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는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046.

by Zinn


왜 망했다고 생각하냐고?


귀엽다 예쁘다 했더니 선을 쎄게 넘어버리네? 나 지금 화 내도 되는 거지? 기껏 인터뷰를 허락해줬더니 처음 하는 질문이 왜 망했다고 생각하냐니. 졸지에 판사 앞에 선 피고인이 된 기분이다. 내가 망했지 죄 졌나? 양 피디 앞에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실패로 점철된 나의 과거도 내가 잘못을 해서 받은 벌이 아닌 것이다. 물론 남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어놓고 망한 건 죄가 맞지만 내가 양서연 피디에게 죄를 지은 건 아니므로 이런 질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망하다니?”

“감독님 데뷔작이요. ‘꼴리는 영화’.”

“아.. 그건..”


임 감독에게 툭하면 받던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서연에게서 들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잘 해 준 게 분명하다. 다 내 잘못이다. 애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그래도 악감정이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닐 거야. 진정하자.


“영화가 재미가 없어서겠지. 관객을 오해하기도 했고.”

“관객에 대한 오해라면.. 어떤 오해요?”

“미안한데 양 피디. 꼭 녹음을 해야 되는 거야? 괜히 긴장되고 그러네.”

“녹취록만 정리하고 삭제할게요.”


이 정도 얘기했음 적당히 알아먹고 녹음 어플을 꺼야 하는데 서연은 꿋꿋했다.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나? 아니면 내가 폭망 감독이라고 만만한 건가? 녹음 파일을 삭제할 지 안 할 지 내가 확인할 수도 없으므로 좋은 말로 부탁한 건데 그냥 닥치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라는 뉘앙스로 느껴졌다. 이런 굴욕적인 인터뷰가 음성 파일로 남는 건 나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그리 바람직한 시나리오 같지는 않았다. 흑역사로 남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서연은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제작자와의 관계가 나빴다고 하셨는데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악화되셨나요?”

“내가 그랬나?”

“네. 기획팀 첫 회식 때 말씀해주셨어요. 만취하셔서요.”

“그랬군. 아마 가편집본 나온 날일 거야. 자길 망하게 만들려고 작정했냐고 막말을 퍼붓더라고.”

“이유는요?”

“주연 여배우의 노출과 베드신이 없다고.”

“사전에 합의하신 건가요?”

“아니. 대표가 촬영 중간에 뜬금없이 요구하더라고. 시나리오에 그런 내용이 없고 계약서에도 그런 조항이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했더니 감독이면 모름지기 여배우를 설득시킬 줄 알아야 한다며 무조건 벗기라고 했었어.”
“미친 놈이네요.”

“종종 그런 요구를 하는 제작자가 있고 들어주는 감독도 있다던데 나는 그런 걸 해 낼 재주는 없으니까 제작자와 사이가 나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지.”

“아하! 그래서 주연은 못 벗기고 조연 여배우만 줄창 벗은 거군요?”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면이 있지. 변명하는 건 아니고 절대로 내가 요구하진 않았어. 자기는 이번 작품으로 꼭 유명해져야 한다며 뭐든 하겠다고 자진해서 나서준 거야. 그땐 참 고마웠는데..”

“좋아하는 영화는요? 감독님 인생 영화요.”

“보통은 이런 질문이 처음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꼭 한 편 꼽자면 ‘집시의 시간’.”

“아 저도 그 영화 알아요.”

“초심을 잃을 때마다 다시 보곤 해.”

“좋아하는 영화는 ‘집시의 시간’인데 왜 ‘꼴리는 영화’로 데뷔하셨어요? 간극이 너무 큰 것 같아요.”

“미안한데 양 피디. 시나리오 쓰는데 이런 내용이 필요해?”

“취재는 구체적일 수록 좋으니까요. 제가 감독님 아니면 어디서 이런 얘기를 듣겠어요.”


인터뷰를 허락한 게 후회됐고 들으면 들을수록 불쾌한 질문이 이어졌다.


“솔직히 정말 모르셨나요?”

“뭘?”

“데뷔작이 폭망할 거란 사실요. 제목이 ‘꼴리는 영화’잖아요? 대체 그걸 누가 볼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목은 내가 지은 건 아니고 딴에는 남자 관객들이 봐 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들은 왜 안 봐줬을까요?”

“제목에서 기대됐던 수위의 노출과 베드신이 없어서겠지?”

“시나리오가 별로여서는 아닐까요? 촬영 전에 시나리오 모니터는 받아보셨을 거 잖아요.”

“받아봤지.”

“괜찮았어요? 대박 날 것 같다고 하던가요?”

“호불호가 강하게 나뉘긴 했지만 반응이 아주 나쁘진 않았어. 물론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의견이 있긴 했지.”


냉정히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호불호가 나뉜다기 보다는 불호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못 본 척 외면했다. 이제와 시나리오를 고치려니 너무 귀찮았고 반드시 모니터 반응이 흥행 성적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장르가 19금 화장실 코미디이다보니 호불호가 나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모니터 점수가 나쁜 건 여자 모니터 요원이 많은 탓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러고 보면 석 팀장의 잘못도 있다. 내가 이러다 망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 할 때마다 옆에서 용기를 북돋워줬기 때문이다. 감독이 흔들리면 안 된다며 이거다 싶으면 남 눈치 보지 말고 미친 놈처럼 밀어부치라고 했다. 하지만 개봉 이후 관객 평은 모니터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망한 것이다.


