 시간에는 비는 내리지 안고 하늘만 어둑해져 있었다. 물 비린내가 멀지 않은 곳에서 찌르르 풍겨왔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고개를 조금만 들면 멀지 않은 곳에 산방산이 보이고, 짙게 깔린 안개 사이로 한라산이 우뚝 솟아 있을 것이다. 그리도 우리는 내일 서울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내일이 되면 나는 다시 이시대로, 내일을 잘 지내야 할 것이다. 이시대의 내일에 우혁이 없어도 지금 당장은 괜찮지 않을까. 내가 지금 결혼이 필요한 이유가 있나? 그리고 그것이 우혁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남들이 하는 결혼, 임신, 출산. 그런 것들을 꿈꿨지만 정작 그게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지금까지 왔던 것이다.
우혁이 퇴원하기 전날, 인어병원의 피부과를 찾았다. 그리고 내 증상에 대해 검사를 받았다. 단순 알러지 반응이었는지, 아니면 약의 부작용이 있었는지. 결과는 금방 나온다고 했으나 그 전에 우혁이가 짐을 챙겨 병실을 나서는 시간이 더 빨랐다. 여행을 하는 동안 병원에서 내게 결과를 확인해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으나 나는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 여행의 끄트머리에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대야. 곧 비온대. 가자."
어느새 우혁이 내쪽으로 다가와 파묻혀 있던 내 몸을 손으로 직접 파며 꺼내주었다. 처음에 수족관에 처박혀 있을 때도 우혁이 나를 그곳 밖으로 꺼내주었지. 생각해보면 그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우혁을 만날 일도 없었을 텐데. 하필 내가 그 할아버지가 있는 수족관을 케어하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정말로 사소한 오해가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만들었고, 쓸데없이 용기를 낸 쪽은 나여서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후두둑 비가 떨어졌다.
우혁과 나는 우산을 쓰고 숙소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숙소를 가려면 바다와 암석에 걸쳐진 길고 얇은 다리를 건너야 했다. 비가 불어서 그런지,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꽤 세찼고 얇은 민소매 원피스만 입은 나는 살갗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춥지?"
우혁이 제 몸을 걸치고 있던 바디타월을 내게 둘러주었다. 나는 그런 우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사이 바람이 한 차례 세게 몰아치며 내가 들고 있던 우산이 바다로 휙하고 빠르게 날아갔다. 어, 안돼. 내가 놀란 듯 소리쳤고, 우혁이 우산이 사라진 자리를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가져올까?"
우혁이 이제는 할 수 있다며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우혁이를 말린 건 나였다.
"우혁아. 여기 CCTV도 있고, 나랑 있을 땐 인간이라며."
"아, 맞다. 근데 저 우산 아까우니까."
"인간들은 저럴 때 우산 주우러 바다로 안 가."
그때 우혁의 이마 위로 툭하고 새똥 같은 빗물이 떨어졌다.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우혁아."
"응."
우혁이 이마에 묻은 빗물을 툭툭 털었다. 자세히 보면 우혁의 인중에는 희고 긴 수염이 한 가닥 나있다. 내 검지손가락에도 그런 것이 간혹 있으므로 보통의 사람들이 보면 예사로 넘길지도 모를 인어의 흔적이다.
"너는 왜 결혼이 하고 싶어?"
"야, 이시대. 결혼하자고 했던 건 너였다."
"그럼 내가 결혼하자 소리 하지 않았으면 우리 이렇게 빨리 결혼 안했으려나?"
내 말에 우혁이 빨리 이 다리를 건너가자며 날르 재촉했다. 우리는 다리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대답해 봐. 너는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어?"
"생각을 안한 건 아니야. 그때는 그때도 그런대로 좋아서 뭔가를 새롭게 하려고 하지 않았던 거지."
"그랬구나."
"근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너보다 내가 더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너 결혼이 하고 싶어?"
"응. 이제 우리는 준비 다 했잖아.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진짜 특별했던 것 같아. 할아버지 아니었으면 너랑 이렇게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응?"
나는 잡고 있던 우혁이의 손을 놓았다. 우혁이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더 이상 우혁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우혁아."
"......."
"왜 하필 나였어?"
"그게 무슨 말이야."
"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였냐고."
우혁은 대답대신 머리를 감쌌다. 우리 두 사람의 어깨 위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서서히 굵어졌다. 우혁의 하얀 셔츠가 투명하게 젖어버릴 만큼. 그러나 우리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우리에게 무언가 심한 말이라도 퍼붓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그냥. 너니까. 어쩌다 보니까, 네가 지금 여기 있으니까. 그러니까."
"어쩌다 보니까 정도로는 결혼을 생각하기에 부족한 거 아니였어?"
"뭐?"
"우리는 지금, 너무, 서로 별로이지 않니?"
