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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Aug 29. 2022

작가 지망생이 경매라니요?

나의 창의적인 실패기 2



일상툰을 접자, 투자한 노력과 시간만큼의 좌절이 찾아왔다. 평생 우물물만 봤던 사람이 물이라면 다 같은 물인 줄 알고 바다에 만만하게 뛰어들었다가 그 깊이와 크기를 깨달은 기분이랄까. 인스타그램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겨우 뭍으로 올라오고 나니 허탈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얄미운 ‘현실이’는 다시 나를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네 주제에 작가는 개뿔, 돈 벌어야지!”



‘현실’의 비난이 귓구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래 정신 차려야지. 내 주제에 작가는 무슨. 주제를 파악한 자는 참담한 심정으로 인터넷을 배회하다 온라인 광고 배너를 발견한다.



<코로나 시대에는 부동산 경매, 미리 대비하세요!>

<나는 부동산 경매로 100억 자산가가 되었다!>


  

한창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때였다. 거기다 코로나19 때문에 상권이 침체되어 경매시장이 빛을 볼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비극은 우연을 가장해, 구원자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때마침 비대면 강좌가 성행했고, 때마침 마감 직전에 등록이 되었으며, 때마침 딱 학원비로 쓸 수 있는 돈이 있었다. 나는 우주가 기회를 주는 건가 싶어 감격하며 경매 강좌를 등록했다.







그곳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경매로 수십억을 벌었다는 자산가가 강사였는데, 그는 끊임없이 수강생들에게 “된다, 된다, 된다!” 같은 구호를 외쳤고, 수강생들은 환호했다. 강사는 신이었다. 신은 수강생들에게 오늘 분석한 경매 물건 근처 부동산에 가서 사장님과 물건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얻어오라는 ‘신탁’을 내렸다. 적극적인 수강생들은 그룹이나 개인으로 부동산에 방문해 신의 말씀대로 임무를 수행했고, 인증 사진을 올렸다. 




코로나19가 공포의 질병으로 창궐하던 2020년 여름, 열혈 수강생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와 시시때때로 내리는 비를 뚫고, 서울의 어느 상가로, 지방의 다가구 주택으로 삼삼오오 ‘임장(해당 지역에 가서 정보를 알아보는 것)’을 나갔다. 다들 외향형인 건지 빠르게 친해진 사람들은 찰기 있게 잘도 붙어 다녔다. 




그저 물건을 분석하고 제대로 된 액수를 써넣어 낙찰받으면 될 줄 알았던 경매는, 결국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자들, 즉, 돈에 엮인 ‘사람 간의 문제’였다. 바깥 활동과 외부인 접촉이 필수였고 문제 해결 능력 역시 중요했다. 부동산 분야의 종합예술이었다. 사회 불안증 환자는 어떤 숙제도 하지 못한 채 강의만 들었다.



    

행동 없이는 수익도 없다고 강사는 늘 강조했다. 




“밖으로 나가세요. 나가서 부동산 사장님도 만나고, 경매 물건 세입자들도 만나고, 이해관계자들도 만나고. 만나서 정보를 얻으세요. 나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거예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듯 앉아서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는 세계에 있었다. 글 쓸 때는 친구도 많이 만나지 말라던 선생님, 그녀의 소설 수업 시간은 늘 마음의 고향 같았다. 수강생들 대부분 ‘내향형’ 동족이어서 강의실은 선생님이 농담할 때 외에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서로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수용적이었다. 질문을 받으면, 퍼뜩 놀라지만 이내 조곤조곤 자기 생각을 펼치는 사람들. 그 사람들 틈에 있다가 경매의 세상에 오니, 마치 조선 시대 선비가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느낌이랄까. 




한참 후에 소설 선생님의 수업을 다시 들었다. 과거에 돈 벌러 경매 수업까지 들었다 하니, 선생님은 “우리 같은 사람은 돈 벌려고 하면 안 돼. 안 벌려. 그냥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벌어서 사는 거야”라고 답하며 깔깔 웃으셨다. 




나 역시 얄미운 ‘현실이’를 불러내어 쏘아붙였다.




“내 주제에 경매는 개뿔, 개한테 영어를 가르치지!”




그렇게 헛발질을 하다 보니 또 일 년이 보람 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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