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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시대에게 - 7

왜 하필 나였어? (상)

by 곽민주

6평짜리 원룸에서 나온 짐이라곤 고작 박스 네 개 밖에 되지 않았다. 평소 물건을 많이 모으지 않는 성격인데다 좁은 집에 둘 수 있는 물건이라곤 한정적이었으니까. 우혁이네 집으로 짐을 옮기는데는 차로 한 번이면 충분했다.


며칠 전부터 짐을 챙겼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전날 박스에 옷가지 몇 개를 담아둔 게 전부다. 부엌에 있던 식기류는 대부분 버리기로 결정했고, 화장품과 옷, 그리고 서류 몇 개면 충분했으니까. 쓰던 가구는 집에 딸려 있던 옵션이라 챙겨갈 필요가 없다.


우혁이네 집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집을 정리하는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삿날에는 조금 울적한 마음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고작 하루만에 서울에서 지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허무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날아올 고지서만 아니라면 실은 내가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나는 서울에서 누구도 나를 찾지 않게 된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우혁이 차로 짐을 함께 옮기자고 했지만 괜히 자존심을 부린다고 일부러 평일 오후로 이삿날을 잡았다. 우혁이 회사에 있는 사이 조용히 짐을 옮기고 싶었다. 우혁의 차를 타고 우혁이네 집으로 가는 것은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우혁이에게 의지하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워진 집을 보며 마지막으로 바닥을 닦고 내 머리카락 같은 것이 남아 있지 않을지 점검했다.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라 그런지 닫은 창문 사이로 조금만 움직여도 겨드랑이에 땀이 찼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는 내가 창문을 열고 얼마되지 않아 연락을 해왔다. 그가 1층에서 내가 사는 4층 원룸까지 올라오는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내가 조금 전까지 나의 집이었던 곳에서 나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돌아가는데까지도 금방이었다.


아저씨는 짐이 얼마되지 않는데 도와줄 남자가 없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함께 차를 타고 인천까지 이동하는 동안 아저씨는 회사를 옮기게 된 것이냐고, 인천까지 참 멀리도 간다며 시시콜콜한 말을 꺼냈다.


"발령이 났는 갑네."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 문득 우혁이 내게 건넸던 거짓말들을 떠올랐다. 우혁은 부산에서 자랐다고 했지만 실은 부산 앞바다와 일본 해협 사이 어딘가, 깊은 산호초 사이에서 자랐다고 했다.


"결혼해요. 결혼해서 신혼집 들어가는 거예요."


멍하니 달리는 고속도로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에게 대답을 해버렸다.


"진짜? 남자가 운전을 못해? 짐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나머지 가구는 다 버리잖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원하지 않을 때 함부로 나에 대해 사근사근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 하나를 이야기하면, 그것을 이해받고 싶어 또 하나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또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다 결국 나를 모두 드러내버리는 것이다. 나는 늘 그런 것들을 실수했다. 그것들은 언제나 나의 약점이 되었다.


"그냥. 피곤한 게 싫어서요. 준비하는 것도 많고."

"그래도, 색시. 그러면 안 돼. 이거 짐 얼마나 한다고."

"제가 원해서 그런 거예요."

"색시가 뭘 모르는구나. 다 관례라는 게 있는 건데."


아저씨의 말에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보조석 발판을 향해 발을 쭉 뻗었다. 관례도 인간한테나 통하는 거죠. 마지막 말은 삼켰다.


"내가 우리 딸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자고로 결혼은 지고 들어가면 안돼."


아저씨가 덥지 않냐며 에어컨을 조절했다. 나는 그런 아저씨에게 반항하듯 창문을 조금 열었다. 열린 틈 사이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차 안에 있던 종이 쪼가리들이 매섭게 펄럭거렸다. 지고 들어간다고? 아니라니까! 순간 귓등을 스치듯 엄마의 목소리가 지나갔다. '걔, 믿을 수 있는 애니? 네가 뭘 알아서 인천에서 살겠대? 너 직장은 어쩌고?' 엄마의 말이 무슨 말인지 다 안다. 나도 다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어떡해. 우혁이랑 결혼을 하기로 했고,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는 걸. 지금 내 마음이 허용하지 못하는 건 ‘지고 들어간다’는 주변의 시선 아니야? 그때 뒷좌석에서 날아온 작은 소책자가 내 머리칼을 살짝 스쳤다. 그게 나에게는 누군가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탁하고 내려치는 것만 같았다.


"나 지고 들어가는 거 아니라니까요? 아저씨 왜 이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아저씨에게 말하고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그리고선 괜히 걱정이 되어 자동차 앞유리로 아저씨를 쓱하고 보니 아저씨는 얼굴 표정을 조금 굳힌 채 앞만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우혁이 있는 인천까지는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저씨와 데면데면하게 인사를 하며 거실로 통하는 현관문 앞에 상자 네 개를 쌓아놓고는 폭하고 바닥에 앉았다. 집 안은 조용했고, 서향 집이라 그런지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이라 거실이 가장 밝은 시간대였다. 하필 채광이 좋아 거실로 들어오는 불빛에 먼지가 나풀거리며 날리고 있었다.


