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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Oct 26. 2022

시작하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Coins in a Fountain>과 넷플릭스의 올챙이 적 이야기

현재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약 1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80조 원이 넘는다. 주가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졌는데도 이 정도다.


지금은 OTT 업계의 공룡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이런 넷플릭스도 사업 초기 적자가 누적되면서 '생존'을 걱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고객은 생각만큼 빨리 늘지 않았고 투자금은 말라가고 있었다. 증시를 떠받치던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회사 이름에 닷컴만 들어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넣었던 투자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이처럼 악재가 거듭되고 있던 지난 2000년 9월 넷플릭스 경영진은 강력한 경쟁자였던 '블록버스터' 본사를 방문했다. 이 회사 CEO인 존 앤티오코에게 넷플릭스를 인수해 달라고 제안하기 위해서다. 1980년대부터 미국 비디오 대여시장을 독점해오던 블록버스터는 당시 기업공개를 통해 현금을 두둑이 쌓아둔 상황이었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블록버스터 CEO 설득에 나섰다. 동석한 넷플릭스 임원들이 맞장구를 쳐주며 분위기가 무르익는가 싶었는데 배석했던 블록버스터 측 고문변호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자기들이 얼마에 인수하길 바라느냐고. 안절부절못하던 리드 헤이스팅스가 불쑥 말했다.


"5000만 달러"


20년 전이라고 해도 현재 넷플릭스 가치의 200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회사를 통째로 넘기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블록버스터 측에선 이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블록버스터 CEO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애쓰면서도 넷플릭스가 제안한 금액을 듣고선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고 한다.

당시 협상에 참석했던 넷플릭스 공동 창업자 마크 랜돌프는 블록버스터 CEO를 만났을 때의 위축됐던 심경을 "그가 신은 로퍼 가격이 아마도 내 자동차 가격보다 비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최근 성장세가 꺾이며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불과 1~2년 전만 해도 넷플릭스는 단순히 성공한 기업을 넘어 사회적인 현상이었다. 한때 애플이나 페이스북이 그랬던 것처럼 쿨하고 힙한 트렌드를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었고 이 회사의 성공스토리를 분석한 책들이 시중에 넘쳐났다.

업계 최고 수준 대우, 극단적인 투명함과 가차 없는 토론 문화, '규칙 없음(No rules rules)'으로 명명되는 상사의 승인 없이 휴가나 출장, 경비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등이 알려지면서 혁신의 아이콘이자 직장인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창업 초기 단돈 '5000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비디오가게 프랜차이즈에 팔아치우려고 했던 것을 보면 넷플릭스 창업멤버들은 회사가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와 달리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마찬가지로 창업한 지 2년쯤 지났을 무렵 포털업체인 야후가 페이스북을 10억 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을 때 이사회에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자, 여러분, 오늘 회의는 그냥 형식적인 거예요. 10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팔 수는 없죠."

(<제로 투 원> 피터 틸 저, 108P)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인 마크 랜돌프가 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는 지금은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된 넷플릭스의 지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 서비스가 탄생하게 된 '진짜' 배경을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넷플릭스의 창업 스토리는 이 회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점(페인포인트)을 간명하게 드러내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모범 교본이다.

즉, 넷플릭스의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비디오대여점인 '블록버스터'에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아폴로13> 비디오테이프를 늦게 갖다 주는 바람에 연체료로 40달러를 물어내야 했고, 이때의 아픈 경험(pain point)을 해결하고자 떠올린 사업 아이디어가 바로 넷플릭스였다는 것이다. 아직 스트리밍이란 개념조차 없던 1990년대 말 넷플릭스는 고객이 직접 비디오 대여점에 가지 않고도 우편으로 DVD를 쉽고 편하게 빌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마크 랜돌프에 따르면 이 같은 넷플릭스 탄생 설화(?)는 절반의 진실만 담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은 카풀을 하면서 차 안에서 이런저런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미 한차례 성공한 사업가였던 리드 헤이스팅스가 마크 랜돌프가 낸 아이디어를 품평하는 식이었다. 어느 날 인터넷으로 샴푸를 파는 아이디어를 놓고 티격태격하던 중 마크가 "비디오테이프"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즈음 블록버스터에서 연체료로 40달러를 뜯기는 경험을 했던 리드가 "어쩌면"이라고 호응하면서 비로소 구체적인 사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비디오테이프의 문제점은 너무 크고 무겁다는 점이었다. 마침 DVD라는 '신문물'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미처 실제 DVD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대신 음악 CD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우편봉투에 담아 보낸 CD가 손상 없이 제대로 도착하면 우편을 이용한 영화 대여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전세계 가입자 수 2억 명이 넘는 OTT 서비스 넷플릭스의 시작이다.