"갑자기 왜 그래. 그런 말이 어딨어."
"결혼이 좋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는 거 알아. 그런데 많고 많은 어려움 중에, 왜 하필 네가 인어였어? 그리고 인어가 왜 하필 나를 선택해서. 이렇게 된 거야?"
우혁이 감싸고 있던 머리를 풀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우혁의 얼굴은 놀라지도, 짜증이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응시하는 것.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우혁이 아닌 우혁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빗물은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데 어쩐지 입술은 점점 더 퍼석하게 말라가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거든. 나에게도 너여야만 하는 이유를 말이야. 근데, 나는 이제 잘 모르겠어. 그냥 지금 이 시기에 나는 결혼이 필요했고, 그때 네가 내 옆에 있었고.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남들처럼 그 평균을 따라가고 싶으니까 내 처지, 내 상황 생각 못하고 결정을 해버린 건 아닌가, 하루에도 수없이 고민해. 너랑 결혼해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내가 나임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우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너도 생각해 봐. 너 나랑 결혼하는 거. 네가 인어임을 잊고 살아야 하는 때가 많다는 거야."
"알아."
"인어가 바다를 떠나서 인간과 평생을 어떻게 사니."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잖아. 평범하게."
"너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게 될 거야. 아니면 내가."
나는 팔목을 걷어 피부에 나타난 발진을 우혁에게 보여주었다.
"네가 나를 바다로 끌고 가게 되겠지. 그러다 한쪽이 영영 물거품이 되는 거야."
"시대, 너 지금 되게 못된 거 아니?"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우리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했어."
우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얼굴 위로도 빗물이 떨어졌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굵어진 빗물이 이마를 때릴 때마다 아프다, 아프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게 해주세요.
"우리 결혼식 삼일 전이야. 우리 몇 계절을 만났어. 지금 너 나한테..."
"나는 지금, 우리 이거 아닌 거 같아. ...너무 늦게 말해서 미안해."
우혁이 손바닥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미안해, 우혁아. 나는 너랑 결혼 못하겠어."
못하겠다는 말을 뱉는 순간 동시에 목소리가 흔들리고 발음에 삑 소리가 섞였다. 꽉 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입고 있던 스커트 자락이 점점 더 무겁게 바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저앉아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무릎에 힘을 주고 그 자리에 섰다.
"인어랑 나는 결혼 못해. 너 나 이해해야 해."
우혁은 말이 없다. 나도 울고 우혁도 울었는데 비는 내리고 우리가 서 있는 다리는 크게 출렁거리기만 한다. 바람이 불고, 세로로 내리던 비가 가로로, 가로로 찌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을 뱉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부서지는 것 같았는데,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힘듦은 잠시 뿐일 거야. 평생을 후회하고,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갈 순 없어. 나는 나를 붙잡으려고 끊임없이 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우혁이가 소매를 걷지도 않은 채로 펑펑 울다 제 눈가를 닦다 내 팔을 붙잡고 발을 동동거리다. 이내 가늘어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시대야... 그러지마."
우혁의 말에 나는 아무것도 답할 수 없었다.
"시대야... 내가 바다로 가지 않을게. 나 평생 인간으로만 살게."
"......"
"나는 이 결혼 못 깨. 안 깨고 싶어."
우혁이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처음 봐서 당황스러웠다. 가늘어진 빗방울 사이로 우혁의 표정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눈가에 진 실금같은 주름 사이로 우혁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우혁의 얼굴은 너무 못생겨 보였다. 예전에도 그랬지. 우혁이는 자기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늘 내게 사과를 하는 인어지. 인어들은 다 그런가. 인어여서 내게 너그러웠나. 인어라는 비밀을 들키면 이렇게 될 걸 늘 예상하며 살았을테니까. 그러니까 이 남자애의 사랑은 늘 아픈 거였구나. 이제야 이해가 됐다.
"너는 인간으로 못 살아. 네가 더 잘 알잖아."
"시대야, 나는 인어이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더 많아. 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고, 가끔 바다를 가야하는 것 빼고는, 회를 못 먹는 것 빼고는, 너랑 나. 지금 아무 문제 없어. 내가 평생 너한테 바닷가에서 살자고 안 그럴게. 내가 서울로 갈게. 미안해. 그러니까 오늘 이거 안 들은 걸로 할래."
"우리 어른이잖아. 나 하루이틀 생각하고 결론 내린 거 아니야. 나도 미숙해서 마음속으로 고민 많이 했어. 괜찮을 거라고 여러 번 다짐했어. 그런데 안 괜찮아. 이건 괜찮은 게 아니야. 나도 잘 해보고 싶었는데, 이건 아니야."
"시대야, 너 오늘 나한테 장난이 너무 과해."
우혁이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우혁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얼마 동안 물가 위의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