나는 거실로 가는 복도의 벽면에 기대어 앉아 한참 동안 빈 집을 바라보았다. 우혁의 집은 우혁이 답게 깔끔하고, 조용하다. 우혁이 흰 도화지 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도화지에 올려진 붓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하면 망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존재. 그런 생각이 들어 우혁의 집에 내 짐을 풀어놓는다는 사실이, 우혁이 없는 집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무서워졌다. 이전에도 잘만 있었으면서 이번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 지금 집에 와 있으려나? 오늘 일찍 퇴근하고 갈게. 근처에서 맛있는 거 먹자.


우혁이에게 금세 연락이 와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혹시나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 온 것들이 없을지 조금 들여다보다 복도에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박고 눈을 감았다. 원래 결혼을 앞두면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건가? 나는 결혼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막상 결혼이 닥치니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고 있던 옷의 소매를 걷어 팔을 조금 긁었다. 며칠 전부터 피부 끝이 조금 가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청첩장이며, 스튜디오 예약이며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우혁이는 내가 답장이 없자 금세 전화를 해왔다. 이번엔 전화까지 안 받으면 나중에 싸울 것 같아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우혁이는 이동 중인지 지하철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어어.. 짐 풀고 하느라 정신 없어서."

"고생했네. 답장이 없길래"

"진짜 정신이 없어서 그래."

"왜 목소리에 힘이 없어?"


우혁의 목소리에도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혁 역시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조금 알고 있을 거라는 걸. 그리고 우혁이는 그게 조금 불만일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우혁의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 그 애를 이해할 수 없고, 우혁 역시 내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


"배고픈가봐. 너는 밖인가 보네."

- 어.. 지금 이동 중. 이제 곧 여름 시즌이니까 정신 없지.“

"그럼 끊어. 바쁘잖아."

- 너랑 통화하려고 전화한 거야.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

- 시대야. 뭐가 잘 안 돼?


우혁의 목소리엔 걱정도 있었고, 불만도 느껴졌고,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아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우혁도 똑같이 느끼겠지.


"알면서 뭘 물어."


나는 괜히 쿨한 척 앞머리를 매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휴대폰 너머 우혁이 작게 한숨을 쉬는 듯했다. 후우하고 공기가 퍼지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나도, 우혁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서먹하게 그 상태로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공백을 깨기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 공백을 먼저 깨야했는데 둘 다 겁이 많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나는 팔을 긁적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새 거실에는 해가 더 기울어져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 아, 맞아. 시대야. 이번주에 나 바다에 다녀와야 해.


다행히 먼저 공백을 깬 건 우혁이었다.


"바다? 왜?"


- 나 우리 가문 사람들한테 인사드리러. 결혼하다고.

"물고기로 가는 거야?"

- 응. 나이가 많으신 분도 있고, 보통 이 경우엔 우리가 헤엄쳐서 가. 이따 자세히 말하겠지만.

"나는 네 가문 사람들이라는 거. 솔직히 눈에 안 보여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 평생을 모르고 살겠다. 그렇지?"


내 말에 우혁이 대답이 없었다. 우혁은 곧 내려야할 역에 도착했다며 황급히 나와의 전화를 종료했다.




우혁이네 집에 이사를 왔다지만 회사의 마지막 출근일까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나는 주로 공항철도를 이용해 회사가 있는 강남까지 통근을 했다. 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인천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통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태처럼 지하철에 앉거나 서서 멍하니 시간을 죽인다는 사실도. 일주일 동안의 나도 그중 한 명이 되었다. 나는 주로 차에서 유투브를 보거나 철지난 드라마를 챙겨보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회사에 가면 무기력한 채로 업무를 봤다. 어차피 곧 떠나게 될 회사. 수족관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것이다. 또 나 같은 사람들이 채우고 있겠지. 나는 퇴사 일주일을 앞두고 유독 할아버지에게 사료를 많이 챙겨주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아마 새로운 팀이 온다면 할아버지는 그 점검망을 피해 잠시 몸을 피해 있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 인간이 된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네. 생각하는데 할아버지가 지느머리를 힘겹게 움직이며 바닥을 가리켰다. 하얀 모래알갱이 사이에 자그마한 돌을 굴려 ‘고마워’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니에요. 제가 해야하는 일인데요."


내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도리도리 돌렸다. 할아버지의 성정은 어쩌면 우혁과 많이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혁이는 인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어떻게 보면 인간인 나보다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대리님, 저 오늘 일찍 가봐도 될까요?"


수족관에 휴대폰을 들어 ‘고마워’라는 그 단어를 찍고 있는데 뒤에서 연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네. 제가 마무리 할게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면접이 있어서요."

"아.. 여행은..."

"붙을지 아닐지 모르는 면접이에요. 그래도 제 인생은 제가 책임져야죠. 저 아직 당장 학자금 대출도 남았고... 그때는 그냥... 마음이 오락가락 해요."

"아니야. 잘 결정했어요. 일주일 동안 혹시 그런 이슈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요. 내가 마감할게요. 나도 구하고는 있는데 잘 안 되네."

