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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Oct 29. 2022

내일이 없는 사랑은 과연 아름다울까

'트렌드'는 예측할 순 있지만 지속될 순 없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베스트셀러를 패리스 힐튼에 비유했다. 패리스 힐튼은 딱히 가수나 영화배우 같은 연예인도 아니고 직업적으로 눈부신 성취를 올린 것도 아니다. 언제부턴가 유명하다는 이유로 미디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어느샌가 유명한 것이 직업이 돼버렸다. 베스트셀러 또한 유명하다는 이유로 많이 팔리는 책이란 얘기다.


지난 2010년 말에 출간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5만 부만 팔려도 대박이라는 출판업계에서 100만 부도 아닌, 무려 20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이는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유명하다는 이유로, '트렌드'에 뒤쳐질까 봐 앞다퉈 책을 구매한 결과다.


하지만 이 책이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많이 팔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치고 힘든 청춘들에게 너희 책임이 아니라고, 원래 청춘은 그런 거라고 다독여주는 책의 내용이 당시 미처 여물지 않은 '힐링'이라는 키워드와 만나면서 폭발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되고 약 1년 뒤엔 SBS에서 <힐링캠프>가 처음 방송되는 등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힐링'이란 트렌드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더없이 직관적이고 명료한 카피의 공로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시대의 트렌드를 읽어낸 기획과 강력한 카피가 만나면서 트렌드 전문가이자 서울대 교수로서 학계의 멘토였던 '란도샘'을 '국민 멘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만큼 세간의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간 경우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워낙 책 제목을 인상적으로 짓다 보니 제목을 활용한 패러디가 봇물을 이룬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처음엔 ‘에프(F)니까 청춘이다’처럼 김난도 교수 본인도 '기발하다'며 웃고 넘길 만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케이블 예능인 SNL에서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라는 패러디가 등장할 즈음엔 비아냥을 넘어 책의 내용과 저자 모두 질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건 그 사이에 한 순간에 추락한 연예인들처럼 저자가 음주운전을 했다든지, 물의를 빚을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사람들의 인식이, 시대의 흐름이 동일한 책에 대한 평가를 180도 바꿔버린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 청춘을 사로잡았던 '힐링'이란 키워드가 저물고 그 자리를 '헬조선'과 '흙수저'가 채우게 되면서 이 책에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힘내란 얘기만 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한때는 이상적인 멘토로 여겨졌던 서울대 법대 출신 서울대 교수라는 저자의 스펙은 헬조선을 사는 청춘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금수저' 엘리트의 전형으로 인식됐다.


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김난도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자신의 두 아들 또래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써 내려간 다분히 개인적인 에세이였다고 말했다. 세대 간 불평등을 토론하는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이런 식의 얘기를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자신의 책은 삼촌이 조카에게 개인적으로 고민상담을 해주는 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Love me like there’s no tomorrow.” 그룹 퀸(Queen)의 리드 싱어였던 프레디 머큐리가 불렀던 곡 중에 이런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아마 젊은 그대들은 잘 모르는 곡이겠지만, 나는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절실하게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109P


'사랑 따윈 필요 없어 2.0'이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김난도 교수는 여전히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노래를 소개한다. 그룹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1985년 처음 발표한 솔로 앨범 'Mr.Bad Guy'에 수록된 <Love me like there's no tomorrow>란 곡이다. 이 노래를 매개로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펼친다.


“그대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 나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는 숨막히는 그 매력만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가? 나는 말하고 싶다. 청춘은 그럴 수 있다고, 적어도 청춘은 그래야 한다고.”


김 교수는 트렌드 예측 전문가다. 트렌드 예측은 ‘미래’를 전제로 하는 일이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자신의 업(業)이 존재할 수 없는 입장에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는 노래를 최애곡으로 꼽은 것이 재미있다.

또 한 가지, 열정적인 사랑에 대한 노래로서 이 곡을 인용했지만 전체적인 가사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 노래는 이미 깨져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Packed your bags and you're leaving home (짐을 챙겨 집을 나가려 하는군요)
Got a one-way ticket and you're all set to go (편도를 끊어서 떠나갈 모든 준비를 마쳤네요)
But we have one more day together (하지만 우리는 함께 할 하루가 더 남았어요)
So, love me like there's no tomorrow (그러니 내일이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해줘요)


이 노래가 발표됐을 당시,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곡은 청춘의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이해됐을 것이다. 하지만 2022년을 사는 MZ세대에게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두고 과거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용기를 떠올렸다면 최근엔 집착, 나아가 스토킹을 연상하는 시대다. 이미 짐을 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편도 티켓까지 끊어놓은 연인에게 하루가 남았으니 그 하루만이라도 사랑해 달라고 하는 것 역시 지나친 ‘집착’으로 해석되진 않을까.


누구는 어떻게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그런 식으로 곡해할 수 있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누구는 어떻게 애초에 이런 식으로 가사를 쓸 수 있느냐고 불쾌해 할 수도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노래가 발매된 이래 약 40년의 시차를 두고 '트렌드'가 변했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매년 이 맘 때쯤이면 베스트셀러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 있다. 김난도 교수가 주축이 돼 이듬해 우리 사회의 소비 트렌드를 예측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다. 지난 2008년에 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09>를 시작으로 매년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되는 '스테디 베스트셀러'다. 최근에 나온 <트렌드 코리아 2023>도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의 꾸준한 흥행은 김난도 교수를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트렌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하지만 트렌드 코리아의 유효기간은 통상 3~4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1년 단위로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의 숙명이다.


이처럼 김난도 교수의 최대 장기는 트렌드 예측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그가 쓴 그 어떤 책보다도 시대의 트렌드를 잘 포착해 낸 역대 최고의 트렌드 도서다. 하지만 트렌드 코리아와 달리 너무 오래 베스트셀러의 지위에 머무른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 그 사이 우리 사회의 트렌드가 바뀌었고 결국 달라진 여론의 유탄을 맞게 됐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 하지만 한때 광고 카피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다. 사람의 마음이 끊임없이 움직이기에 트렌드는 항상 변화하기 마련이다. 트렌드는 예측할 수는 있지만 지속될 수는 없다. '트렌드'는 예측할 순 있지만 지속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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