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면] 브레네 브라운이 애정한 노래 <Free Will>(Rush)
평소 하지 않던 일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욱 그렇다.
우리가 '복지부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멈춰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의 법칙'이 있다. 외부로부터 큰 자극이 없는 한 우리는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물리학에 적용되는 '관성의 법칙이 마음에도 적용될까' 의문이 든다면 뇌과학적인 설명도 가능할 것 같다. 우리 뇌의 일부를 구성하는 소위 '파충류 뇌'는 원시 시대부터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파충류 뇌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혹은 그로 인해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은 삶의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적어도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일은 없다.
지식 공유 플랫폼 <TED>에서 약 6000만 명이 찾아본 명강사이자 <마음가면>의 저자인 브레네 브라운은 '취약성(vulnerability)'이란 개념으로 복지부동을 설명한다. 글을 쓴다는 것,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 취약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게 될까 봐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취약성을 불확실성, 위험, 감정 노출로 정의한다… 우리의 작품, 우리의 글, 우리의 사진, 우리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보장도 없고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취약해진다.
<마음가면> 50P
책과 음악을 연결하는 글을 써봐야지 하는 생각을 한 건 꽤 오래 전인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그런 글을 안 쓴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쓴다고 해서 무슨 좋은 변화가 있을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두려웠다. 읽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렇기에 아무런 반향도 없는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될까 봐 나의 재능이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이런 모든 상황이 수치스러웠다. 저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취약(vulnerable)해질 일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불만스럽고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알게 됐다. 나의 가면은 너무 무거워서 계속 끌고 다니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그 가면이 내게 해준 것이라고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진짜 모습을 알리지 못하게 한 것밖에 없었다. 가면은 나에게 몸을 웅크리고 자기 뒤에 조용히 숨어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의 불완전함과 취약성을 보지 못할 거라고 했다. (같은 책 75P)
남들에게 그럴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가면은 나를 지켜주는 듯하지만 나를 세상으로부터 '도피'시키는 '가짜' 휴식처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가짜 위안을 주는 '마음가면'을 벗고 세상에 대담하게 뛰어들라(daring greatly)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변화하고 조금씩 용감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꺼이 취약해질 수 있어야 한다." 남들 앞에 나 자신을, 내가 가진 미약한 재능과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취약성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불확실하고 위험하고 감정이 노출되는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록밴드 러시(Rush)의 열렬한 팬인 나는 지금이 그들의 노래 <프리윌(Freewill)>의 한 구절을 이용하기에 적합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기로 했더라도 이미 뭔가를 결정한 겁니다.”
<마음가면> 62P
취약성(vulnerability)이란 개념을 바탕으로 용기 있게 세상에 뛰어드는 법을 설파하는 심리 서적에서 '러시(Rush)'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나 역시 브레네 브라운이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러시의 열혈팬이다. 사실 음악과 책을 엮어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던 것도 러시 때문이었다.
처음 러시(Rush)라는 밴드를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지금은 프로그램의 제목도 당시 틀어줬던 곡명도 기억나지 않지만 누가 소개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난다. 당시 <학창시절>이란 노래로 유명세를 탔던 기타리스트 이현석씨였다. 이씨가 러시를 소개하면서 “3명이서 어떻게 이런 사운드를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공연 때는 키보드를 발로 밟아가면서 연주를 하더라”는 취지로 말했던 게 여전히 기억난다.
‘학창시절’이란 ‘원히트 원더’ 가수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현석이란 이름은 노래 속 숫기 없는(?) 보컬을 떠올리게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가수이기 이전에 국내를 대표하던 실력파 기타리스트였다. 특히 당시엔 '잉위 맘스틴'이라고 부르던 스웨덴 출신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Yngwie Malmsteen)의 영향으로 얼마나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느냐로 기타 실력을 가늠하곤 했었다. 이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던 '속주'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학창시절이 수록된 그의 2번째 솔로 앨범에도 후반부 몰아치는 속주가 인상적인 바이올린 곡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을 편곡한 버전이 첫 곡으로 수록되었다.
대체 어떤 밴드이기에 실력파 기타리스트가 혀를 내두르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요즘처럼 궁금하면 멜론이나 유튜브에서 바로 검색해 들어볼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았던 러시의 음반은 동네 음반가엔 입고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대학로’의 대형 음반가게를 돌아본 끝에 이 유별난 밴드의 CD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러시가 지금까지 발표한 정규 앨범은 모조리 사모았으니 열혈팬을 자처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다 생각한다.
러시는 캐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고등학교 친구인 기디 리(Geddy Lee, 베이스, 보컬)와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 기타)을 주축으로 결성된 록(Rock) 그룹이다. 정규 2집 ‘Fly by night’부터 드러머 닐 퍼트(Neil Peart)가 합류한 이래 단 한 번의 멤버 교체 없이 3인조 밴드로 꾸준히 활동해 왔다.
데뷔 직후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아류’라는 식의 혹평이 많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 이제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란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메탈리카 같은 거물 밴드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꼽을 정도로 실력 면에서도 인정받는 밴드다. 지난 2013년엔 록앤롤 명예의 전당(Rock & Roll Hall of Fame)에 헌정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공식’ 록의 전설로 인정받게 됐다.
러시의 인상적인 연주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입덕’했지만 이들에게 본격적으로 끌려들어 간 건 가사(lyrics) 때문이다. 러시는 특이하게도 작사와 작곡을 철저히 분업했다. 멜로디를 만드는 건 베이스와 기타를 연주하는 기디와 알렉스가 맡고 가사를 쓰는 일은 드러머인 닐 퍼트(Neil Peart)가 전담한 것이다. 특히 다독가로 알려진 닐 퍼트는 소위 가방끈이 짧은데도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가사를 뽑아내 일부 북미권 대학에서 러시의 가사를 교재로 활용하기도 한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였다.
<마음가면>에서 인용한 Freewill(자유의지)의 가사 역시 다분히 철학적이다.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것 또한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If you choose not to decide, you still have made a choice)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가 Rush의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취약해지기 싫어서, 수치스러움을 느낄까 봐 선택을 피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도망갈 곳은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불확실한 세상에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언제든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기꺼이 이러한 취약성을 삶의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에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다. 좀 더 준비된 모습으로, 보다 완벽하고 결함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겠지만 애초에 '완벽'이나 '무결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취약성을 받아들이고 그 취약성과 함께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우리의 용기는 커지고 목표는 선명해진다. 반면 취약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커지고 관계는 끊어진다."
<마음가면>의 원제는 <Daring Greatly(대담하게 뛰어들기)> 다. 저자는 이 개념을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의 아래 연설문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모름지기 노력을 하면 실수를 하고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경기장의 투사는 자신의 노력으로 경기를 치릅니다. 그는 위대한 열정이 무엇이고 위대한 헌신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는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온몸을 던집니다. 잘될 경우 그는 큰 성취감을 맛봅니다. 최악의 경우라 해도 그는 용기 있는 실패를 하는 겁니다."
마음가면을 벗고 대담하게 세상에 뛰어들어야 변화할 수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