이 길이 맞는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정신으로 더 신중했어야 하는 건데 하루 빨리 데뷔하고픈 조급함에 인생이 꼬인 것이다. 이제와 남탓하면 뭐 하나. 다 내 잘못인 것을. 폭망 이유에 대해선 나 스스로도 아직 정리가 안 된 터라 서연에게는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 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다행히 서연은 더 나올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화제를 돌렸다.


“데뷔작은 그렇다 치고 그 후로 지금까지 10년씩이나 작품을 못 만드신 이유는 뭘까요?”

“흠.. 그건 말이야. 말하자면 긴데..”


이 질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시나리오를 볼 줄 모르는 제작사, 투자사 그리고 배우들 탓이다. 나는 잘못 없다. 폭망 후 10년 간 맺힌 한이 많아서인지 하염없이 나를 물 먹인 이들의 뒷담화와 하소연이 마치 방언처럼 쏟아져나왔다. 돈 떼먹은 양아치 제작사부터 출연해 줄 듯 말듯 하면서 결국 물 먹인 배우들까지. 한도 끝도 없었다. 누가 말리지 않으면 밤을 새울 수 있을 정도다. 서연은 더 듣기가 괴로웠는지 적당히 말을 끊고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은 잘 될 것 같으세요?”

“글쎄.. ‘가족사냥’ 말하는 거지?”

“네.”

“잘 돼야지. 무조건 잘 돼야 돼.”

“동감입니다. 잘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읽은 감독님 작품 중에 제일 재밌었거든요.”


나도 그렇다. 그게 내가 쓴 작품이 아닌 게 문제지. 시계를 보니 인터뷰 시작 이후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신나게 털어놓을 땐 몰랐는데 막상 털어놓고 보니 지나치게 아무 말이나 떠들어댄 건 아닌지 후회가 들었다.


“어때 도움이 좀 됐어?”

“그럼요. 엄청요! 너무 재밌었어요!”

“하아.. 그래? 부탁이 있는데 내가 이런 말 했다는 건 비밀로 해 줄 거지? 오프 더 레코드 약속!”

“당연하죠! 제 작품에만 참고하고 녹음 파일도 바로 삭제할게요.”


이렇게 오랜 시간 떠들어줬는데 서연은 야속하게도 빨리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며 곧장 집으로 가버렸다. 쓸쓸했다. 생생하게 떠올라 버린 흑역사 들을 떨쳐버리기 전엔 집에 가고 싶진 않았는데 마땅히 부를 사람이 없었다. 동민을 불렀다간 혜나와의 관계를 추궁받다가 싸움이 날 것 같고 자승은 시나리오 쓴다고 예민할 것 같고 혜나에게는 수아 근황을 알아봐달라고 했으니 그 전에는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남은 건 창한 뿐이다. 지난 번 통화 후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만약 더 써 둔 게 있다면 어떤지 읽어보고 싶었다. 작업을 일시 정지하고 차분히 캐릭터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아마도 계속 쓰고 있을 것이다. 창한에게 전화를 하자 여느 때처럼 곧장 받았다. 창한은 내가 전화하면 거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받았다. 마치 예전의 임 감독과 나의 관계를 보는 것 같았다.


“잘 돼가?”

“아니요. 너무 힘듭니다 감독님. 풀릴듯 하면서 잘 안 풀리네요.”

“완성도를 높인다는 게 원래 힘든 일이야. 쉬우면 개나 소나 다 작가 했지. 어때? 머리도 식힐 겸 나랑 소주나 한 잔 할까?”

“아 감사합니다 감독님. 댁 근처로 갈까요?”

“번번히 고맙네. 도착할 때쯤 다시 전화할게.”


곧장 택시를 잡아 타고 집 근처에 도착할 때쯤 전화를 하자 창한은 이미 나와 있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창한의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범상치 않은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쇼핑백이었다.


“이건 뭐야?”

“별 거 아니에요. 사모님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창한이 공손하게 건네 준 쇼핑백을 열어보니 조그만 샤넬 백이 들어있었다.


“고맙긴 한데.. 이거 비싼 거 아니야?”

“감독님이 저에게 해 주신 조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너무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 놈의 감사하다는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될까? 해 준 것도 없는데 민망해서 그래.”


유정에게는 미안하지만 샤넬 백을 보는 순간 유정보다는 서연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이미 잡은 물고기에게 굳이 명품 선물을 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서연은 다르다. 설마 명품 백을 싫어하진 않겠지. 선물을 줄 명분도 있다. 인터뷰 덕분에 지난 날을 돌이켜 볼 수 있어 좋았다. 다른 의미는 없고 고마워서 주는 거야.. 라고 하면 좋아하겠지. 돈도 있어 보이려나?



***



예상대로였다. 창한은 내 조언을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핸드폰으로 파일을 받아서 후르륵 읽어보았는데 놀랍게도 완성도가 높았다. 누가 봐도 잘 쓴 글이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더 이상 수정할 게 없었다. 그냥 이대로 찍어도 될 것 같았다. 호감형 싸이코패스 캐릭터에 설득이 됐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에게 호감이 느껴지다니 내가 읽고 나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살짝 억지스러운 부분은 있었지만 이 이상의 대안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시나리오가 내가 쓴 시나리오가 아니란 사실에 속이 쓰라렸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인 척 하고 이대로 회사에 보여주면 그간 눈 녹듯 쌓여온 나에 대한 의심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마음 같아선 창한을 꼭 껴안고 뽀뽀라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뭔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신인 작가는 칭찬해주면 버릇만 나빠지니까.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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