"저희 직종이 원래 취업이 잘 안 되잖아요. 지금 오래된 아쿠아리움도 문을 닫는 마당에."

"그래도 연지씨 연지씨는 아직 가능성이 많으니까. 잘 될 거예요. 포기하지 말고."

"대리님도요. 대리님, 요즘 힘이 좀 없어 보이시는 거 아세요?"

"내가?"

"대리님 결혼하신다면서요. 그러면 좋은 일인데, 어쩐지 더 힘들어보여요."


연지씨가 입을 쭉 늘어뜨리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연지씨 너머 수족관 반대쪽에 붙어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조명 사이로 내 모습이 비쳤다.


"아, 내가 어두워 보여요?"

"어둡다기 보다... 힘들어 보여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수도 있고요."

"아니야. 내가 요즘 통근 거리가 길어져서."

"아. 알죠. 저도 전에 학교 멀리서 다녔거든요. 우리는 생각보다 집이 아닌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고보면 집도, 집이 아닌 곳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걸 위해서 시간을 써야할 것 같은데. 그게 없으니까 그걸 찾으려고 시간을 보내다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 같아요. 힘들다. 생각하면서."


연지씨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연지씨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연지씨의 말대로라면 어딘가 꼬여 있는 매듭이 있는데, 그걸 내가 지금 못 찾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며 수족관을 천천히 걸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나는 터널 형태의 수족관을 몇 번이고 왔다갔다하기를 반복했다. 내 머리 위로 가오리 몇 마리와 상어가 천천히 유영했다.


마음 편하게 살아간다는 건 뭘까.

나는 그게 이 시점에서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안정감을 가져다줄 것들이 모두 결혼에 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다들 이 시기에 하는 거고, 일상은 무료하게 반복되고, 신체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그때 우혁이 나타났고, 우혁을 잡았고, 우혁이 나와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남들이 디 하는 결혼을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는 그런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의 결혼은 마음 편한 것인가?

우혁이와 결혼을 생각한 이후로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잠들어 본 적이 없다. 처음엔 ‘결혼’이라는 서류상의 돌릴 수 없는 기록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고, 나중에는 우혁이가 인어라는 사실에 망설어졌다. 그런데 인어가 아니었어도 온통 ‘결혼’이라는 단어 뒤의 불확실한 일들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불확실한 것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던가? 우혁이는 이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따지고 보면 나는 나하고 있을 때의 우혁이만 보았지, 우혁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혁이와 나 사이는 수족관의 안과 밖일수도 있었다. 우혁이가 물 속에서 호흡하며 유리창을 통해 왜곡된 시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 역시 물 밖에서 우혁이가 헤엄을 치는지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모르면서 ‘저것이 우혁이구나’ 생각하고 그 애의 면면들을 지나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 나는 우혁이에게 내 솔직한 마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지 않은가. 우혁이는 여전히 내게 타인의 세계에 속해 있는 사람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몇 계절을 알고 지나가더라도 영영 모르는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영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도 있을 수 있겠지.


팔짱을 낀 채 수족관 입구쪽으로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한 존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저것 봐. 저것 봐.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는데 이번에 새롭게 설치한 인공수조의 물고기가 떼로 죽어 있었다. 그것은 다행히 쉽게 구할 수 있는 각시붕어였다. 물 위를 둥둥 떠 있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물고기.


나는 그 수조를 설치한 팀을 알고 있었다. 그 팀 역시 이번에 인력이 대대적으로 바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공수조의 환경을 조금만 서툴게 다루거나 잘못 만져도 생물은 쉽게 죽어버린다. 무언가가 사는 것은 어렵지만, 죽거나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인 것이다. 한 가지 선택을 잘못하거나 놓친다면 영영 돌릴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앳된 목소리의 직원이 상사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울먹거리고 있는 게 보였고, 떼로 죽어 있는 각시붕어는 참 못봐 주겠고. 그 순간 우혁과 내가 살 신혼집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그것도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인공수조를 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서 살아야 하는데 나 때문에 묻에서 살아야 하는 우혁이.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거면서 인천까지 왕복 3시간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나. 어쩌면 그 이후에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나.


일을 하다 보면 이게 맞나? 싶을 떄가 있다. 그럴 땐 설명서를 보면 된다. 아쿠아리움에도 가이드는 있다. 전문가라지만 때로는 판단을 잘못할 때도 있다. 우리는 그런 걸 ‘운’이라고 부른다. 운이 나빠 죽어버린 생물들은 ‘운명’이 그렇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는 일은, 아니 그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설명서가 있는 듯도 없는 듯도 같은데 설명서는 뭐라고 말하는지 알 것 같은데, 설명서를 잃어버린 척 하고 싶을 때가 많은 것이다. 그저 ‘운’에 기대고 싶고, 그게 내 ‘운명’이었으면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내 인생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면 다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혁을 또다시 만나려 할까? 나는 우혁을 사랑하고 있나? 그 정도로 사랑하고 있나? 사랑하면 결혼을 해야 하나?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은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우혁과 왜 결혼을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혁이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을까?


퇴근 후 다시 신혼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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