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진 걸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는데? (상)
우혁의 회사는 우혁의 집에서 걸어서 1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우혁은 귀갓길에 언제나 회사 소유의 헬스장에 들려 운동을 한다. 점심과 저녁 역시 회사에서 제공이 되지만 관리를 위해 조절하는 편이다. 우혁은 내 생각보다 단순한 남자였다. 우혁은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여러 벌 사서 그 옷이 망가질 때까지 입는다. 그리고 그 망가짐의 기준이란 보통 사회적 물의를 빚을 정도다. 우혁의 집은 우혁의 소유(라고하지만 은행의 소유)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왕복이라면 2시간이다. 점심도, 저녁도 주로 아쿠아리움 근처의 식당에서 해결하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 다니는 편이다. 도시락을 싼다면 전날 이른 귀가가 필요하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아쿠아리움 내에 직원들을 위한 냉장고가 시원치 않아 여름이면 도시락이 쉬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주변 식당의 음식값은 15,000원대. 점심을 먹고 근처를 배회하다 보면 나오는 드럭스토어와 생활용품점. 특별히 피부과를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병씩 비우는 스킨케어 상품을 구매하고 나면 통장은 월급을 스쳐지나간다. 무엇보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 그것도 신림. 월세로 살고 있다. 나는 집을 전세로도 마련해 본 적이 없다.
회사가 언제고 불안정해 회사에 따라 집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아쿠아리움도 최근에 공간을 여러번 축소해가는 추세다. 아쿠아리움에 들이는 물고기는 점점 줄어들고, 아쿠아리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능한 대부분의 생물들을 VR로도 만날 수 있는 시대니까. 그래서 우리 업체가 망한 걸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내 얘기에 우혁이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말을 뱉은 곳은 우혁의 집 근처였던 인천이었다. 봄이 찾아와 근처로 나들이를 온 참이기도 했다. 날은 따뜻했지만 여전히 찬 기운을 담은 바람이 거리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우혁은 처음엔 팔짱을 꼈고, 다음엔 주문해 둔 커피의 빨대를 쭉 잡아마셨다. 나는 노란 머그컵에 담긴 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내가 원해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닌데, 괜히 우혁에게 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혁의 모든 태도에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회사가 많이 안 좋아진거야?”
우혁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런가. 회사가 안 좋아져서 우리 회사는 망한 건가. 아쿠아리움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식이니까. 그럼 나는 왜 아쿠아리움에서 더 일을 할 수 없는 걸까. 우혁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설득시켜야 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는, 아니 나는 그 아쿠아리움의 정직원이 아니야. 나는 하청으로 파견되어 다니고 있었던 거라고. 그런데 이번에 우리 업체가 아니라 다른 업체가 선정이 됐대.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냥 팀이 해체가 된 거야.”
“그럼 회사에서 너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배정을 해 줘야지.”
“우혁아.”
“응, 시대야.”
“그냥 이렇게 된 거야.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고.”
내 말에 우혁이 다시 한 번 빨대로 얼음을 휘휘 젓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날은 우리가 청첩장 디자인을 고르려 계획을 해둔 참이기도 했다. 당장 청첩장 비용이며, 결혼식에 필요한 비용을 치러야하는데 마침 이번달 내가 사는 집의 월세를 내고, 이래저래 결혼비용을 알아보니 잔고가 조금 모자랐던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우혁에게 청첩장 비용을 다음달에 주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도 돈이야 있다. 문제는, 평소 생활비를 빼고는 모든 돈을 적금으로 묶어버렸는데 다음달이면 만기가 되니 굳이 한 달 먼저 미리 깨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우혁은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혁의 주변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하나같이 다 잘된 친구들만 있었으니까. 그러고보니 결혼을 앞두고 우혁이 내게 털어놓기 힘들었던 것은 어쩌면 ‘인어’라는 사실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우혁은 마치 나보다 더 결혼을 기다렸던 것처럼 신랑감이라고 하기엔 너무 완벽했으니까.
오히려 우혁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쪽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변에 그렇게 잘된 친구도 없고, 아니 친구가 많지도 않고. 모아둔 돈도 없고. 우혁이처럼 그럴듯한 집도 없고, 이제는 그나마 그 생활이라도 꼬박꼬박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준 회사도 없다. 괜히 가슴이 차갑게 식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황급히 비웠다. 우혁이 내 눈치를 살폈다. 찻잔을 만지작거리는데 문득 손가락에 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반지가 그날만큼은 정말 갑갑하게 느껴졌다.
“시대야.”
“그래.”
“그러면 집은 어떻게 할까?”
우혁이 내게 질문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은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우혁은 어쩌면 정해둔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 여기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우혁. 나중에 임신을 하게 되면 그 때에도 회사를 다니게 될 사람은 우혁. 우혁이다. 그렇다면 출퇴근 거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운 편이 나은 것은 우혁이다.
“그러면 우리 집은... 일단 인천에...”
우혁과 내가 마주 앉은 카페는 작은 창을 여러 개 만들어 둔 건물이었다. 벽면의 테이블마다 얼굴만한 창문이 붙어 있고, 격자무늬의 빗살이 창밖에 붙어 있었다. 창가를 기준으로 가게 밖은 살구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가게 안쪽은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는 투명한 유리 테이블에, 투명한 플라스틱 의자를 두어 하필이면 내가 앉아 있는 결대로 살결이 접히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나는 요 며칠 스트레스를 받아 과자를 있는대로 없는대로 집어 먹었는데, 내 앞에 앉아 있는 우혁은 몸이 탄탄해 보였다. 우혁은 틈만 나면 바다고, 강가고 저수지고 헤엄쳐 다니는 애니까. 그 순간 우혁이 바라보고 있을 내가 테이블 위에 비쳤다. 전날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운 것 때문에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나. 손이고 발이고 다리고 온종일 몸을 쓰는 일을 하느라 부어 있는 몸. 그게 나였다. 나는 우혁에게 금방 서울에 회사를 구할 테니 집을 인천과 서울 사이에 구하자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 일단은. 나는 상관없어.”
