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시대에게 (하)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왜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에만 이런 어려움이 닥치고, 왜 내가 만나는 사람만 다 이상할까. 나는 그렇게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거리를 자꾸만 달리게 된다. 바람을 가르고, 벌레를 휘익 지나치며 발걸음을 앞으로, 앞으로 달리게 된다.
달리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몸을 써서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호흡은 가빠졌다가 여유로웠다가 모든 걸 다 한꺼번에 멈추고 싶어졌다가 멈출 때의 아쉬움을 조금만 더 유예하고 싶어 속도를 늦추고는 천천히 달린다. 우혁이와 헤어진 뒤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달리기였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여름에 헤어져서 가을까지 나는 날마다 달리기를 했다. 물가로 가 있으면 우혁이가 자꾸 생각이 나서 도시를 달렸다. 빌딩숲 사이를 헤치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나 상가도 달렸다. 달리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정장을 입은 사람,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 유니폼을 입은 사람. 그 사람 사이를 배회하게 된다. 나는 단 한 번의 스쳐지나감으로 그 사람에 대해 멋대로 인생을 추측하곤 한다.
그들 중에 인어가 있을까. 인어가 아닌 다른 개체도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 사이를 달린다. 그러다 보면 다시 우혁과 스쳐지나가는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아는 우혁이는 아마도 그 일을 겪고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를 다녔을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공항철도를 타거나 자동차를 타고 운전을 하며, 사람들 사이에 치여 물고기 사료의 영양소에 대해 설명하고, 업체에 진열된 물품을 다시 배열하고, 점주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다 집에 가면 몸이 뻐근하다며 해수용 입욕제를 푼 욕조에 몸을 담구고는 물고기가 되어 물결을 따라 헤엄칠 것이다. 멀리 바다까지는 가지 못하고. 왜냐면 다음날 출근을 해야할 테니까.
다시금 초여름이 찾아왔다. 나는 여전히 출근을 하지 않는다. 우혁과의 결혼을 깨고 얼마 동안은 집 안에 누워 오랜 잠을 잤다. 잠을 자고, 달리고, 또 잠을 자고, 달리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 사이 겨울이 왔다. 나는 동면이 필요한 뱀처럼 몸을 구부린 채 이불속에서 눈을 감았다. 한 번 잠에 빠져들면 잠은 계속해서 왔다. 이렇게까지 잠을 잤는데 또 잠이 올까 싶을 정도로 잠은 끝없이 찾아왔다. 무엇을 먹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을 하고 싶지도 않고, 회사를 가고 싶다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내버려두었다.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도 묻지 않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고, 실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중 하나일 테니까.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집 앞의 편의점에 갈 때가 있었다. 목이 말라서였다. 목은 무척이나 마른데 집 안에 물이 없어 되는대로 옷을 걸쳐 입고 집밖을 나섰다. 눈앞의 풍경은 늘 동일해야 하는데 집을 나설 때마다 목도되는 것은 다른 인상을 하고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걷다 보면 간혹 사람들이 나를 흘깃 바라보기도 했다. 그건 내게 관심이 있다거나 내가 특별하게 보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눈앞에 사람이 있어 시선을 잠시 응시했다는 것 뿐이라는 것도 안다. 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과, 나의 하루 일과, 그리고 나와 의사소통을 할때마다 느껴지는 분위기로 나를 판단해갈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아마도 지금의 나는 나태하게 보이거나 이유없이 무기력하게 보이는 사람으로 비춰지지는 않을지. 내가 어떤 1년을 보냈을지 사람들은 다 헤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많지만, 그것에 변명에 변명을 붙여가며 무엇을 끝끝내 이해받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그저 가치 없는 사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기 전에 나는 내가 속한 세계로부터 무척이나 벗어나고 싶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우혁을 만나게될까,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구구절절하게 할 순 없으니까 나는 말을 하는 대신 입을 다물고 나의 시간을 유예하고 싶었다. 이 시대는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벽처럼 몰려드는 불행 사이에서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번 생의 정해진 규칙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서울을 잠시 떠나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데까지 나는 나의 세계로부터 가장 멀리 헤엄쳐 나가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지구라는 곳은 참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땅의 끝에 바다가 맞닿아 있고, 바다의 끝에 또 땅이 맞닿아 있고, 바다는 빙산이 되었다 다시 바다가 되고, 나는 속절없이 발이 닿는 곳마다 바다에 도착하고. 어떤 일들은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듯하고, 어떤 일들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 듯 하고. 이리저리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 서른인가. 그런 생각을 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원망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만일 지금 내 인생의 파도에 휩쓸리는 중이라면, 손에 잡히는 무엇이라도 발밑에 깔고 서퍼처럼 그 파도를 타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듯하다.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내게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결혼은 내 운명을 바꾸는 일은 아닐까.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나답지 않은 선택들을 하는 것이 결혼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우혁을 선택했던 것은 내 운명이 바뀔 수 있는 큰 전환점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나는 알고 있다. 당시에 우혁이가 인어가 아니었더라도 아마도 결혼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끝내 우혁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회사를 안 가면 안되는 이유도 알고 있었고, 인천으로 가면 안 되는 이유도 알고 있었는데, 우혁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만 몰랐다. 세상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지만 우혁이와의 일에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야 우리는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이부자리에 누워 내가 지금 맞을까. 생각할 때가 있는데 영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여전히 내일은 불확실하고, 인간관계는 쉽지 않고, 하루가 멀다하고 거리의 가게는 망하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 이대라로면 이 세계는 망해버릴 것 같은데, 생각보다 세상은 쉽게 망하지 않아서 의문이고, 그건 회사의 시스템도 그런 듯하고. 어떻게 다들 조금씩 고장난 채로, 망가진 채로 굴러가는 부속품 같고. 다들 이상해, 생각하다 보면 그 중에 가장 이상한 건 나인 것 같고.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고 떠드는 사람과 그런 건 없다며 거짓말만 일삼는 사람들도 반복. 다들 평균이라고 말하는 그 속성에 탑승해 잘만 지내고 있는데 나만 요란하게 알라딘의 양탄자를 뺏어 타고 멀리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떄가 많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 시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그렇다. 내가 나임을 잃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시대는 나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우리는 각자의 빈틈을 지닌 채 빽빽하게 모여 사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가끔 세수를 할 때마다 물 속에 머리를 박고 뻐끔거리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서럽게 울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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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시대에게 완결(총 550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