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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Aug 26. 2022

일상툰은 쉬울 줄 알았지

나의 창의적인 실패기 1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영화계 최고봉 인플루언서 마틴 스콜세지 옹의 한 마디는 일개 무지렁이 작가 지망생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단 한 번의 심장 박동이 발가락 끝에 있는 이름 모를 N 번째 모세혈관에까지 은혜를 내려주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내가 겪은 고통을 웹툰으로 만들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위로하자.’




사회 불안증 환자의 일상툰을 시작했다. 정보를 모아본 결과, 일상툰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대형 플랫폼보다 인스타그램이 (돈을 벌기) 적합했다. 수만 명의 팔로워를 둔 인스타툰 작가들의 일상툰을 보면서, 으응?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는데? 라며 어처구니없는 자신감을 키워갔다. 어서 유명해져서, 광고툰을 의뢰받아야지. 끝은 미약했으나 시작은 늘 창대했다.     






인스타그램 강의를 들었다. 초창기에는 선팔/맞팔을 해도 괜찮다, 성의 있는 댓글을 써라, 커뮤니티에 속해라 등등, 그 세계의 법칙이 존재했다. 만만치 않았다. 다수에게 노출되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매일, 혹은 최소 일주일에 두세 번 꾸준히 정해진 시간에 올려야 했다. 그제야 대형 인스타툰 작가들이 걸어온 길고 긴 투쟁의 시간이 보였다. 최소 1년에서 3년. 반응이 없더라도 꾸준히 일정 시간에 게시물을 올려야 했다. 




비축 원고를 만들어놓고 일주일에 두 번 일상툰을 올렸다. 계정을 파고 포스트 하나를 올리자마자 팔로워가 열 명 정도 생겼다. 나는 내 만화가 좋아서 그런 줄 알았다. 이 정도 속도면, 1,000 팔로워까지는 금방이겠는데? 




착각이었다. 그들 역시 맞팔을 위해 내게 투자한 거였다. 반응을 보이지 않자 며칠 후, 바로 언팔이 늘어났다. 그때부터 나 역시 다른 작가들을 맞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좋아요’를 눌러댔다. 품앗이처럼, 받으면 갚아야 관계가 유지되었다. 나를 받아줄 법한 계정들을 찾아다니며 선팔을 했다. ‘내가 당신의 콘텐츠를 (팔로우 수를 늘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진심으로 읽고 좋.아.서. 남긴 댓글’이라는 걸 증명하는, 성의 가득한 댓글도 남겨야 했다. 강남역에서 전단을 돌리는 기분이었다. 1,000 팔로워가 채워질 때까지는 다 그렇게 버텨야 한단다. 반짝거리는 사탕을 입에 넣었더니 플라스틱 장난감이었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초기 진입자에게 SNS는 그럴듯한 가짜 진심으로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나 역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좋지도 않은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고, 추종하고 싶지 않은 계정을 팔로우했다.           





       

팔로워가 200명을 넘었다. 나 역시 맞팔을 200명 이상 한 상태였다. 내 피드는 내가 팔로우 한 사람들의 만화로 가득 찼다. 그저 사진 한 장이 아닌, 웹툰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소화한 후, 그에 맞는 적절한 댓글을 남기려면 시간이 꽤 걸렸다. 그들 역시 일주일에 최소 두세 개의 만화를 올리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나는 '좋아요'와 댓글을 남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완벽주의와 강박적 성향은 ‘적당히’를 몰랐다. 또한, 내 인스타에 와서 글을 남기는 분들은 내향형이거나 우울증을 겪었던, 나와 비슷한 성향의 작가 지망생들이었다.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그들은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 빽빽한 사연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함께 울었다. 




그래서 그랬나. 나는 빠르게 소진되었다. 당신에게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심정을 켜켜이 녹여내어 그들이 쓴 분량에 육박하거나 넘치는 댓글을 매일 달다 보니, 영혼의 게이지가 닳고 있는 느낌이었다. 댓글을 작성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시간이 웹툰 작업시간을 추월했다. 각각의 댓글들이 개인으로 다가왔다.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었다.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게다가 사회 불안증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콘텐츠를 만약 일주일에 두 번, 1년간 진행한다면 최소 100개 이상의 에피소드가 나와야 하는데, 초짜 작가 지망생은 그 정도의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 재주가 없었다.




‘너무 올인하지 마라. 아니다 싶으면, 빨리 다른 콘텐츠로 옮겨 타라.’



어느 성공한 유튜버의 조언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이건 바로 접자. 포기도 빨랐다. 



마음을 정돈한 후, 다른 일상툰에 다시 도전했지만, 또다시 같은 이유로 포기했다. 일 년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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