그 말을 뱉은 순간, 자존심이 팍 상해버렸다. 우혁에게 싫다고 말하면 우혁이 나를 생각해줄 것을 안다. 새로이 집을 알아보고, 맞춰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차피 앞으로의 일들을 우혁도, 나도 조금은 예견하고 있으니까. 서울보다는 우혁의 집에 들어가는 편이 그 애도 나도 지금으로서는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마냥 우혁에게 무어라 불평할수도, 내가 무엇을 할 수도 없었다.
그날은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청첩장 샘플도 제대로 보지 않고 피곤하다며 우혁과 일찍 헤어졌다. 우혁은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지만 곧 회사를 알아봐야 한다며 해가 지기도 전에 지하철을 탔다. 인천에서 신림까지. 1호선을 타고, 또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길.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문득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마치 내 인생이 이 지하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고 버티고 있는데, 달리는 지하철이 자꾸만 크게 덜컹거린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나는 어떻게든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힘을 주고 있는데, 어떻게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 끊임없이 휩쓸리지. 그게 딱 내 꼴이다. 아이고 이시대. 왜 하필 이때 결혼 애기가 나온 걸까. 아니다. 결혼 얘기를 꺼낸 건 나고, 하필 이때 회사가 망한 거다.
열차에 몸을 구긴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여자가 내게 괜찮냐며 휴지를 건넨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분홍색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여자였다. 배를 보아하니 몇 개월인지는 모르겠어도 산달에 가까워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뭐가 어떻게 되고 있기는 한 걸까? 아까부터 주머니 한쪽이 시큰거렸다. 우혁에게 전화가 몇 통이나 오고 있었다. 우혁도 느낀 것이다. 자기가 생각한 효율적인 결정이 내게 상처가 되었음을. 나는 우혁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왠지 그렇게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다. 배가 꼬르륵 거렸다. 뭔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입맛이 뚝 떨어져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다음날 또 우혁이 아쿠아리움에 찾아왔다. 이번엔 일 때문에 찾은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나를 보기 위해 온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별 이유가 없으면 굳이 내가 있는 곳까지 발걸음을 옮기지 않은 애였다. 연애 초반과 1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니까.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소홀해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아도 모른 척했으니까. 우혁은 내게 왔다고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수족관 한 귀퉁이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뭐해?”
그런 우혁에게 먼저 다가간 건 나였다. 우혁이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아무것도.”
“뭐야, 너 할아버지 뵈러 왔어? 할아버지는 저쪽으로 옮겼어. 특별존으로. 이번부터 새롭게 프로모션 하는 게 있는데 너네 할아버지도 선정이 됐어.”
“알고 있어. 할아버지가 말해줬거든.”
“아...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상품 대하는 것 같네. 미안.”
“아니야. 익숙하지 않다는 거 알아.”
우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수족관을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우혁 앞으로 다가온 물고기가 한바퀴를 빙그르르 돌더니 지느리미를 흔들어 보이는 게 아닌가. 놀라웠다. 그것은 우혁으로부터 인어라는 고백을 듣고 난 뒤 처음 목도한 풍경이었다.
“야. 뭐야? 오와 완전 신기해!”
내 말에 우혁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혁의 턱선 아래 살짝 벌어졌다 다물어지는 아가미가 눈에 띄였다. 나도 모르게 우혁의 아가미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우혁이 차갑다며 손을 탁 하고 쳐냈다. 그리고는 놀랐는지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니야, 뭐가 미안해. 내가 차가운 손으로 네 얼굴을 만진걸. 내 말에 우혁이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아무튼 시대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네 마음도 무거울 텐데.”
“내 마음에 왜 무거워?"
"그냥... 어제 내가 잘못한 거 같아서."
"네가 잘못한 건 없어. 그냥 내 기분이 요즘 좀 다운인 거지."
"그러니까. 너는 여기서 열심히 일했다는데, 회사 사정이라는 게..."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 내 손을 만지작거리다 우혁과 수족관을 번갈아 보았다. 우혁이 다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혁은 제 턱을 쓰다듬다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건 우혁이 내게 무언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곧 우혁의 얼굴이 빨개졌다. 어쩔 줄을 모르겠는 표정. 그건 내가 우혁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우혁이라는 사람이 투명하고 진실되어 좋은 것. 그래서 솔직한 면면들을 고백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모르는 채로 관계가 유지되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너... 얘네들한테 다 들었니? 여기 있는 이 물고기들한테? 내가 여기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내 물음에 우혁이 손을 내젓다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나는 어제 네가 전화도 안 받고, 많이 심각해 보여서. 나는 네 마음을 좀 알고 싶었어."
"그렇다고 물고기들한테 묻니? 그래서 뭐라고 하든? 아니지. 지금도 다 듣고 있는 거네?"
"네가 평소에 많이 운다고... 가끔 저기 구석에서 코딱지도 파고..."
"뭐?"
"회사에 대한 이야기도 더 상세하게 들었어. 미안해, 시대야.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집 얘기도... 그렇지만 집은 인천에서 우선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우혁의 얼굴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당장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회사도 해결해야 하고,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선택을 유보할 순 없고.
"우혁아. 일단 저녁 먹을까?"
내가 우혁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잠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