블록버스터가 독점하고 있던 비디오 대여 시장에 야심 차게 도전장을 냈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다행히 이미 실리콘밸리에서 이름을 알렸던 리드 헤이스팅스 덕에 적지 않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지만 골리앗 '블록버스터'와 맞서 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체면 불고하고 블록버스터를 찾아가 인수를 요청했지만 당시의 넷플릭스에겐 5000만 달러조차 과분했던 셈이다. 퇴로가 막혀버린 상황. 닷컴 버블이 터진 직후여서 외부 투자 유치는 요원했다. 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로 시중에 자금이 말라버린 요즘의 스타트업 상황과 비슷하다.


결국 넷플릭스는 증시에 상장해 자금을 유치하기로 결정하고 몸만들기에 나선다. 이전처럼 신규 고객 유치에 목을 매는 대신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이를 위해 먼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저자가 구조조정 명단을 논의하기 위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연구분석 팀장을 불러내는 장면에서 패신저<Coins in a Fountain>이 흘러나온다.  

... 모두 반바지에 더러운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무실에서 조엘은 대학교수 같은 차림으로 출근했다... 교수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그는 날카로운 위트와 뒷골목 유머도 잘 구사했다. 그는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농담을 좋아했고, 패신저의 노래 <분수 속의 동전(Coins in a Fountain)>을 완벽하게 기타로 연주했으며, 넷플릭스 부엌에 독특한 음식을 갖다 놓는 일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384P


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패신저란 가수에 대해 몰랐다. 본명은 마이클 데이비드 로젠버그. 패신저란 예명은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직전에 활동했던 밴드의 이름을 가져왔다고 한다. MZ세대 음유시인이랄까. 직접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에 시적인 가사가 더해져 밥 딜런 혹은 김광석을 떠올리게 한다. 대표곡인 <Let her go>의 공식 영상은 유튜브에서 무려 33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참고로 이 책에 인용된 <Coins in a Fountain>은 프랭크 시내트라가 불렀던, 동명의 영화 주제곡이기도 한 <Three coins in the Fountaion> (1954년작)과는 전혀 다른 곡이다.


저자는 조엘이란 부하 직원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분수 속의 동전'을 기타로 연주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하지만 이 곡을 실제로 들어보면 패신저 특유의 착 가라앉은 듯한 음색 때문인지 구조조정 당시 넷플릭스의 음울한 사내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지만 가사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듯하다.


Well, fear is dark, but my love is a lantern

Shining up like coins in a fountain

Hope is a tree sitting on a mountain

Where the grass don't grow

(그래, 두려움은 암흑이야, 하지만 내 사랑은 분수 속의 동전처럼 환하게 비춰주는 손전등이지.

희망은 풀이 자라지 않는 산 위에 심어져 있는 나무야.)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That will never work)'라는 책 제목은 저자가 처음 우편을 통한 비디오 대여 아이디어를 설명했을 때 그의 아내가 해준 말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10여 명의 주변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로부터 인수 요청을 거절당한 지 약 2년 만인 2002년 나스닥시장에 상장한다. 한때 스타벅스만큼이나 매장이 많았던 블록버스터는 어떻게 됐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마지막 대여점이 한 군데 남았다. 오리건주 벤드에 있다"고 적었다. 이 매장은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디오를 대여하는 대신 요즘 시대에 걸맞게 '에어비앤비'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마크 랜돌프는 넷플릭스가 상장한 직후 자신의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자신이 세운 넷플릭스를 떠난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는 주변의 기대를 보기 좋게 깨부순 그는 말한다. 시작해 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고.


누구든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그냥 시작해야 한다. 그게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단계다. 우리 구상이 좋은지 아닌지 알아낼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해보는 것이다. 뭔가 평생 생각하고 있기보다 1시간이라도 해보는 게 훨씬 배우는 게 많다.
그러니 시작해보라. 뭔가를 창조하고, 만들고, 시험하고, 팔아보라. 우리 구상이 좋은지 아닌지 저절로 알게 된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4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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